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제와 암살자> :::
이원식 | 2000년 03월 01일
조회 739
<황제와 암살자>(The Emperor and Assasin) 荊軻刺秦王
감독: 첸 카이거
스펙터클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스펙터클 그 자체를 둘러싼 수많은 담론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어찌보면 문제는 스펙터클 그 자체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 본질은 스펙터클을 빙자한 수많은 정치적 협잡들과 자본의 이동에 대한 한 축으로서 보이는 현상이 스펙터클이라는 적절한 도구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일수도 있다는 의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쉰들러 리스트'와의 비교가 가장 적절한 예일 것이다.)
이제까지 중국영화를 중심으로 둘러싼 담론들은 예상만큼 다양하지도 또 독자적이지도 못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는 서구의 자기조절체로서의 동양이라는 대비점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을 해석하는데에서조차도 수많은 자가당
착적인 해석으로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게 한다.
이번에 보게될 <황제와 암살자>(편의상 영문제목으로 부르도록 하자)는 첸 카이거가 1년 3개월의 기간을 통해서 만들어낸 중국역사의 전환점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혹은 모르겠다. 어찌보자면 이 영화는 기존의 역사적 해석에 대한 종합판인지도... 그 동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베르톨루치가 '마지막 황제'를 통해서 중앙 집권적 전제국가의 끝을 철저히 서구인의 눈으로 재단했다는 것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 낸 것이기에, 일찍이 로마 제국보다 앞선 시기에 거대한 대제국(大帝國)을 만들어낸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연장선상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해석을 둘러싼 담론들은 현대 중국의 인권문제와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정확히 1세기에 걸쳐서 진행되는 이 진입과 편입의 문제는) 영화의 검열을 둘러싼 국제 영화제속의 '중국따돌리기'의 일환으로서 전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통해서 또 하나의 검열의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즉 아직까지도 일반관객이나 대중에게는 전혀 평가받지 못하는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어쩌면 계속해서 중국 자체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중국 영화가 겪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전적으로 사마천의 사기속의 '시황제본전'의 내용에 기대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역사속의 '正史'로 여겨지는 사마천의 이 저작은 성적불구의 콤플렉스 위에서 써낸 ( 사마천은 중국 한나라의 무왕에 의해서 궁형-성기를 잘라냄으로써 자손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형벌-을 당했었다.) 한나라의 정통성에 대한 집착 때문에 진왕을 미치광이자 사생아, 그리고 부모와 동생을 죽인 패륜아로 만드는 데 힘썼고, 사기속의 유협외전의 시초가 되는 형가의 이야기를 집어넣게 만들었다. ( 그리고 재미있게도 형가의 이야기는 지금 무협이라는 현대적 장르에서 다양하게 발전중이다) 이에 대해서는 첸 카이거 스스로가 언급했듯이 역사에 대한 강박관념보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것. 즉 줄과 줄 사이의 행간을 어떻게 채워 넣는가에 대해서 작가 자신의 관점과 시야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결국 모든 것은 감독 스스로의 시선에 달린 것이었으며, 그 표현에서 조차도 스펙터클은 어찌보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관습의 습득은 지금으로서는 당연하달 수 밖에 없음을 왜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오로지 진왕이 형가나 혹은 연왕자와 침대에서 뒹구는 것 만을 바라는 것일까?
문제는 이것이다. <황제와 암살자>는 서구의 평론가들이나 칸영화제에서의 평가에서처럼 옥시덴탈리즘에 가득찬 하나의 실패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평가의 방법이 어찌보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라는 것임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단순도식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오리엔탈리즘과 그 쌍둥이인 옥시덴탈리즘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대상화, 정형화하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반사경으로 삼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하는것이고, 결국 스스로 극복하려고 한타자의 범주 자체(즉, 동/서, 표준화, 고정관념화)를 영속화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유지키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공은 다시 '스펙터클'로 넘어가게 된다. 그들이 얘기하는 '禪적인' (Zen)것이라는 것의 이면에 자리한 동양의 스펙터클은 근거없는 비방일 가능성이 크다. 혹은 그 지적대로 서구의 관습적 행태를 그대로 본받았다는 문제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로서는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을 지니지 못한다.
다만 진왕을 둘러싼 한 작가의 해석보다는 영화에 출연한 군졸숫자나 의상의 화려함이 문제가 된다면 앞으로도 스펙터클 영화는 '쉰들러' 에서처럼 벌거벗고 나오는 것만이 허용될지도 모른다 생각이 든다.
이 자리에서 왜 화려한 의상과 수많은 출연진들, 그리고 광활한 대륙의 초원이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영화속의 디테일한 부분보다는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로 보고자 하는 것이 올바를 관람법일 수도 있다.그것은 애증과 살인이라는 것('生다'는 것 그 자체를) 둘러싼 정과 사의 싸움이 진왕과 형가로 대비되며 그리고 그 가운데 모든 욕망의 뿌리인 조나라 공주의 존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키노의 지적처럼 단순한 삼각관계에 묶여서 수만의 시대적 배경 묘사가 병풍속의 그림처럼 보인다는 것은 천하를 통일한 황제와 일개 자객과의 비교라는 점을 무시했기 때문에 나온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정과 사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며 살인자일 뿐이며, 그 차이란 한 사람을 죽였느냐 수만을 죽였느냐의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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