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작과 비평의 관계.

 [씨네21] 233호에서는 영화 평론가와 영화감독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갈등관계에 대한 기획기사를 실었다. 거기에 실린 4편의 기사를 내가 단 두 문장으로 요약해 보겠다.

 평론가: 볼 가치도 없는 영화, 별 두 개.
 감독  : 그럼 니가 만들어 봐.

 예술 창작자 입장에서 평론가를 볼 때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자신이 혼신의 힘을 들여 만든 영화를 단 몇 줄짜리 글로 난도질 해놓으니 감독이 할 수 있는 말은, "그렇게 잘났으면 니가 만들어 봐." 이게 아니겠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물론 여러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창작의 생산과정과 비평의 생산과정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의 관계에 대한 가장 명쾌한 정의는 리얼리즘적인 측면이 강하긴 하지만 엥겔스의 "세계관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가 아닐까 한다.

 엥겔스는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을 들면서 그가 구 지주 계급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현실에 대해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예술가 특유의 천재적인 영감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상황을 묘사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예술과 기술의 차이를 들라면 예술은 기술과 달리 창작자가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발자크는 자신이 무슨 소설을 쓰는지도 모르고 영감에 따라 이리 쓰고 저리 쓰고 했는데 결과가 나오고 보니 그 시대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짚은 리얼리즘 소설이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창작과 비평의 관계는 아주 명확해진다. 창작자는 영감으로 작업을 하고 평론가는 창작자 자신도 모르는 예술의 결과를 잡아내는 것이다.
  
 2. 영화 평론의 문제점

 그럼 이렇게 명쾌한 관계 속에서 왜 영화 감독들과 영화 평론가들은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을까? 이것은 다른 예술 장르보다도 더 심각하다. 이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영화 평론에 전문적인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이 물론 영화학과의 학위 논문 수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영화학 학위 논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 평론가들이 기껏해야 10줄 짜리 글이나 써대며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한국 영화 저널리즘의 구조를 지적하는 것이다.

 송능한 감독은 영화 [세기말]을 통해 한국 영화 평론가들을 이렇게 돌려 비판했다.

 최근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세기말>에서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주인공이 평론가를 비판하는 장면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시나리오 작가 두섭이 술집에서 만난 평론가에게 일침을 놓는다. “자넨, 자네 마누라한테도 별을 주고 그러나? 마누라 쌍통은 두개반, 젖퉁이는 별 세개… 그러면서 살아?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신중해야지. 영화를 밥그릇으로 보니까 함부로 별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천박하고 파쇼 같은 짓이야. 그런 짓 하지마.” ([씨네21] 제233호)

 [씨네21]을 비롯하여 한국 언론에서 주로 하는 20자 영화평이나 별 주기 등에 대해 영화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통해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럼 과연 20자 영화평을 담당했던 영화 평론가들은 바로 그 송능한 감독의 영화 <세기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를 내렸을까?

 강한섭 20자평은 세기말의 타락이 아니라 세기말적 유머입니다 ★★★
 김영진 20자평을 거부할 만한 자질이 있는 영화 ★★★
 박평식 세상은 시궁창, 나는 가련하고 당신들은 비열하다 ★★★
 심영섭 정면승부할 줄 알았더니 막판에 꼬리를 내리네 ★★★
 유지나 목에 힘을 빼면 더 멋있었을 걸(글자수 세지 말 것) ★★★ ([씨네21], 제232호)

 영화 평론가들은 적당히 별 세 개를 주면서 뭔가 찔렸는지 20자 영화 평에 대해서도 정말 20자도 안 되는 평을 한 마디씩 했다. 우선 김영진의 글, "20자평을 거부할 만한 자질이 있는 영화"를 생각해 보자. 영화 감독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런 말이 나올 것이다.

 "그럼 다른 영화는 20자로 날려 버려도 된다는 말인가?"

 이런 상황에 대해 좀 더 직설적으로 비판한 사람은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임상수 감독이다.

 한국의 영화평론가는 더 이상 영화에 관한 글을 쓰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영화에 별점을 줄 뿐이다. 떠오르는 짓궂은 의문들. 별점을 주고도 원고료(?)를 받는지? 받는다면 얼마를 어떤 식으로 계산해 받는지? ([씨네21], 제 233호)

 20자 영화평은 단지 평론가와 창작자 사이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영화평의 글쓰기 수준이 딱 20자 수준도 안 되는 상황까지 감안해서 봐줘야 한다. 이것 역시 영화평론가들의 자질 문제는 아니다.

 3. 문제는 다시 저널리즘이다.

 앞서 평론이 하나의 장르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예술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것을 잡아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영화평론이 이제껏 그것을 해냈는지 한번 따져보자. 아마도 그것은 따지나마나 감독들이 갖고 있는 불만 자체가 그에 대한 답을 해줄 것이다.

 감독들은 평론가들이 기자들이나 쓰는 A4 반 매도 안 되는 글을 쓰면서 여기 저기 대형 언론매체만 나타나려 한다고 비판한다. 20자 비평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영화 평론가들이 엥겔스가 말한 대로 "세계관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매체에 나타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없다. 문학평론가들은 그래도 계간지 등을 통해 자신의 논문을 소수의 문학팬들에게 알릴 수나 있다. 음악 비평이나 미술 비평은 애초에 대중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화되어 있다. 그런데 영화평론은 누구나 쓸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으면서도 영화 평론가라면 뭔가 다른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는 매체마저도 없기 때문에 영화부 기자, 영화 매니아들과 어떠한 차별성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일보] 영화부 이동진 기자 정도가 그 짧은 글에 온갖 개론적 지식을 다 늘어놓으며 자신의 글을 차별화하고 있는 것 아니던가?

