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참으면서 일일이 시체들을 확인하던 부인과 노인들은 손수건을 입에다 막고 스스로 놀라는 소리를 삼켜버렸고, 흐르는 눈물을 닦다가 혈육 찾기를 포기하고 주저 앉아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행여라도 찾아냈을 때에는 그 처참한 모습에 관을 붙들고 미친 듯이 통곡하다가 스스로 탈진하여 기절해 버리는 부인들도 있었다......"
(황석영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중에서)
한 세기를 서둘러 지워버리고 싶은 이들의 어수선한 움직임 속에 처참하게 죽어간 이들의 원혼은 어둠 속으로 망각의 무게속으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4월 3일 제주에서...온 강토를 피로 물들인 6.25 동란....그리고 그 와중에 동족들에게 적군으로, 빨갱이로, 또 부역자로 몰려 죽은 이들과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누길 거부하고 반역한 여수 순천의 장병들....오로지 민중해방을 위한 일념으로 지리산 피아골에서 피를 뿌리고 죽어간 빨치산들.... 이승만 독재 정권에 떨쳐 일어선 4.19의 주역들..... 그리고...... 광주.
그 오욕의 세기가 끝날 무렵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행복한 장의사라는 어쩌면 너무나도 역설적이고 아이러니 이름의 영화가. 구차스런 생을 마치고 구역질 나도록 비비꼬인 말라비틀린 시신을 염하고 파 묻는 일이 대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일까?
".....어떤 젊은 아가씨는 하얀 양말을 수십 켤레 가지고 와서는 시체의 맨발에다 신겨 주었다. 여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 하지 않았으나 알려진 바로는 술집 접대부였다고 한다. 그 여자는 입관시킬 때에는 직접 물을 떠다가 참혹한 시체를 씻겨 주곤 했다......"
(황석영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중에서)
영화는 전라도의 작은 읍내, 낙천면에서 시작된다. 충청도, 경상도도 아닌 전라도라는 압제와 살육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은 공간에서 정치적인 은유를 발견하는 것은 나의 성급한 판단일까.
단순히 감독이 말하는 데로'웃음을 통해서 본 죽음과 삶의 카타르시스'가 이 영화의 전부일 가능성도 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의 긴박감 속에도 가벼운 유머를 덧씌우는 작가의 경향은 그 어떤 진지함의 기호에도 매몰되지 않고 순도높은 유머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짙게 배어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개봉영화에서는 삭제되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지만 원안 시나리오에서는 홍수로 넘쳐나는 강물때문에 휩쓸려버린 수많은 관들을 장의사 노인이 일일이 주인을 찾아주는 장면이 있다. 수많은 주검들. 더러운 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간 이들이나 수명을 다하고 죽어간 사람들이나 이름조차 잊혀진 채로 썩다만 고기덩이로 흩어져버리는 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고통일 것이다. 잊혀진 이들에게 다시 한번 이름을 호명하고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묘비를 깍아 새워주는 사람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을까? 또 이들보다 더더욱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추악했던 20세기. 이름없이 죽어간 저 수많은 한맺힌 영혼들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러여 할 것인가. 눈물이 마르고 말라 피눈물이 흐르더라도 그들의 한이 풀어질 수 있을까.
동시대의 공간에서 다뤄지는 모든 죽음에 대한 메타포는 결코 이 땅에서 일어났던 어두운 역사와 결별할 수 없다. 애써 영화의 후반부를 삭제해 가며 대량의 죽음/학살이 은유하는 정치성을 제거하려 했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했을까. 한 세기의 '한'을 위무하는 씻김굿 같은
영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낙천면이라는 가상의 공간에도 그 한 서린 죽음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너무 과한 것이었을까.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저 삶을 통달한 듯한 한 장의사의 너털웃음으로 털어버리는 영화. 미대 출신 감독의 탁월한 감각으로 잡아낸 아름다운 전라도 농촌 풍광에 어우러지는 중견연기인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죽음이 엔딩 타이틀을 가득 메우는 <꽃잎> 처럼 가볍게 페이드 아웃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장판돌: 이 일을 할라문 첫 번째가 빨리 잊어부러야 한다... 안 그러면 시체가 눈 앞에 있어 못살아. 거기에도 쏘주가 최고야...."
(<행복한 장의사> 중에서)
그렇다. 잊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을 잊기 위해선 먼저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한, 그들의 죽음 뒤에 서있는 구역질 나는 이 땅의 모순들까지도. 그것들이 젯상 위에서 조용히 사위어 가는 향불 마냥 사라졌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린 죽음을 잊어도 좋을 것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장의사가 되기 위해선 먼저 '기억해야 한다'.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행복한 장의사>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
".....어떤 젊은 아가씨는 하얀 양말을 수십 켤레 가지고 와서는 시체의 맨발에다 신겨 주었다. 여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 하지 않았으나 알려진 바로는 술집 접대부였다고 한다. 그 여자는 입관시킬 때에는 직접 물을 떠다가 참혹한 시체를 씻겨 주곤 했다......"
"재현 : ...(고개를 돌리며) 저 장의사 그만둘래요.. / 장판돌: 모자란 놈들.장의사는 눈물이 말라야 되는거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