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진 연속 살해 사건을 담당하는 경시청의 타나베 형사는 연관성은 없지만 같은 수법의 살인사건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이라고는 희생자의 목부터 가슴까지 남아있는 X자의 상처로, 더욱 이상한 것은 살인자들은 모두 평범하고 성실하던 이웃이었으며 이들의 살인 동기 또한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수사를 하던 중 기억을 읽은 마미야를 알게 되고, 타나베는 그가 이번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음을 직감으로 알게 된다. 심리학을 연구하던 마미야는 최면을 통해, 평상시에 마음에 감춰두고 있던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를 자극해 살인충동을 끌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누구야, 당신의 얘기를 들려줘”라고 말하며 정체성을 묻고 있는 마미야의 느닷없는 질문은 사람들 마음 깊은 곳을 헤집어 놓는다.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은 외부의 유령이나 괴물이 아니기에 도망갈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인간의 내부로부터 발생된 악마적 속성과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정체성의 상실은 공포가 되어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파괴한다. 그렇기에 이제 더 이상 살인은 어두운 골목에서 긴장감을 주며 벌어지지 않는다. 환한 대낮, 별다른 살인의 조짐도 보이지 않은 채 일상처럼 벌어지는 잔인한 살인 장면은 살인이 벌어진 다는 것을 멀리서 보여주기만 할뿐, 살인이 가져다주는 그 어떤 자극이나 감정의 이입은 없다. 이는 볼거리로서의 공포가 아닌, 인간 내면에서 오는 공포를 파헤치는 구로사와식 공포 영화의 특징이다. 무덤덤하게 보여지는 그러나 과히 충격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이미 현실에 퍼져버린 일상적인 공포감과 압박감은 서서히 감염되어 온 도시를 채우고 있다. 그렇기에 살인으로 가득 찬 도시에 ’큐어 Cure'라는 제목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8미리의 실험성으로 무장된 구로사와 기요시의 감성이 쇼치쿠라는 주류 영화사와 결합하면서 만들어진 이 작품은 5년 동안의 준비기간에 전혀 손색이 없는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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