 영화 평론가들은 이것 한 번만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신문 쪼가리에다 쓰는 글 가지고 그들이 말하는 일반 대중들과 차별성을 보일 만한 탁월함을 보여줄 수 있는지. 내가 보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글쓰기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어쩌다 사안에 따라 대중매체에 나타나야지 대중매체에 나타나는 빈도수 가지고 평론가의 지명도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전문 비평가가 설 자리는 아예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핑클이나 명세빈에 대해 글 한 편을 써도 A4 10매 이하로는 쓰지 않는다. 핑클의 이효리가 봐도 "아하. 그렇구나."정도의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자료들을 다 모아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송능한 감독이나 임상수 감독과 같이 자신들 못지 않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글을 써야하는 평론가들이 20자 평을 쓰고 있다는 것은 수준 이하이다.

 4. 대안은 무엇인가?

 [씨네21] 특집 기사를 보면서 가장 중요한 대안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나온 대안은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합리적인 논쟁의 역사가 없다는 사실은 평단의 게으름을 질책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씨는 “평론가들의 문제의식이 치열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 “작품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고 극찬과 악평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 절실한 것은 서로의 불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용기일 것이다. ([씨네21], 제 233호)

 나는 좀 다른 측면에서의 용기를 지적하고 싶다. 영화판에서는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극찬과 악평이 공존할 수는 있지만 그 둘 사이에 뭔가 논쟁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영화 감독이 3류 영화를 만들어 평론가들에게 두들겨 맞았으면, 3류 영화평을 쓰는 영화 평론가들도 두들겨 맞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한국의 영화 평론계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3류라도 매체만 잡고 있으면 언제든지 쪼가리 글을 쓸 수 있고 그 쪼가리 글만 가지고 평론가 행세를 할 수 있다.

 평론가들끼리도 논쟁을 하겠다는 용기를 냈다고 치자. 그럼 어디서? 어떻게? 20자평 가지고 논쟁이 가능하겠는가? 아니면 [조선일보] 영화란에서 논쟁이 가능하겠는가? 논쟁을 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 공간은 바로 전문적인 영화 매체이다. 최소한 A4 10매 이상의 글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영화 전문 매체가 없는 상황에서 논쟁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임상수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영화를 만들어 내보내는 건 이를테면 절절한 러브레터를 세상에 띄우는 거나 같다. 합당한 답신은 쉽사리 오지 않았고 난 그동안 몹시 외로왔다. 하지만 <여성이론>(여성문화이론 연구서, 1999)이라는 책에서 발견한 주유신의 글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여성 섹슈얼리티의 재현'은 마침내 나를 황홀케 했다. ([씨네21], 제 233호)

 왜 임상수 감독은 영화매체가 아닌 여성매체의 실린 글을 보고 황홀해 했을까? 이것이 바로 영화 전문매체의 부재를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당연히 영화 평론가들이 만들어야 한다. 문학 쪽의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같은 계간지들은 언론사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평론가들 스스로 만든 것이다. 영화 평론가 중에서 스스로 자신의 매체를 만든 사람은 정성일 정도에 불과하다. 왜 다른 평론가들은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일까? 평론가 강한섭은 영화 <거짓말>에 별 두 개를 주면서 이렇게 20자 비평을 했었다.

 강한섭 선정주의 제작+영화법의 모순+비평-저널리즘의 요설=한국은 거짓말 공화국 ★★

 '저널리즘의 요설'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충 "한국의 저널리즘 문제 있다."이런 뜻 아니겠는가? 그럼 거기에 대해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계속 이런 식으로 앞다투어 언론사만 기웃거려서는 평론가 대접은 물론 영화부 기자 정도의 대접도 받지 못하게 된다. 20자 영화평이나 원고지 10매짜리 영화평은 기자들이 더 잘 쓸 것 아닌가?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평론가들이 이렇게 하소연해도 설득력이 없다.

 그런데 다소 시비를 걸자면 비평의 공력은 상당 부분 영화가 키워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계는 걸작과 수작을 고루 내놓고 있는데 평단은 삼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그런 기현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과연 한국영화가 고도의 지적 담론을, 진정한 전문비평을 요구할 만큼 질적 비약을 이룬 것이 대세이기는 한 것일까.([씨네21], 제 233호)
 
 나는 지금 그런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윗 글을 쓴 김영진 및 영화 평론가들이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던 영화 <박하사탕>에 대해 바로 그 전문비평을 요구했다고 치자. 지금 영화평론가들이 어디 가서 전문비평을 쓸 수 있겠는가?

 평론가들이 창작자들에게 항상 요구하는 도전정신, 창의력 등을 나는 평론가들에게도 요구한다. 기존 매체에서 얻는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들의 학적 지식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매체를 하나 만들라고. 돈이 없으면 웹매거진이라도 만들어 영역을 넓혀갈 수 있다. 그것조차 할 만한 용기와 창의력이 없다면 우리 <대자보>를 이용하라. <대자보>는 언제나 열려있고 분량도 양껏 쓸 수 있다. 거기서 서로 치고 받으며 누가 진짜 3류이고, 2.9류인지 가려보라. 그걸 해주면서 20자 영화평을 쓴다면 평론가 강한섭의 말대로 20자 평은 세기말의 유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유머가 아니라 평론가라는 직함 하나로 내려치는 폭력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