Essay

영화, <거짓말>

written by 최인성

1부

포르노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고자 한다.

영화가 상영되어지는 동안 나의 시선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야유를 들어야 했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나..또한 그들은 무엇에 그토록 현혹된 것일까.

지금,1999년을 보내는 서민들의 가슴속에 베인 여린 아픔을 표출하고자 한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2000년에 대한 서민들의 기대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종착역은 존재하는가.

대중매체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오물 투성이의 보도 속에서 우리는 한번쯤 뒤집어진 세상을 꿈꾸어 본다.

"일상적인 삶 속의 서민들의 환타지" 그건 기존질서에서 열려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를 의미하고 있었다. 영화의 서두에서부터 시작되어지는 J와 Y의 잘못된 만남. 그리고 여관에서 이루어지는 상식을 넘어선 듯한 진한 섹스 씬.

J가 Y의 엉덩이에 집어넣은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대가로 받은 Y의 선물은.... Y가 그토록 열망했던 이데아 옅을까. 아니면 억제된 성에 대한 비뚤어진 사고였을까. 그러나 J는 이를 "대변"이라 표현했다. 이 영화의 제목은 '거짓말'이었지만 그렇게 작가의 테마는 분출되어진 "똥"에 있었다. "화장실을 사랑하는 사람들..... "

1부 END

잠시, 머심아의 방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의 방 입구에는 문방구에서 큰맘먹고 구입한 화장실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가끔 처음 오는 분들은 이 푯말을 보고 성큼 들어왔다가, 입을 "쩌~ 억" 벌리고 헤죽웃는 덜떨어진 나를 보고 기겁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거짓말이 아니었다.

여러 책꽂이에 꽂아져 있는 전공서적들과 여기저기서 흘러 들어온 수많은 비디오 테이프들, 그리고 내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점토인형 서너개... 그것은 하나같이 체취 없는 욕망의 배설물들이었다. 그렇게 난 배설물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 나의 꿈은 세상에서 가장 큰 화장실을 짓는 것이다. 모두가 기다림 없이 아무때나 와서 자신의 볼일? 을 볼 수 있는.... 너무 멋있다. 누가 투자 좀 해주어도 될 것 같은 유망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 쩝쩝이 -

2부

격렬한 섹스가 끝난 후 Y는 J에게 그를 만나게 된 이유를 말한다.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닌 그녀 스스로가 J에게 털어놓고자 했던 진실은 누나들의 소극적인 삶 속의 몰락과 안주였다. 그렇기에 자신은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부서지기 전에 스스로가 선택한 남자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었다고.... 어쩌면, 오늘날 젊은 층의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형태를 작가는 Y를 통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사고에 앞서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작가가 왜, 중년의 성공한 예술가와 성 경험이 없는 여고생을 중심캐릭터로 설정하였는지에 대한 사고를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예술이라는 명분이 처녀에게 대중 앞에서 옷을 벗게 만드는 면죄부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과거의 기다란 치맛자락을 한번 걷어 올려보자.

왜, 그들은 옷을 벗지 못했던 것일까.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그들을 지지해줄 지식인층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과감하다 못해 "뜨아~ "라는 함성을 만들어 낸 명분은 무엇이었나 사고를 해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은 숙성되어져 가는 민주주의의 사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GNP의 상승은 서민층의 삶속에도 다소의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다른 어느 나라 보다 높은 학구열은 기존의 사고에 대한 의식 변환에도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그 대표적인 폭발형태가 바로 운 동권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다. 오늘날 문민 정부가 들어설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만드는데 있어 커다란 공헌을 했다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닐 만큼 그들은 "생사를 건? 투쟁"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세력이 승격되지 못하고 지금에 와서는 명맥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퇴화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문민 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학가에서 조성되어진 또 하나의 기류, 그것은 공산주의를 사주하는 한총련의 출범이었고, 국민들의 외면은 운 동권 세력의 급격한 쇠퇴를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다. 어떠한 흐름이 그들을 변질시켰던 것일까. 그것은 잔존해 있던 기존 기득권 층의 생존에 대한 발악과 현 정권을 쥐어 잡은 기득권 층의 단단한 토대를 만들기 위해 설계된 치밀한 "프로젝트"가 오차 없이 성공을 하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내면 속에는 미국의 존재 여부도 있을 수 있겠지만.... - 사실이 아닌 머심아 방에서 만들어진 픽션임. -

이제 다시 영화로 들어오고자 한다.

