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환영 :::
박경미 (망각 바이러스) | 3/10 Wed 16:11
조회 2158
거대한 환영
2005년. 탈지역화된 영화적 공간에서 젊은 남녀의 사랑 얘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지금까지 존재했었던 연애물과는 다른 방식의 연애담이다. 동경영화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스탭으로 참여한 이 작품은 감독의 실제 첫 사랑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기존의 영원한 사랑 방식에 대해 반문 하고 있다.
음반기획자인 하루와 우체국에서 일하는 미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그저 담담한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익숙해진 일상에서 문득 문득 느껴지는 낯선 거리감에 하루는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지나 않을까 끊임없이 의식하며 불안해하고, 미치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한다. 하루와 미치의 이야기와 무관하게 불쑥불쑥 끼어드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도 끊임없이 존재하는 부조리와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광기를 보여준다.
이 세상이 보장해주는 사랑의 방식은 결혼과 가정이라는 시스템의 재구축에 의해서 완성된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그의 영화 전체에서 내내 강조하던 것은 시스템의 대한 거부이다. 하루와 미치는 생식기증을 상실하게 되는 꽃가루 면역성을 실험하는 약을 복용함으로써, 그러한 제도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한다.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완벽하고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는가. 사랑의 끝은 어디인가를 탐구해 들어가는 이 영화는 아무도 본 적 없는 사랑의 한 방식을 제시한다. 그것이 거대한 환영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또한 영화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온 구로사와 기요시답게 이 영화는 롱테이크와 점프 컷 등의 실험적인 영상으로 가득하며, 영상이 가질 수 있는 환영의 매력을 맘껏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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