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스파일>과 음모이론: 90년대를 살다보니... :::
모희순 | 1999년 10월 01일
조회 1367
칼 포퍼는 음모이론을 "고통과 재난 등이 어떤 강력한 개인이나 집단의 음모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간단히 설명한다. 이런 음모이론은 일반적으로 사회가 혼란할 때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즉, 우리의 삶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하서 명확한 해석이 어려울 때,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심적인 역할을 할 무언가가 없을 때, 바로 지금 같은 때, 음모이론이 빛을 발한다는 뜻이다.
음모이론은 상상력에 의해 태어나고 추리기법에 의해 키워지므로 학문적이거나 과학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상상력과 추리기법이라, 이건 대중들에게는 아주 입맛 당기는 취미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음모이론은 자주 매체 속에 등장한다.
물론 음모이론이 이전에는 하나도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90년대에 들어서는 주류 문화를 위협할 만큼 활발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음모이론 영화로는 『JFK』, 『컨스피러시』, 『트루먼 쇼』, 『매트릭스』 등을 들 수 있다. 이전에는 주로 극장에서 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TV에서도 음모이론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바로 신드롬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 Fox사의 역작, 『The X-Files』다.
『The X-Files』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팬을 전지구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미국의 드라마 시리즈이다. 7년 동안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음모이론과 paranormal한 현상들을 아주 무겁고 진지하게 복합적으로 다루어 왔다. 물론 최근에는 팬 서비스 차원에서 코미디물로 연출되거나 과감한 패러디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등 지루한 감을 없애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낡아버린 느낌도 없지 않지만, 여전히 김 호흡으로 음모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음모이론을 주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편집광에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The X-Files』의 주인공 멀더도 예외가 아니다. 자칫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외치는 정신병자가 되기 쉬운 이 사람은 정상인으로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아주 적절한 장치를 갖고 있다. 바로 파트너인 스컬리이다. (지금은 확고부동한 동반자로서의 자리를 확실히 하고 있지만, 원래는 감시 목적으로 투입된 음모의 일부였다.) 스컬리는 자칫 피해의식에 빠져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는 멀더에게 아주 과학적인 회의론을 펼침으로써 균형 감각을 부여해 준다. 멀더의 직관과 스컬리의 과학적 논리가 만들어 내는 균형과 긴장은 드라마를 더 맛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The X-Files』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한도 끝도 없는 음모에 있다. 『The X-Files』속의 음모는 단지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정부가 은폐하고 있다는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어떤 소수의 권력자 층이 외계인의 식민지화 작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에까지 확장되었고, 게다가 등장 인물이 겪는 개인적, 가족적 갈등도 음모의 내부에 있다는 데까지 미쳐있다.
멀더와 스컬리는 그 음모의 실체, 진실을 알기를 원하지만 언제나 '진실은 저 밖에 있다.' 이것은 '불가지론'이라는 음모이론의 기본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 진실을 알려고 노력을 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진실에 다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들을 둘러싼 음모는 언제나 한 가지의 진실을 알려주고는 열 가지의 의혹을 제시하며, 모든 음모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세력은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인다. 이것이『The X-Files』가 많은 수의 시청자를 확보 했다기 보다 마니아 층을 만들어내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장기간에 걸친 『The X-Files』의 인기는 세기말의 문화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변신한 20세기가 막바지에 이른, 바로 지금 90년대는 어떤 시기인가. 세계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꼭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다고-진보하고 있다고-만은 할 수 없고, 무언가 어그러져 있는 듯 하지만 그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특별히 사람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줄 그 무엇도 없이, 어떤 이는 종교에, 어떤 이는 물질에 의존한다. 중세가 종교라는 하나의 정점을 향해 사람들이 모여지는 시기였다면, 1990년대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고만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권위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러한 1990년대에는 음모이론이 설득력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갖가지 종류의 정치적·경제적·생물학적 위기가 우리가 손 댈 수 없는 미지의 세력 -그것이 정부이건, 외계인이건, 혹은 외세이건 간에- 이 꾸민 음모에 의한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이 모든 혼란에 대한 위안으로 삼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또한 『The X-Files』를 포함한 모든 음모이론 영화들이 음모를 꾸미는 소수 권력자들을 우리 사회에 오래 전부터 뿌리깊이 자리잡고 앉아서 우리의 역사를 좌지우지 해온 기득권 세력으로 그려냄으로써, 그들에 대한 주인공의 도전을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심리와 묘하게 일치시키고 있다.
음모이론이 얼마동안이나 더 각광을 받을지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 알 것 같다. 2000년대로 들어서서 한 세기가 바뀌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어 음모이론을 더욱 증폭시킬지, 혹은 기대를 불어넣어 희망의 논리가 일어날지 나로서는 아직 갈피를 잡을 수 없다.
|
  
|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