나는 작가의 의도를 여러 각도로 사고해 보았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표출할 수 있었다.

" 이 영화에서 보여진 모든 시각적인 영상은 진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J가 Y의 엉덩이에 짚어 넣은 것은 단지 쾌락을 추구하는 한 인간의 변태적 모습이 아닌 바로 서민들의 노동력으로 생산되어진 배설물이, 또한 학습을 통한 신지식의 표출이 기득권 층에 의해 흡수 지배되어져 가는 과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지금도 그 후유증의 하나로 IMF이후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진 노동자들을 본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그들은 그것을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도구로 또한 흔들리는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너는 그래도 저 노숙 자나 부랑자보다는 행복하지 않느냐! "

- 무한히 쏟아지는 정보는 우리 사고의 포화를 넘어서고 있다. 더욱이 생존은 끊임없는 정보를 요구하면 뒤쳐진 자를 뒤돌아보지 않는다. 생존은 보여지는 모든 가시화된 정보들에게 여과 없는 사실성을 부여하였고 그 흐름을 쥐고 있는 것이 바로 기득권 층인 것이다. -

연말이면 쏟아지는 온정을 요구하는 대중매체들의 반복적인 외침은 생산자들의 현실에 대한 자각과 서민이 왜 IMF의 빛을 청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 너는 그들보다 행복하다는 체면으로 어루 만지려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 Hegemonie 프로젝트" 라 명했다.

* 헤게모니란: 폭력이나 강요가 아닌 논리성으로 반발을 억제하는 집권정책. 사회는 기득권 층에 의해서만이 질서가 유지되어질 수 있다고 우리는 가르침을 배운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 국민은 무지 하기 때문에.... " 억지 표현일까.

그럼 우리의 교과서를 다시 한번 들쳐보아야 하는 필요성이 생긴다.

초등학교 도덕책, 중학교 윤리시간, 고등학교 윤리시간, 대학교 철학시간.... 이들에서 공통적으로 습득하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논법중에서 " 너 자신을 알라. "" 악법도 법이다. " 라는 부분이다. 까막이 눈을 가진 이도 이 용어는 알만큼 너무나 대중적이 문구가 된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성은 이 글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다시 영화 속으로....몰입

자연의 섭리는 먹은 만큼 대편하고자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이 거짓말은 너무나도 무공 해를 추구하는 이데아를 표출한 영화라 말할 수 있다.

2부 END

머심아의 방 두 번째 이야기. 나도 가끔은 원조교제에 대해서 사고를 해본다. " 뜨아~ "물론 해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나쁜 놈인 것이다. 하지만 왜! 나쁜 놈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 푸! 하하하.....

3부

J와 Y의 만남이 두서너번 있던 날 J는 섹스도중에 Y의 엉덩이를 때린다.... 사정없이.

그후 J는 본격적으로 Y를 때리기 시작한다.

- 이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한 추천 영화가 있다. " 르네의 사생활 - 영성 프로덕션 " 심한 고통이 가해질수록 인간의 사고는 마비된다. 누구나 한번쯤 학교에서 심한 매질을 당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의 물건이 서 있다는 것을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

왜 작가는 J에게 Y를 때리도록 지시했을까.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전재 조건은 풍부한 노동력에 있다. 하지만 학벌이 높아질수록 위를 향해 침을 흘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 수많은 욕구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표적인 예가 "체벌과 획일화된 교육"이라면, 대중에게 신기루라는 거품을 선물한 것은 "대중매체"일 것이다.

