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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한국영화, 더이상 애국심은 보이지 않으리 :::


양유창 | 2001년 11월 30일
조회 6354


우리 국민의 애국심은 참 뜨거운 편이어서 국가대표 축구대항전에서는 한국 한국을 소리지르고, 어떤 TV 광고는 광개토대왕처럼 한국인이 세계를 재패해야 한다고 나즈막히 주장하며, 수많은 부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감각해진 국민은 IMF 경제위기 때 국가를 살려야 한다는 명목 하에 금모으기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국가대표 경기가 아닌 축구장은 주정뱅이 아저씨들로 한산하기 그지 없으며, 만약 같은 TV 광고가 다른 유럽 국가에서 나왔다면 제국주의적 발언으로 인해 당장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을 것이 틀림 없으며, 또 금모으기로 모은 금들은 실제적으로 당시 아주 낮은 가격에 해외에 팔렸는데 그 돈은 당시 경제 위기에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최근 경기가 좋아지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다시 금을 사모으고 있는 바람에(한국은 금을 거의 전량 해외에서 수입한다) 괜히 손해만 보고 말았다.

이렇게 한국인의 애국심은 조금 '오버'한다. 정보의 부족일런지도 모르지만, 무작정 덤비고 이에 뒤따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혹은 유행에 뒤처진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후를 대비하지 못하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애국심의 바람이 불고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라이방> 4편의 영화를 다시 개봉할테니 좋은 한국영화를 꼭 봐주십시오. 라는 형태의 한국영화 애국심 건드리기이다. 이런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찾아야 다양한 한국영화가 나올 수 있다면서 관객이 영화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이렇게 좋은 영화를 봐줘야 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1. 영화의 흥행은 팔할이 배급이다

현재 우리나라 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는 멀티플렉스로 인해 배급사가 거대해지면서 규모의 경제가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영관이 많아지고 프린트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소규모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곳은 줄었다. 현재 서울에서 상영중인 영화는 20편 안팎인데 그중 6-7편의 대형영화가 관객을 싹쓸이하고 이 싹쓸이 영화들은 목좋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흥행상위 6-7편이 아닌 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은 서울 주변부의 극장을 찾아야 한다. 그나마 주변부 극장 역시 작은 영화들을 위한 극장은 아니어서 호시탐탐 대박영화를 걸고 싶은 마음에 들떠 있는 극장주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가 제작비 규모가 작고 작가의식이 강한 영화들을 본다는 것이 꼭 이런 종류의 한국영화를 살리는 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소규모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들이 생기고 유통망이 생기지 않는 한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밖에 마케팅을 할 수가 없을 것이고, 그렇게 애국심에 기반한 마케팅이 반복되면 관객들이 언젠가는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 우리가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또 계속 볼 수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지출하는 돈이 소규모 영화를 위한 배급망을 구축하는데 쓰일 수 있도록 만들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입장수익을 극장을 짓는데 투자하거나 저예산 영화 제작 혹은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영화사가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흥행수익을 얻기 위해 애국심을 마케팅으로 이용한다면 그것은 단지 일회성에 지나지 않으며, 그래서 그다지 유쾌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2. 연극이 죽어간다

영화의 발달은 분명히 인접하고 있는 다른 문화, 즉 음악, 미술 등의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 영화는 종합문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단기적으로 음악과 미술이 영화의 힘을 빌어 대중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너도나도 영화계로 진출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인재들이 다른 문화 보다도 우선적으로 영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늘어나면 시스템 역시 늘어나게 될 것이고, 이것은 분명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의 확장으로 나타나게 되겠지만, 반면에 다른 문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회비용의 감소로 나타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우리는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짐으로 인해 거기에 참여한 인재들이 창작했을 수도 있는 멋진 그림이나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소득격차가 심한 문화 사이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해져서 최근 연극계는 발전하는 영화 때문에 울상이라고 한다. 배우 10명 중 8명은 영화계의 콜을 기다리는 중이고, 연출자들 역시 영화를 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대학로나 연극계에서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가 너무 힘이 든다. 이렇게 균형을 잃어버린 영화의 독주가 과연 한국문화에 있어 도움이 되겠는가?

3. 한국영화는 과연 수익사업인가

요 몇 년 사이에 한국영화가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 과대포장된 면이 없지 않다. 흥행기호에 맞춘 몇 편의 영화들만이 높은 수익을 올리고 그외 80%의 영화들은 손익분기점 맞추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 수익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분배하기 위한 비용산출문제, 각종 저작권과 매체별 판권이 제작사와 배급사, 투자사 중 누구에게 몇 퍼센트나 있는가 하는 문제 등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런 깔끔하지 않은 문제들(게다가 영화판의 조폭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을 '대충대충' 그대로 남겨둔 채 '빨리빨리' 영화 찍어서 크게 한 몫 잡으려는 영악한 돈들은 충무로에 꾸준히 모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희망이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몇 일 전 카타르 도하에서 뉴라운드가 출범되었기 때문에 아마 조만간 스크린쿼터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한국영화가 시장 점유율 50%까지 확대된 상태에서 스크린쿼터는 예전처럼 열기를 띤 문제는 아닐 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부는 (지금은 비록 발뺌하겠지만) 아마도 식량주권을 유예하기 위해 미국에게 스크린쿼터를 내주고 쌀개방을 몇 년간 지연시킬 것이다. 그래서 스크린쿼터는 2005년 1월 폐지될 것이다. 우리는 그때까지 지금의 한국영화 전성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지금 '와나라고' 보기운동이 기저에 깔고 있는 암묵적 애국심이 그때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문화시스템을 만드는 데 적확하게 투자하는 것이고, 그 투자를 위한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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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Comments

동의 합니다. golmokgil(최재필) - 2001/12/08
양유창님 대단하십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군요....
정말 대단한 딴지 걸기 입니다.. 하긴여 우리나라는 IMF이후부터 국산품 애용이라는 맹목적 이유로 개나소나 그 이후 모든 상품과 문화에 애국심을 내걸어 하는 짓보면은 정말 쪽팔리고... 문화하등국으로 느껴 지더군여... 한국인들 제발 정신차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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