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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럽지만 아쉬운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컷 런스 딥>이라는 영상미 풍부한 영화를 만들고 감각적인 비쥬얼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던 이재한 감독과 과거 CF촬영감독으로 꽤 명성을 떨쳤고 지금은 DP시스템으로 여러편의 영화를 촬영한 이준규 촬영감독이 만난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정답은 서너편의 뮤직비디오와 열댓편의 CF이다. 안타깝게도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는 이재한 감독의 팬이었다. 물론 지금도 팬이다. <컷 런스 딥>을 보곤 영상에 관한 재미있는 시선과 치기어린 구석이 있는 마인드에 반했었다. 그가 한국으로 온다면.. 우리나라에 정말 큰 희망이 하나 더 생기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한국에 와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컷 런스 딥>의 영상미 덕뿐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그 영화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의 배우들은 각종 CF에서 활약을 했다. 대체 그의 차기작은 언제쯤일까..

꽤나 늦게 들려온 차기작 소식은 의아하게도 사랑 이야기였다.

가난하다. 재능이 있다. 잘생겼다. 아픈 상처가 있다. 남자 캐릭터다.
부자다. 남자와 맺어지지 못하도록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사랑스럽다. 아픈 상처가 있다. 불치병에 걸렸다. 여자 캐릭터다. 눈썹부터 턱까지 크게 화면 안에 들어와 총을 쏘아대던 젊은 청년은 어디로 가고 대체 어디서 기존 틀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은 선남선녀가 나타났단 말이냐...

이준규 촬영감독은 데뷔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CF를 찍었던 AFI출신 촬영감독이다. <내츄럴 시티>나 <아라한 장풍대작전>같은 필모들이 말하듯 화려한 영상에서는 큰 재능을 발하는 촬영감독이다. 이재한 감독과 이준규 촬영감독이 만난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야기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영화는 시작부터 클라이막스까지 화려한 카메라 워킹을 보여준다. 가끔은 집요하게 파고들기도 하고 가끔은 그것을 통해 시간을 귀엽게 뛰어넘기도 한다. 하지만 카메라가 철수(정우성 분)와 수진(손예진 분)보다 너무 멀리 가있다. 그들의 사랑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카메라는 파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재한 감독이 노렸던 영상미라면 그들의 사랑에 관한 설명이 조금 더 있었어야 했다. 급급하게 끼워넣어진 스킨의 추억은 이미 냄새조차 맡을 수 없는 옛날이야기인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뒤에 급조된 듯한 인물들. 수진의 과거 사랑인 서영민(백종학 분)은 대체 수진에게 어떤 사람인가. 그가 변명할 시간 정도는 주고 때려도 때려야 할 것 아닌가.. 철수의 어머니는 그렇게 대놓고 화두를 잡고 대화를 나눠도 대체 누군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그 문신은 영화 자체에 장난삼아 새긴 판박이에 불과하다.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조금 덜 슬픈 이유는 마땅히 울어야 할 곳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일 거다. 배우가 울면 관객도 운다. 대신 오래 울어야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한 자리에서 계속 울어야 관객은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고 입장까지 바꿔가며 생각하고 울어야할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 눈물을 흘린다. 그동안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캐릭터는 쉽게 그 상황에서 벗어나선 안된다. 관객에게 시간을 줘야 하니까.. 하지만 이 영상미 넘치는 영화는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움직이려 하고 배우는 참으려 한다. 카메라는 멀뚱히 쳐다보고 배우는 참지 않거나 참지 못해야 한다. 가끔은 멍청히 바라보는 게 더 슬프다.

그럼에도 이 사랑이야기는 귀엽다. 충분히 느끼할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캐릭터의 승리다. 사랑이야기에서 착한 캐릭터란 언제나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유부남과 불륜을 했음에도 수진은 착하고 귀엽다. 그녀의 기억력은 그 귀여움을 배가시킨다. 또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외모를 꾸미지 않으면서도 잘생긴 건 어쩔 수 없고 거기다 자기 일에서 인정받는 남자는 어떤 사람이 봐도 멋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착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사람만 안죽이면 사랑받는다.

이 영화의 영상은 유치하지 않다. 내가 말하는 문제는 너무 멀리 가있다는 것이다. 이만큼의 영상이라면 최대한 설명을 줄이고 많이 많이 뛰어넘어 더욱 더 기억에 남는 비쥬얼을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렇게 모험적이지 않을 거라면 조금 더 많은 설명과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재한 감독과 이준규 촬영감독이라면 할 수 있다. 영상으로 이야기하고 패러다임을 그들의 사랑과 슬픔에 맞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도록 하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사랑스런 사람들의 안타깝고 슬픈, 반은 컬트적이고 반은 대중적인 아수라 백작같은 사랑이야기만으로 만족을 하기엔 이재한 감독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

이윤형 (에드우드) 님의 블로그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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