절제와 희망.... 조삼모사라는 한자 숙어를 아는가.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는 희망이 앞이냐 절제가 앞이냐의 서로 뒤바뀜의 역사라 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고급인력이 무수히 배출되어져 가고 있지만, 모두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노동을 통한 생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또한 그 노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달콤한 희망이 있어야 만이 생산력이 향상되기 때문에, 그렇기에 모두가 도서관에 쳐 박혀서 젊음을 불태우고 있지만, 이미 부여되어진 노동자라는 낙인을 지울 수가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자각의 몸부림이 표출되어지는 소리 그것은, Y의 그 심한 매질 속에서도 권력상승에 대한 집착을 "사랑해"라는 표현으로 대변 할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것이다. 홀로 서기에는 노동자라는 꼬리표가 너무나 무거웠기에, 통제되었던 자신의 갈증을 채워 줄 비상구가 J라는 사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 그러나 왜 우리는 그 사실을 애써 부인하려 하는가...... 삶이 더 슬퍼지는 것을 거부하는 몸짓인가. -

Y의 주변을 둘러보자. 그녀를 맴도는 한 명의 친구. 작가는 친구를 현실 속에 안주하려는 일반인들의 소극적인 모습의 대변자로 표현하려 했다.

먹는 것과 생산하는 것밖에 모르는 일반인들의 모습 속에서, Y의 비참함과 굴욕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서민들의 무지를 슬픈 모습으로 작가는 보고 있는 것이다.

- 인간이라는 동물은 얼마나 간살스런 동물인가... 구식화장실에서 수세식 화장실로 옮겨져 길들어진 이는 구식화장실을 보고 기겁을 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는 것을 경험해 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

3부 END

머심아 방 세 번째 이야기.

엄밀히 말해 나는 조금 전에 방에서 "잉어빵"을 네개나 먹었다. 넘 맛있어서 입천장이 벌겋게 상기된 것도 모른 체.... 거참. 그런데 잉어 빵은 왜 붕어빵보다 맛있는 것일까.

" 크리스 마스에 눈이 내리면 난 방에서 잉어빵을 먹으리~ ."

4부

Y의 반전....J의 초죽음.

몇 대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J의 독백.

"어떻게 Y는 이 아픈 매를 참을 수 있었던 것일까." 작가는 J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무언가에 꽉 막혀버렸던 하수구가 뚫린 것처럼 후련해졌다. 그건 단지 J 혼자만의 사고가 아닌 서민들의 자각이 앞서야 했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 영화를 자신의 영화로 보려 하지 않는 것일까. 너무 잘났다는 착각 때문일까.

4부 END

이젠 모두가 아는 머심아의 방. 나는 다시 J의 이야기에 펜을 기울여 자신조차 알아볼 수 없는 끄적임으로 메모 장을 채워 나간다. 그리고 뭐라고 썼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그렇게 넉 빠진 녀석인 것이다.

5부, 그리고 종착역

" 똥이 역겨운 것은 거기에는 아무런 맛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단맛도, 쓴맛도, 짠맛도 매운맛도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는 아무런 맛도 없다. "

작가는 서민들의 꿈을 배설물로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인이건 재벌이든 또는 그 배설물이 거지의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똥이라 부른다. 세상에는 임금의 그것이라 할지라도 향기 나는 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앎이 서민들을 더욱 서글프게 만든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 개념의 출발은 바로 이 밑바닥 즉 평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J에게 Y의 배설물을 먹게 한 것이다.

- 오래 전 쇼프로가 하나 생각난다. 그날 따라 여러 제야 정치인이 참석을 하였는데, 아나운서가 낸 질문은 고등학교등록금이 과연 얼마일까요 하는 것이었다.

그때 한 정치인 왈... 300백만원. 그 외 정치인 100만원등 기타를 적었지만 근사치에는 누구도 얼씬 하지 못했다. -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펜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가 없었다. 앎이란 자체가 사람을 가만히 나두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 사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모든 이들이 평등한 사회가 근 미래에 도래하게 된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나 스스로 대답하기를,"인간이 인간의 심판을 마무리 지은 상태, 즉 생존의 의미가 무의미해진 사회가 될 것이다." 라는 편견을 내세운다.

