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단편영화의 힘 :::
purpling | 1999년 09월 01일
조회 1429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한국단편영화 6편에 대한 소개와 리뷰
*소년기
제목그대로, 소년기의 섬뜩함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식구들에게조차 천대받는 못생기고 뚱뚱한 소년이 강박증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매우 극단적인 발상으로 보인다. 폭력과 냉대의 싸늘함이 그대로 느껴지고성장기 소년의 불안정적이고 우발적이며 비대화된 호기심이 극단적인 색과 구도에 의해 선명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단편영화에서 관습적으로 보여지는 몽환적인 꿈장면은 구태의연하다. 더군다나 소년의 꿈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책으로 맞는 장면이 그대로 다시 삽입되어 있어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시점이 모호해 진다. 할아버지를 살해하는 순간이 조금 더 섬세하게 표현되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집행
영화의 첫 장면. 어느 노신부의 머리를 염색하고 있는 젊은신부와 이를 옆에서 구경하는 어린 소년이 고요하기만한 야외를 배경으로 보여진다. 이런 조용하고 침착한 분위기는 신부가 어린 사형수를 만나고 마음의 동요를 느끼며 사형이 집행된 후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사형장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신부의안절부절한 모습은, 표정의 변화가 없는 간수들, 덤덤한 표정의 어린 사형수와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신부의 번민이 조용히 드러난다. 번민하는 신부에게 나즈막히 구원과 신념에 대해 읖조리는 사형수. 얼굴에솜털이 보송보송한 이 사형수의 사형이 집행되면서 신부는 죽음뿐만 아니라 소년이 남기고 간 구원의 진정한 의미에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휘청거린다. 사형수의 죽음이 영화의 호흡을 방해하지 않은 채 생생하게 보여지고관객은 구원의 방식과 죽음의 상관관계에 대해 신부와 함께 생각하게 된다. 짧은 영화속에 담겨진 깊은 사색과 초월과 번민이 인상적이며, 신부가 열어둔 창문이 저절로 닫긴다던지, 혼란스러운 신부의 옆 창가에 노란 새 한 마리가 앉아 논다던지 하는 묘사도 인상적이다.
*동시에
'나의 꿈은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졌다'고 하는 주인공의 독백과 함께 시작 하는 이 영화는 청계천에서 살아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공장에서 소박한 꿈을 키워나가고 있던 남자는 기계에 손을 다침으로서 그 소박한 꿈마저 박탈당했으며, 불법 비디오를 파는 젊은이 또한 일확천금이라는 미미한 희망만을 바라며 살 뿐이다. 그러나 더욱 비참한 현실은 이들 사이에서도 어김없이 일어나는 배신이다. 삶의 바닥에 있는 이들과, 이들과는 너무 멀리있는 일확천금의 꿈, 그리고 배신은 삶의 끔찍함과 허탈감을 느끼게 하며,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청계천 뒷골목의 어두움이 인상적.
*동창회
단편영화는 대사로 영화를 이끌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이미지로 승부하기때문에 단편영화들은 보편적으로 대사가 적은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 '동창회'는 대사가 영화의 핵심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말을 뿜어내는 경상도 사나이들. 이들이 대화하면서 영화는 전개되어 나간다.
재미있는 건 역시 '스타배우' 송강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름을 알 수 없지만 TV로 낯이 익은 배우들도 눈에 띈다. 송강호가 눈에 띄는 이유는 그가 '스타'인 이유도 있지만, 그의 자연스러운 입심이 살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상도 태생이 확실하다 싶을 정도로 정확하고, 타지역 사람들은 흉내낼 수 없는 경상도식의 애드립을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본인의 부모님들이 모두 경상도분이시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이러한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덕분에, 영화는 살아있는 느낌을 주고 관객의 공감을 획득한다. 공간과 장면의 적절한 배치,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대사, 그리고 이로 인해느끼게 되는 우리네의 살아가는 모습. 연출력과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영영 8분의 이 짧은 필름은 염을 하는 늙은 어머니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영화만의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죽음의 색인듯 보이는 갈색톤의 화면과 아들의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삽입되는 초록빛이 대조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아들을 영영 떠나보내기 싫은 듯, 시간을 멈춰보려 시계의 시계추를 손으로 잡아 멈춰세우는 장면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 특히 한국의 정서를 고이 간직한 노모의아스라함이 느껴진다.
*히치콕의 어떤 하루
한 마디로 기발한 애니메이션이다. 히치콕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일어나서 출근할 때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곳곳에 히치콕의 영화들에서 장면을따와서 배치시키고 있다. 히치콕이 신문 광고에 카메오로 출연한 것까지 따왔으니, 그의 영화를 좋아하고 잘 아는 관객이라면 그 재치와 아이디어에 무릎을 딱치지 않을 수 없다. 그림도 개성있고 앵글과 각도 또한 생기가 넘친다.
*소풍
어느 겨울날의 쓸쓸한 소풍. 세 식구의 마지막 소풍을 그린 이 영화는 다짜고짜 '자살'만을 보여준다. 어떠한 동기나 암시도 주지 않은 채 가장은 자살을 아무런 주저함없이 준비하기 시작한다. 왠지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싶은 정적인 화면과 그 뒤에 묻힌 가라앉은 분위기가 관객을 영화속에 빠져들게한다. 순간적으로 삶의 욕구를 느낀 아내가 아이를 안고 바다로 뛰어가 쓰러지는 장면은, 회색빛 하늘과 바다의 장관과 함께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힐 만하다.
바다가 회귀의 마지막 목적지임이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차갑지만 이내 따뜻한 친근함이 느껴져 오는 바다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을 강요당했다가 노인의 도움으로 살아난 아이의 눈망울이 깊게 새겨지는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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