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칙왕> The Foul King :::
장길산 | 2000년 04월 01일
조회 1396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장진영
다소 쇼킹하기까지 했던 레슬링 경기 장면과 여자 친구의 성화에 못이기는 체 - 이런 종류의 인간형은 조심해야 한다. 결과가 좋으면 본전이고, 좋지 않으면 핀잔이나 듣기 십상이다. - 하고 반칙왕을 보러 나섰다.
이제는 국내 tv 방송에서조차 볼 수 없는 한물가도 한참 간 프로레슬링이란 소재를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우선 그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특이한 것이, 스포츠의 하나임을 자처하면서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엄청난 오바(over)와 눈속임이 만연하고 대다수가 이를 인정하면서도 수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고 열렬한 응원과 환호성이 존재하는 '대중 오락'이라는 점... 어찌 보면, 영원한 미스테리로 비춰지기까지 한다. 아주 어렸을 적, 그게 다 짜고 하는거라는 말을 듣고 꽤나 분개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랐었고, 매너 좋고 멋진 우리의 주인공이 나타나면 애간장을 태우며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신비의 스포츠 프로레슬링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되살려 준다. 그래서 결국, 그 이상한 성질이 오히려 이렇게 훌쩍 흘러버린 세월을 넘어서 영화로 등장함에도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해주는 것이다. 감독의 선구안이 절묘했다는 뜻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평범하다 못해 다소 무능한 한 인물이 어떤 계기를 통해 미지의 영역에 뛰어들게 되고, 이것이 그를 사로잡아간다는 것. 미지의 영역이 스포츠면 당연히 승패를 떠난 눈물겨운 스포츠 드라마가 되고, 분명히 주인공은 이를 통해 세상과 싸워나갈 힘을 얻게될 것이고, 그 와중에 마음씨 착한 예쁜 아가씨를 만나게 되고...
이 영화의 첫번째 미덕은 배우들의 실감나는 레슬링 연기다. 거의 감동적인 수준이었다. 화제가 됐던 현란한 송강호의 개인기가 나오는 꿈속 장면이 그 화려함으로 경탄할만 하다면, 영화 막바지의 실제 경기장면의 현실적 - 레슬링 경기내에서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 인 액션은 그 무자비함과 인물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앞의 장면은 마치 CF를 보듯 완벽하게 연출된 묘기이며, 뒤의 장면은 레슬링 경기의 한 장면을 실감나게 재현해 보여준다. 약간 잔인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속시원하게 이겨주지 못해서 약간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후련하면서도 '말도 안되는군'하고 중얼거리며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을 다수 양성했을 듯도 하다.
 둘때 미덕이라면 앞서도 언급했듯이 피터지는 싸움의 결과 처리이다. 당연한 일이겠으나, 주인공이 단순간에 레슬링계의 불사신적 존재로 탈바꿈하지 않으며, 레슬링 좀 했다고 해서 그의 최대 장애물인 회사 상관을 손가락 두 개로 거뜬하게 제압해 버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 장면까지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해대는 주인공의 모습 덕에, 영화는 지나친 이상주의로도 비관주의로도 흐르지 않고 중심을 잡게 된다. '그래, 그렇더라도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는 거지'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짜임새도 좋고, 배우들의 비(非)레슬링 연기도 별로 나무랄데가 없었다. CF에서 봤던 장진영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발견한 것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예쁘고 세련된 이미지를 벗어나 - 사실 이동전화 광고 밖에 떠오르는게 없는 까닭에 - 아주 수수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퍽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상면 같은 배우는 요즘 워낙에 주가를 올리고 있으므로 별로 언급의 필요도 없을듯 하다.
영화 전체를 통털어 몇 장면은 약간 거슬리는 면이 없지 않았으나 극 전개도 매끄럽고, 레슬링 장면도 관객을 흥분시킬만 하고, 개성있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이 퍽 즐거운 영화였다.
p.s)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웃었던 부분은, 송강호가 사랑 고백에 처참히 실패하고 마구 달려가던 부분. 그냥 달리기만 해도 웃겼을텐데 시원스럽게 컷이 경쾌하게 탁탁 넘어가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 난 이상하게도 달리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쿵쿵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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