평등은 자연속에서 존재하지 못한다. 그것이 사고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 할지라도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 생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답답하기 만한 의문점에 대한 설명을 하려 한다.

국민학교를 나온 사람이면 모두가 먹이 사슬에 대하여 공부를 했을 것이다. 또한 그 사슬을 도표로 표시 하였을 때 그려지는 형상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사고를 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의 형태가 역으로 되었을 때 도래된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그 남아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시 회복을 할 수 있는 희망이 존재한다. 하지만 엄격한 평등 속에서는 ... 그러한 희망조차 존재할 수 없다. 누가 누구를 짓밟고 일어설 명분이 부여 될 것이며, 노동을 통한 생산자 역할은 누가 하려 할 것인가.. 평등에는 문명의 발달이 존재하기 못한다. 자급 자족이라는 것도 자손이 있어야 만이 존재가치를 부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등은 합의라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합의가 성립된 상태는 이미 평등이 무너진 것을 의미하며, 다시 기존의 역사로 되돌아 가려하는 움직임인 것이다.

- 성경이 말한 인류의 심판, 그리고 그 꿈의 세상... 동물과 인간이 같이 옆에서 생존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은 바로 사후의 세계를 이상화 시켜 문서로 표현한 것이다. -

작가가 말한 진정한 "서민들의 환타지"라는 것은 그럼 무엇이었을까.

단순하게 말해 " 정의가 지켜지는 사회"를 말한다. 누구나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댓가를 인정받을 수 있는, 부정부패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사회.... 그 속에는 노동에 기쁨이 존재한다. 자신이 노동이 자식에게 때론 한 단계 높은 세상을 올려줄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얻은 앎이란 그 자체로 강제성을 띤 실천을 강요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로다." 라는 너무나 상식적인 진리를 깨닫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산 속에서 고행으로 보낸 것이다. 앎이란 "욕망"에서 시작하기에 어렵게만 보이지만 근본은 바로 자신의 앞에 그렇게 물끄러미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철학의 기초가 자연에 있지 않았던가....

잊혀진 머심아의 방과 독백.

- 내가 읽은 책 중에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책은 없다. 그래서 나의 글은 더 거짓말에 가깝다. -나는 삶, 그리고 글 속에서 느껴지는 색은 "현실도피"라는 즉, 다른 세상을 꿈꾸며 태어난다. 아침이면 구겨지는 머릿결이 싫어서 나의 머릿결은 늘 짧다. 거울 속에 존재하는 보여지는 사실에 대해 늘 거부를 하며, 오늘을 향상 기다리지만 내일을 두려워한다.

나라는 인간은 공대 생이며, 내년이면 마지막 학년에 도달하게 된다. 더 이상 도달할 곳이 없어서가 아닌 넉넉하지 못한 삶이 종지부를 찍게 했다. 세상에는 사랑할 것이 너무나 많다. 그것이 가끔은 짜증이 날 때가 있다. 내가 사랑해야 할 것들에 대한 목록이라도 정해 놓구 그것들만 죽도록 사랑하다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껏 내가 추구했던 것은 집착과 그 후에 남겨진 허탈함뿐이었다.

가끔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 눈물을 흘려보고 싶다. 나의 경험이 아닌, 나의 지식이 아닌, 그리고 나의 착각이 아닌, 단지 한 사람만을 위해.... 그렇게 구겨져 보고 싶다. 늘 사랑이 충만했지만, 나의 운명은 늘 고독함을 원했다.

단지, 나의 시선이 만들어낸 향기에 취해 세상모르고 살아온 삶을 슬퍼한다.

하지만 그 꽃이 만발하여 나를 취하게 할 때까지.... 나는 고독과 싸워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삶을 통해 배운다.

지워야 할 무엇이 있기에 겨울은 너무나 춥기만 하다. 답변을 기다린다. 자신이 깨어있다고 생각하거든 나의 무지를 깨뜨려 자각시켜주기 바란다. 아니 이 무지한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그리고 성숙은 기다림이기에.......

잉어빵과 인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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