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국제영화제 <나의 어머니 하루코> :::
이윤형 (에드우드) | 9/4 Sat 00:06
조회 2951
“어머니가 지켜야 했던 것은 법이 아니라 자식들이었다"
이 눈물겨운 다큐멘터리는 재일동포 1세인 할머니의 이야기지만 재일동포 1세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자식을 위해 암산이 빠르고 염치가 없이 살아야했던 우리들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첩의 자식이었던 가네모토 하루코 할머니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쫓기듯 일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게 12살. 재일동포인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너무 남자다워서’ 할머니는 청혼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이 ‘남자다운’ 남자는 계속해서 구혼을 하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 도박과 여자에 빠지게 되고 이내 다른 여자와 살기까지 합니다. 할머니는 한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일본말을 할 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재일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경품 담배를 파는 등 나라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경찰서에 잡혀 들어간 게 37번.
할머니의 장남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습니다. 없는 살림에 아들은 필름을 사서 어머니를 찍습니다. 후에 일본의 감독이 이 필름들을 보고 <나의 어머니 하루코>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슬픈 이야기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아들이 경찰서에서 출소하는 어머니를 찍은 장면입니다. 어머니는 경찰서 앞에 나와 있는 자식들을 보고 기뻐하고, 혹시라도 누군가 자식들을 해할까 꼭 끌어안고는 눈치를 보며 집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절대 아들의 카메라는 보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눈은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고 사랑스러우며 슬픕니다.
아들은 괴로웠을 겁니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하지만 이 장면보다 괴로웠을 장면이 또 있습니다. 불법 장사를 하다 경찰에 잡혀가는 어머니를 찍은 장면. 하지만 아들은 그렇게라도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었나봅니다. 그게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이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이야기는 오로지 자식들의 어머니로써 하루코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낯선 땅으로 오고, 남편에게 버림 받고, 경찰서에 끌려가도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걸 게을리 할 수 없는, 그저 한 여자로써의 하루코 할머니 이야기.
하루코 할머니와 장남, 감독 등이 영화 상영 자리에 참석 했는데, 상영이 끝난 후 함께 영화를 본 배우 박해일씨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행복하세요”했고, 할머니는 ‘넌 뭐냐’는 식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박해일씨.. 창피했는지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박해일씨.. 멋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장남, 감독 등이 무대에서 관객들의 질문을 받는데, 할머니는,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마이크까지 뺏는 통역자와 아들 앞에서도 아랑곳 않고 재일 한국인으로써, 자식들의 어머니로써 자신이 할 수밖에 없었던, 해야 했던 일들에 대해 눈물까지 흘리며 말씀 하셨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도 어리버리 치는데, 이 영화는 재일동포 1세, 혹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할머니는 그런 거엔 관심도 없습니다. 할머니는 오로지 자식 먹여 살리는 데에 인생을 바쳤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도 오로지 그 이야기입니다.
EBS에서 좋은 다큐멘터리가 많이 상영합니다. <화씨 9/11>은 세계적으로 흥행했습니다. <나의 어머니 하루코>는 그렇게 자극적인 구성을 갖고 있거나 특별한 메시지를 갖고 있진 않지만 어떤 여인 잔혹사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솔직하고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아냐, 는 어머니의 한풀이 같은 말보다도 더 와 닿으며 마루야마 겐지나 김훈보다 더 밥 벌어먹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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