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x (2003-05-06 22:34:34)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시각이란 게 있고, 같은 영화를 보고도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양유창씨의 영화평에 대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 그리고 오류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 몇 자 적습니다.
우선 이 영화가 '미국식 정의감'을 말하고 있다는 데, 그게 무슨 뜻인 지요? 엑스맨들이 개인적인 감정(자신이 보통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고통, 자신이 남을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등등)을 버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고 믿는 게 미국식 정의감이라..... 글쎄요, 선과 악의 대결구도나 힘없는 다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의 등장은 헐리우드영화의 전유물이 아니랍니다. 양유창씨의 주장을 따른다면, 외국인이 홍길동이나 임꺽정이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을 보고, "이건 전형적인 한국식 정의감을 다룬 작품이군"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왜 그들이 악을 행하는 지를 설명하는 대신,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 지를 꾸준히 주입시킴으로서 '미국영화'임을 명뱍히 드러낸다구요? '엑스맨'의 매력은 단순한 흑백논리나 한 명의 완전무결한 영웅을 내세우는 대신 (예를 들면 수퍼맨같은!), 다양한 개성과 재능의 고만고만한 캐릭터들을 내놓은 뒤, 이들을 체스게임의 말처럼 배열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데 묘미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들은 팀을 바꾸기도 하고, 두 팀이 서로 협력을 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파이로가 경찰관들에게 화염공격을 할 때 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고 했는 데, 그럼 TGIF종업원처럼 무릎을 꿇고 미소를 지으며, "자, 경찰관 아저씨는 미디엄이 좋을까요, 웰던으로 해드릴까요?"라고 말하기라도 해야할까요?
저는 이 장면이나 앞부분의 아이스맨이 부모에게 자신이 돌연변이임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십대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 여기서 십대란 '전형적인 미국의 십대'가 아닌 '그냥 십대'입니다.
돌연변이들이 인간의 탐욕인 방사능폐기물과 복제인간의 유전자가 결합하여 생겨났다는 대목에선 실소가 터져나오네요. 그럼 '엑스맨 1탄'의 마그니토는 2차대전 유태인수용소에서 유년기를 보낼 때 이미 초능력을 발휘했는 데, 그럼 히로시마를 방문한 적이 있었나? 아냐, 유태인을 대상으로 나치독일이 그때 이미 인체실험을 했을지도?
대통령암살을 시도한 나이트크롤러가 베를린출신임을 강조하는 한편, 카톨릭신자임을 강조하여 착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게 얼마나 미국적이냐구요? 이건 영화감독 브라이언 싱어나 시나리오작가들이 아닌 원작자 스탄 리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의 캐릭터는 원작만화에서 이미 그렇게 만들어진 거니까요. 전 왜 원작대로 미스틱과 나이트크롤러가 모자지간으로 나오지않았을까 궁금했습니다. (하긴 레베카 로민이 알란 커밍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는 점도 걸림돌이 됐겠지만....) 이런 공공장소에서 영화평을 쓸 때는 최소한 사실왜곡은 하지 마시라고 부탁드립니다. 원작만화를 보는 성의까진 기대하지 않더라도, 영화만 제대로 봐도 이런 오류들은 피할 수 있었을 게 아닙니까? 이건 영화를 만든 사람들만이 아닌 영화평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순진하다 못해 현실불감증으로 보이는 자비에르의 방식이 마그니토의 그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덕적인 문제는 논외로 치고라도!) 우선 마그니토의 방식대로 모든 인간들을 말살시킨다고 초능력자들에게 평화가 올까요? 초능력자들의 후손들중에서 보통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생길 것입니다. 아니, 초능력자들만으로 이뤄진 사회가 유지가능하더라도 그들 내부에서 또다른 불신과 증오가 반목되겠지요.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롬바인'에서 "미국원주민을 말살시키고, 흑인들을 노예로 삼다가 흑인거주지역으로 격리시켰지만, 백인들은 결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메시지처럼 말입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마그니토는 돌연변이들을 위해서 살아갈 인물이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같은 이유로 스트라이커가 돌연변이는 물론 인간들에게도 해로운 존재입니다. 이 둘은 '자기희생'이란 숭고한 정신을 모르니까요. "우리를 위해 저들을 없애야 한다"는 인물은 언젠가는 "나를 위해 너를 없애겠다"는 말을 할 게 틀림없으니까요.
저도 이 영화에 대해 몇 가지 불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캐릭터들을 생략했지만, 여전히 많은 캐릭터들로 인해 다소 스토리가 산만해진 점, 갑자기 무너질 듯 하던 댐이 왜 몇 분이나 질질 끌다 무너지는가, 그리고 그 때 아이스맨은 뭘하고 있었나 등등입니다. (하나 더, 스트라이커의 계획은 1탄의 마그니토의 그것만큼이나 엉성합니다. 자비에르가 환상 속이라도 살인따위를 할 리가 없고, 그렇다하더라도 가장 가까이 있는 제이슨부터 당하게 되는 순간 환상에서 풀려나게 되니까요)
영화평에는 어차피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지만, 양유창씨의 글은 주관을 넘어선 편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자주 눈에 뜨이는 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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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창(sanity)님과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