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 메> 원더랜드에 불을 지른 미키마우스

리뷰

<리베라 메> 원더랜드에 불을 지른 미키마우스 :::

윤상열 | 2000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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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관장하는 제우스에게서 반역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었다. 인간에게 이로운 이기(利器)를 건네기 위한 이 행동은 제우스의 노여움을 불러 일으켰고,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에게 평생 가슴을 쥐어뜯기는 형벌에 처해진다.

영화 <리베라 메> 속에는 블록버스터란 이름이 도배되어 있다. 그것이 무엇으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우리를 어떻게 자극할 것인지 그 모든 것은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상태다. 재난 영화의 큰 틀 속에서 <리베라 메>는 불이란 소재를 택했고, 그것을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만 관객은 평가하면 된다. 그것이 45억 짜리 원더랜드에 대한 미키마우스의 불장난의 조용하지만 힘있는 레퀴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양윤호 감독의 <유리>를 지켜보다 보면 그의 지독한 내세관을 읽을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그의 다음 영화가 엉뚱하게 피해를 본 사례들은 그가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적 접근을 시도하겠다고 자신의 앞으로의 영화에 대한 연출의 변을 밝혔을 때 이미 예견되는 일이기도 했다. <화이트 발렌타인>까지 이어지는 평단과 대중들의 외면은 그의 영화세계가 어떠한 중심도 잡지 못한 채 뒤뚱거리며 방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시사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다양한 영화적 장르의 탐구가 아니라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전문적인 연출의 기를 살리지 못했음을 드러낸 미성숙된 연출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섹스 코미디에 도전한 <미스터 콘돔>은 황당한 순결주의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었고, <짱>은 청소년 영화 혹은 뮤지컬(?)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아마도 이것은 시류에 편승치 못한 기획과 전혀 새롭지 않았던 구성 탓에 있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블록버스터 <리베라 메>는 똑같이 한 번도 평단과 일반 관객으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얻어내지 못했던 감독들이 자신들의 재기를 꿈꾸며 저질러 놓은 거대한 불장난(?)이라는 데에 그 공통점이 있다면 그렇게 불러도 무방할 만큼 닮은꼴이다. 그러나 전자는 그 의도한 바를 모두 달성한 듯이 보이고, 이제는 <리베라 메> 차례다. 감독 자신 또한 이 점에 매우 고심해 있을 것이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시퀸스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시민아파트 화재현장이고, 두번째는 주유소 화재현장, 마지막으로 제일병원 화재현장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리얼리티가 뛰어나고 흠잡을 데 없는 불에 대한 조련으로 달관해 있는 것은 시민아파트 화재현장이다. 아마도 부산시에서 제공한 실제 조형물인 점도 있겠지만 불에 관한 상우(최민수)의 원초적인 적의가 드러나 있어 첫 오프닝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몰입시키기에는 그의 카리스마가 적잖이 도움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특수합성오일로 만들어 낸 화력의 용솟음치는 살의는 마력이라고 부르기에도 충분할 만큼 위력적이다. 거기에다 항상 흠으로 지적되어 온 엉성한 뒷 마무리 역시 세심한 디테일 처리로 깔끔하게 매듭지어 놓은 점이 이 영화의 후반부를 기대하기에 충분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야기는 두번째 주유소 화재현장과 세 번째 제일병원 화재현장으로 이어지면서 미키마우스의 양면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아마도 블록버스터란 이름에 걸 맞는 볼거리의 제공에 있어서는 일단 성공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은 버스를 놓친 승객 마냥 맥이 풀려나가 있다. 12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희수(차승원)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아버지로부터의 학대에 시달리며 누이를 잃은 아픈 과거가 있다. 정신적 상해에 버금가는 기억의 형벌로부터 자유스러워지기 위해 희수는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경험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들에게 문명의 이기 대신 복수의 도구로서 불을 선물한다. 그러나 지루하고 단조롭게 반복되는 희수의 대사들과 방화에 대한 엉뚱한 확신감 - 아마도 방화를 저지르고 난 후 취하는 희수의 행동을 보면 알겠지만 <레옹>의 게리 올드만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 이 그를 과거에 상처에 아파하는 마음의 병을 지닌 자로 보아야 하는지 단순한 방화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범죄자에 불과한지 의문스러울 따름이었다. 마지막에 희수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도록 나두는 것 또한 감독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하나의 제스쳐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아동학대라는 주제와 블록버스터로서 소방관의 애환을 다루었다는 그런 사실 말이다. 의사도 포기한 그런 지독한 살인마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니 말이다. 꽤나 평단과 대중을 의식한 결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언제나 맡은 역할에 폼 나도록 신중해하는 상우역의 최민수는 엘피지 6천kg과 화약 5백 파운드를 혼자서 뒤집어 쓴 듯이 영화 속 화재현장을 들쑤시고 다닌다. 아마 방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초반부 그와 비슷한 중량감을 신선하게 선사했던 현태역의 유지태는 실망스럽게도 영화 중반부에 어이없는 독기로 무장한 희수에게 살해당한다. 차라리 화재현장에서 순직했다면 좀 더 리얼리티가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한다. 희수가 저지른 화재현장에서 사망하든 살해를 당하던 똑 같은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로부터 터져 나오는 최민수의 카리스마(?)는 지리할 만큼 길게 이어진다. 인물의 롱테이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마도 <블랙 잭>과 <유령>에서 그를 외면한 관객이라면 그에게 더 이상의 애정을 보내기에는 일말의 미련도 갖지 못할 것 같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따져 묻기 전에 그를 보고 식상해 할 관객들이 극장으로의 발걸음조차 뗄지 후안무치의 두려움이 앞서는 까닭이다.

인터넷상의 click buster란 광고 전단에 이제 더 이상 두드림은 필요 없다. 다만 신께서 불을 훔쳐간 프로메테우스를 용서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아니 구원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