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3일은 아마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날이라고 느껴진다. 강제규 감독이 <쉬리> 이후 4년만에 내놓은 초특급 메가톤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언론시사회와 월드프리미어 시사회, 그리고 일반시사회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메가박스 극장이라는 한곳에서 오후 1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릴레이식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큰 영향력을 점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배급사 쇼박스는 멀티플렉스 극장 메가박스와 함께 모 그룹의 계열사라는 점에서 그 연관성이 있겠으나 이러한 시스템이 도리어 오늘만큼은 환영할만한 분위기다.
특히나 제작비가 무려 170억 원이나 투입이 되고, 2만 5천여 명의 엑스트라가 참여한 이번 영화를 두고 많은 말들이 난무했다. 특히 포스터나 예고편에서 보여지는 전쟁영화특유의 사실적이고 현장감 있는 모습이 전부일수도 있는 한계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대중적 불안감마저 들고 개봉일자도 2월 5일로 늦어진 여러 이유로 인해 영화에 대한 실질적 평가는 계속적으로 미뤄지고 있었다.
첫 언론시사회의 테이프는 끊어지고 스크린 속에 보여지는 영화의 전체적인 모습들은 기존 한국 전쟁영화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상태로 나타났다. 헐리웃 메머드급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들과 견주어서 절대 뒤지지 않는 깔끔하고 현장감 있는 사운드, 실제상황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 영상, 거기에 주목할 만한 점은 CG자체가 어색하지가 않게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영화의 완성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다크그레이톤의 전쟁상황을 계속적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써 이미지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괄목할만한 상황이다. 또한 강제규 감독의 스피드한 빠른 연출력이 돋보인다. 시간순으로 이어지는 헐리웃 영화이상에 급속 전개는 2시간 30분의 런닝 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유지시켜주고 있으며 상황연출에 따른 극적 전개도 시나리오의 완성도 평가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면에서도 남다른 발전이 눈에 뛴다. 군복을 입은 장동건의 모습은 2002년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과 비슷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특히 광기에 어린 그의 전쟁희생자로서의 점차적인 변모는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초반에 연기모습이 다소 불안해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그의 연기는 수없이 날려오는 총알세례와 뿌옇게 그을려오는 먼지와 함께 절정을 이룬다.
원빈의 연기 또한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보여준 가벼운 연기모습에서 탈피하여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연기의 스타일을 느끼게 한다. 특히 장동건과 원빈의 형제애는 실제 형제 같은 느낌이 들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일조한다. 특히 라스트신에서 보여주는 장동건의 포격모습은 영화 <친구>에서 보여주는 연기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가슴으로 느껴지는 처절한 전쟁터의 아픔과 비애를 느끼는데 성공한다.
좀 더 배우에 대한 연기모습을 분석해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가 있다. 장동건과 원빈은 분명 당대 최고의 미남배우다.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도 한류스타로 그 열풍이 대단하다. 꽃 미남이라고 불리 정도로 이들의 얼굴은 조각칼로 깍아놓은듯 완벽에 가깝다. 그러한 이들의 얼굴은 이번 영화에서 검은색에 한없이 그을리고 흙먼지에 더럽혀진다.
몸을 아끼지 않고 혹사에 가까운 거친 숨소리로 힘겹게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스크린을 누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만족을 느낀다. 심리적으로 깨끗한 모습의 그들에게 면역되어 있는 우리들은 이제 새로운 모습을 그들에게 발견한 것이다. 이는 그들의 완벽미가 아닌 인간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전체적인 영화모습으로 돌아와서 하지만 나름대로의 단점도 지적해야 한다. 이는 앞으로 더 나은 영화의 발전과 지속적인 투자를 통한 세계적인 영화로의 발전을 모색하는데 있다.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원빈의 노년 모습과 마지막장면에서 등장하는 원빈의 노년모습을 동일하게 처리시킴으로써 현재형에 대한 회고식의 기법은 역사성 스토리 즉 <마지막황제>나 <타이타닉>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비슷해 진부하다. 오프닝과 클로우징이 동일한 수미상관 스타일은 종종 스케일이 큰 영화나 아픔이나 슬픈 추억을 간직한 가족사에서 사용되는 스타일이다.
두 번째는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음악이 강제규감독의 전작 <은행나무침대>의 사운드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아픈 현실의 딜레마를 표현하는 애절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은행나무침대> 속에서 등장하는 음악의 연장선인 듯한 느낌이 들어 신선미가 없다. 세 번째는 스피드한 영화전개가 군더기 없어 보이지만 상황설정이 다소 빠르게 진행되어 자칫 전쟁터의 싸움만 보여주는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위에 열거한 이러한 단점들은 하지만 모두 잘 짜여진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모습으로 보완된다. 도리어 그러한 진부한 요소들이 더욱더 일반관객들의 감정을 자극시킬 수 있는데 한몫을 한다고 느껴진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 가장 냉정한 관객들이라고 할 수 있는 기자들이 언론시사회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분명 이 영화가 나름대로 슬픔에 대한 요소를 확실히 관객들의 뇌리에 꽃혀 놓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을 하고 있다.
언론시사회뿐만 아니라 일반시사회에서도 관객들은 여지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반 외국전쟁영화를 많이 관람한 사람들도 이 영화를 관람한 뒤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분명 글로벌적인 마인드가 아닌 로컬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쉽게 표현을 하자면 한국특유의 가족애와 형제애를 기반으로 한 지역적 특성에서 비롯될 수가 있다.
한 장면을 예로 들자면 후반 장면에서 원빈을 뒤로 내보낸 채 형인 장동건이 북한군을 상대로 포격을 하는 장면에서 절묘하게 뒤를 자꾸만 돌아보는 원빈과 총을 맞아가면서 미친 듯이 쏘는 장동건의 교차 모습에서 우리는 울컥거리는 마음을 억제 할 수가 없다. 이는 연인들 사이에서 버스를 탄 애인을 끝까지 모습을 지켜보는 남자의 모습과 뒤로 자꾸 쳐다보는 여인과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지키고자 하는 외로운 인간의 절박한 모습과 안부를 걱정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서로 발버둥치듯 나타내어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사랑이 부각되는 숭고한 모습의 승화다. 이는 어떠한 육안적 해석이 아닌 심안적 해석으로써 감정의 표현인 것이다. 영화가 끝난 뒤 그러한 잔상이 자꾸만 눈가에 남아있는 것은 단지 눈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더 깊이 남아있을 것이다. 영화의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아무리 화려한 수사어구로 이 영화를 표현한들 자신만의 해석만큼은 못할 것이다.
톰행크스 주연의 헐리웃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보여준 색채감과 표현이 다소 비슷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전달시키는데는 분명 일조할 것으로 느껴진다. 한국영화의 지속적인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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