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트 페어런츠> 사랑에 눈먼 고백이 이루어질 때

리뷰

<미트 페어런츠> 사랑에 눈먼 고백이 이루어질 때 :::

윤상열 | 2001년 01월 01일
조회 2300

a fool in love...

빈센트 미넬리의 1950년작 <신부의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의 넘치는 딸에 대한 애정은 가끔 정도를 지나치곤 한다. 물론 그것을 나쁘게 이야기하거나 뒤에서 욕할 사람은 없다. 그것은 가족 안에서 아버지가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부정(父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딸을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를 보았을 때는 양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뒤엉킨 한계인 것 같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관습의 순서와 절차를 가장 먼저 보고 배우는 곳은 바로 가정이다. 그 가정 안에 새로운 손님을 들이는 일은 언제나 소규모의 문화의 충돌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 <애니 홀>에서 우디 앨런이 연기한 알비가 애니의 집을 방문했을 때 알비는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애니의 집에서 홀대를 받았노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그 자신이 애니의 가정 내에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 영화 안에서 그렉(벤 스틸러)은 알비와 같은 상황에 처하지만 자신이 유태인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결함들에 관하여 관객들에게 유머로서 상황을 이해하도록 유도시킨다. 아마도 칠칠맞은 그렉의 엉터리 기도문구를 듣고 있노라면 교회를 다녀보지 못한 이가 들어도 자지러질 만큼 매력적인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렉 퍼커(벤 스틸러)은 뉴욕의 마음씨 좋은 남자 간호사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친구 팸(테리 폴로)의 부모로부터 결혼을 승낙 받기 위해 그녀의 고향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장인이 될 그녀의 아버지는 전직 CIA출신으로 그렉의 모든 행동들에 사사건건 시비 걸면서 그를 못마땅해 한다. 이에 더해지는 그렉의 온갖 돌출행동으로 인하여 집안 식구들의 그렉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깨지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렉은 사랑하는 팸을 남겨두고 장인인 잭의 미움을 사고 그녀의 고향집을 나오게 되는데....

사실 <미트 페어런츠>(meet the parents)는 너무도 흔해빠진 소재에서 황금 같은 시나리오의 구도를 잡아 낸 상큼한 가족영화다. 물론 여기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감독 제이 로치의 탁월한 흥행감각이다. 로버트 드 니로를 코미디 영화에서 그것도 엄청난 무게감의 소유자를 가벼운 터치의 영화 속에 부담없이 자리잡히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영화 속에서 드니로가 보여 왔던 어둡고 질퍽하며 무거운 캐릭터들은 일반인들이 넘기기엔 꽤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였기 때문이다. 마이크 마이어스와의 <오스틴 파워> 작업으로 인물들간의 유머러스한 관계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감독 스스로 해법을 찾아냈던 모양이다.

영화 첫 5분 동안 부드러운 음악과 함께 들려오는 주인공 그렉(벤 스틸러)의 나레이션을 듣고 있노라면 - 자세히 들어보면 알겠지만 그건 프로포즈를 위한 자기 암시다 - 과연 이 남자가 누굴 좋아하고 있고,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 궁금함을 도저히 참기 힘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고백에 일단은 수긍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남자들의 어줍잖은 자존심이다. 사랑을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그런 것은 전혀 필요 없음을 알기까지 우리는 그렉의 숱한 사고와 불쌍하고 처량한 모습들을 지켜보며 옆에서 웃기도 하고 한편으론 동정하기도 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첫사랑에 목매하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와 아주 유사한 형태로 벤 스틸러의 역할은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전작 <키핑 더 페이스>의 능수능란한 젊은 랍비의 애정행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가 사랑에 관한 방정식에서는 1차식이 아니라 2차 아니면 3차까지도 소화해 낼 수 있는 오지랖을 지녔다고 보는 것이 이 영화에서 그렉이란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벤 스틸러에 대한 올바른 감상관점을 제공할 판단 근거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빌리 크리스탈 이후 헐리웃을 대표할 로맨틱 코미디 연기자로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 <미트 페어런츠>는 그의 대표작이 될 만한 충분한 영화적 소스를 가졌음에 분명한 것 같다.

<미트 페어런츠>는 언제나 어디서나 친구처럼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사위와 장인의 관계 혹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처럼 다소 딱딱하고 어렵지만 언제든지 개선되고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관계로 뒤바뀔 수 있는 그런 관계라는 것을 다소 황당하지만 경망스럽지는 않고, 다소 불평스럽지만 시끄럽지 않고, 다소 억지스럽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드라마로 만들어 낸 깔끔한 영화라는 생각은 영화를 본 처음부터 지금까지 뒤바뀌지 않는 이 영화의 넘치는 생기와 재미 때문인 것 같다. 생기도 없고, 재미도 없는 김 빠진 청혼을 그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사랑에 눈이 먼 순간 모든 잘못도 용서될 수 있는 것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