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리, 몬스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정영선 (파란달) | 8/4 Wed 13:29
조회 5052
한없이 우울해지는 영화가 있어요. 내겐 <블레이드 러너>가 그랬고, <베티블루>가 그랬고 <어둠속의 댄서>가 그랬죠. 그런데 추가목록이 생겼어요. 바로 <쓰리, 몬스터>죠.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보는 건데. 영화를 보고나서 끝도 없이 우울해지는 이유는 대부분 영화에 감정 이입이 됐기 때문이니까. 자,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주관적이에요.
첫 번째 박찬욱 감독의 이야기는 한 영화 감독(이병헌)의 촬영장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 보여지는 세트와 똑같은 방. 그는 그 곳에서 안락한 삶을 살고 있죠. 그러나 너무나 완벽한 그를 질투한 한 엑스트라(임원희)가 침입해 아내(강혜정)를 인질로 잡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는 이병헌에게 아내를 살리고 싶으면 대신 다른 누군가를 죽이라며 협박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 왜 임원희는 이병헌에게 한을 품고 침입했을까요?
이유는 아주 단순해요. 그가 돈 많고, 신체 건강하고, 재능 있고, 얼굴도 잘 생긴 것까지는 봐 주겠는데, 게다가 착하기까지 하다는 거죠. 왜 착한 게 화가 나냐구요?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엑스트라맨에게 그를 비난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 이를테면 ‘그 사람, 다 가진 것 같지만 사실 성격 하난 정말 더럽잖아.’ 라고 자신을 위안할 그 무엇이 그에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엑스트라맨을 미치도록 비참하게 만든 것이죠.
그래요,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관객인 나도 자꾸 묻고 싶어지는 거예요. ‘정말이야? 정말? 넌 정말 그렇게 완벽해? 비밀이 없어? 고백할 게 하나도 없냐구?’ 결국, 그는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지만, 그래도 ‘그거 거짓말이지?’ 라고 믿고 싶은 그런 대답. 아마도, 이 영화가 노린 건 그런 걸지 몰라요. 나약한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몬스터. 하지만 그 나약함을 드러내는 건 영화감독(이병헌) 뿐만 아니죠. 아내(강혜정)도 그렇고, 침입자 (임원희)도 그렇죠.
엔도 슈사쿠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그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심판해 버릴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어쩌면 가장 나약한 존재는 침입자, 임원희였는지 몰라요.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신 속의 메피스토 펠레스를 불러낸 것이니까요.
미이케 다케시와 프루트 챈의 작품도 마찬가지. 모두 인간의 욕망에 대해 그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 욕망이 얼마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죠.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게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거짓말. 인간은 보기보다 훨씬 나약한 존재니까. 그래서 우울했는지 몰라요. 인간이 나약하다는 사실이, 그래서 세월이 지날수록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는 사실이, 참 우울했으니까. 그래서 신념은 강한자의 것. 결국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신념을 지닌, 강한 내가 되길 바래야죠.
<쓰리 몬스터>는 첫 번째 <쓰리>보다 훨씬 짜임새가 있어요. 적어도 세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 하나는 확실하니까.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건 참 슬픈 일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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