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리음모이론 :::
여임동 | 1999년 11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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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쉬리>를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한 명은 봤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아직 우리 나라는 매표 전산화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곧이 믿을 수는 없지만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쉬리>가 재미있고, 한석규라는 스타배우에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감독에, 분단 현실이라는 선정적 소재에, 강력한 직배영화가 없는 시점에 개봉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내 머리통은 이런 기본 전제와 영화 <쉬리>라는 데이터를 넣고 아무리 굴려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쉬리>의 기형적인 성공을 절대로 있는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나는 다르게 이 사태의 원인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진실은 저 너머에 있으니(Trust no one, Truth is out there), 이 글에서 나는 <쉬리>의 성공을 이끌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몇 가지 음모들을 까발리려고 한다. 이 음모이론에 동의하든 말든 그건 여러분의 자유다. 그럼 시작하자.
음모이론을 위한 음모자는 위협적인 타자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그럴듯 하므로 <쉬리>를 둘러싼 한국영화계 내부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타자인 직배영화사들을 먼저 음모자로 설정한다. 이름하여 "직배영화 음모설". <쉬리>의 성공은 한국영화에 도움이 되지 직배영화에게는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모르시는 말씀, 잘 들어보시라.
 <쉬리>가 개봉을 앞두고 '씨넥스'에서 시사회를 가지고 난 후 직배영화사의 책임자들은 함께 회동해 <쉬리>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 때 무슨 이야기가 나왔는지 물론 알 수는 없지만 설 개봉예정이었던 <페이백>의 개봉은 3월로 늦춰졌고, 설이라는 큰 대목에 대박성 할리우드영화는 한편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쉬리>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물론 <쉬리>와 맞개봉하는 것이 영화의 흥행에 해가 될 듯도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는 3월보다는 2월 연휴에 개봉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던 것은 <쉬리>의 성공이 자신들에게 해보다 득이 많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근거는 '스크린쿼터'이다. 직배영화들에게 가장 해가 되는 이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거나 없애기 위해서는 무소불위의 성공을 거두는 한국 영화가 필요하다. '작품이 좋으면 할리우드 영화를 꺾을 수 있다'는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결국 한국영화 시장을 지키는 힘은 스크린쿼터같은 보호무역적 장막이 아니라 성공적인 작품이며, 세계 시장을 생각하며 대규모자본을 들여 재미있게 찍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 시장 안에서도 성공할 수 있으며 시장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할리우드 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음모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쉬리>냐고? 모든 평론가들이 지적하듯 <쉬리>는 유사 할리우드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 문법에 충실한 영화가 성공해야 자신들의 영화 성공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너무나 한국적인 영화나 유럽적인 영화는 자신들의 성공에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를 보고도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지기를 노리는 것이다.
 두 번째 음모자는 '삼성'이다. 삼성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꿈꾸었지만 실패했고, 시장에서 철수 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삼성의 음모는 없는 것이 아니냐고? 모르시는 말씀. 이 음모설을 더욱 근거있게 하기 위해 나는 '정부'를 끌어들인다. 이름하여 "삼성-정부 공모설". 삼성이 돈이 되는 이 영화산업을 포기할 리 만무한 것. 대우도 영화 사업을 안한다고 하지만 세음 미디어라는 자회사를 통해 지금도 열심히 영화산업에 발을 붙이고 있다. 삼성은 <쉬리>의 성공 만으로도 그 간의 손해를 일정 부분 만회했다고 한다. 삼성이 영화를 포기했을 때 많은 영화인들은 삼성의 몫을 정부가 책임지기를 원했고, 신낙균 장관이 이건희 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정부는 삼성이 영화를 포기하는 것보다 계속하는 것이 이익이다. 삼성은 정부의 세계화에 걸맞는 영화 기업 아닌가?
뉴리전시사에 투자하여 영화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기업이니까. 잔혹한 장면들로 18세 미만 관람 불가로 등급판정 받아야할 <쉬리>가 15세 미만 관람불가로 된 것부터 정부의 주요 인사가 관람한다거나, 국방부에서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은 <쉬리>를 단순한 영화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반공 영화이기 때문에 국방부나 국가정보원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고? 모르면 가만히 계시라니까. 실제 우리 나라의 방공망이 <쉬리>처럼 허술하다면 이건 오히려 골때리는 일이다. <쉬리>를 반공 이데올로기로만 보는 것은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일. 영화산업의 세계화를 위해선 세계화에 능동적인 대기업이 오히려 필요하며, 영화산업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삼성과 정부의 요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정부에서 <쉬리>의 성공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 '삼성-정부 공모설'은 앞의 '직배영화 음모설'과 함께 '신자유주의 음모설'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세 번째는 음모라고 하긴 뭣하고 '한국영화 관객 저급설'. 이름이 좀 이상하지만, <쉬리>의 성공은 한국 관객의 수준 낮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아무리 관대하게 봐도 <쉬리>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못하다. <다이하드>나 <더 록>같은 영화들보다 <쉬리>에 열광하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한국민의 애국심의 발로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총격전에서 카메라만 흔들어도 열광하고 할리우드 영화가 안부럽다고 이야기하는걸 보면, 그리고 상업적 요구에 의해 내러티브가 헐거워도 좋아하는 걸 보면 우리 나라 영화관객의 수준이 아주 낮다는 것을 여실히 알게 된다.
이 밖에 <쉬리>에 관한 기사만 취급하는 "삼성-언론사 공모설", 한국 영화 산업의 부정적인 현실을 숨기려는 "제작자 음모설"-이 제작자음모설은 한번 고려해 볼 구석이 있다. <쉬리>의 성공으로 보여지는 수치들은 배급사, 감독, 배우 한석규가 버는 돈의 규모만을 이야기한다. <쉬리>의 성공은 절대 한국영화 스탭들의 안정적인 지위 확보나 경제력 확보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 스탭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지워버리는 기능을 하는 것이 배급사나 감독, 스타배우의 성공담이다-도 있지만 여기서 줄일까 한다.
뭐 이 음모이론들이 맞을 수도 있고 영 아닐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진실 만을 믿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쉬리>의 성공에 의해 은폐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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