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자> O.S.T - 이상은이 전하는 메시지 :::
손복희 | 2000년 09월 23일
조회 2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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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웃긴 가게'를 선보인 지 3년만에 이상은이 <봉자> O.S.T를 통해 신곡 12곡을 발표했다. <담다디>로 최정상의 아이돌 스타였던 이상은은 일본으로 훌쩍 건너가 미술공부와 병행하면서 작업한 <더딘 하루-Slow Day> 를 91년에 발표했다.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가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공무도하가><외롭고 웃긴 가게> 들은 자기만의 내밀하고 독특한 세계를 담고 있고, <담다디>와는 또 다른 팬층을 형성해 나간다. <봉자> 영화음악 역시 지금까지의 그의 작업세계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이번에 영화 음악을 맡게 된 이유는 박철수 감독이 내민 시나리오가 계기가 되었다. 두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소외된 상태인 두 여자가 삶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마음에 다가왔다고 한다. 특히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소녀 '자두' 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선뜻 작업에 응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업하는 내내 즐거울 수 있었고, 박철수 감독의 작업을 지켜보며 배운 점도 많았다. 영화의 '자두'라는 역할이 매력적이었듯 첫 곡으로 수록되어 있는 '자두의 테마'는 그만의 개성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장구의 단아한 리듬과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영화음악을 만드는 것은 감독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끼어 들어 가는 것이지만, 나 자신의 생각도 넣어야 한다는 게 이상은의 생각이다. 또한 영화음악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 흥미있는 작업이라고 밝힌다.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이상은이 바라본 <봉자>는 어떤 색깔일까?
<봉자>는 눈으로 보기에는 무채색, 마음으로 느낄 땐 컬러풀하다고 말한다. 작곡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컬러풀한 느낌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박평식 평론가의 말처럼 이상은의 음악은 잠든 망각의 뿌리를 흔드는 듯한 긴 여운을 남긴다.
봉자, 또는 자두를 통해 들려주는 뮤지션 이상은의 특별한 고백
이기원 (작가 / 팝 칼럼니스트)
'봉자'라는 이름은 요즘 세대들에게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촌스러운 이름(실제로 이 이름을 가진 분에게는 미안하지만)이다. 그래서 왠지 이 이름을 타이틀로 한 영화가 만들어진 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받은 느낌은 '평범한 여성의 일상'이 그려지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가 여성을 소재로 한 <어미>, <안개기둥>, <301·302>, <산부인과> 등의 독특한 영화를 연출한 박철수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평범'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을 고쳤다. 그의 장기가 되어버린 저예산 제작과 그 특유의 '빨리 찍기', 게다가 한국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로 대전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된다는 점 등은 '봉자'라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필자에게 준 신선한 충격(영화 내용을 떠나서)은 특별한 페르소나를 가진 두 명의 여성의 참가에 관한 소식 때문이었다. 지난 해 솔직과감한 성 고백 에세이집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출간해 강력한 외설 폭풍(?)을 몰고 온 서갑숙이 그 한 명이고, 다른 한 명은 '담다디'의 귀여운 어릿광대에서 '공무도하가'의 진정한 뮤지션으로 다시 태어난 이상은이다. 이 두 사람이 각각 여주인공과 음악을 맡음으로 인해 영화 <봉자>는 '평범한 여성의 예사롭지 않은 일상'을 예견케 했고, 또한 그것은 고스란히 현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영화 <봉자>는 김밥을 마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순해빠진 봉자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든 신비스런 소녀 자두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교감을 나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서갑숙의 캐스팅은 그녀가 가진 캐릭터, 그리고 화제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최적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또한 영화 음악 역시 그 이상으로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데, 이상은이 바로 이 영화 주인공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와 음악적 색깔을 가진 또 하나의 '봉자'이기 때문이다. 즉,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봉자는 서갑숙이지만, 음악을 통해 들려지는 봉자는 바로 이상은인 것이다.
아마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이상은은 지금은 메인스트림을 떠난 추억의 가수쯤으로 기억할 지도 모른다. '담다디'라는 노래 한 곡으로 가요계 정상을 맛보았고, 이후 외국을 오가는 생활 중에 짬짬이 낸 앨범과 '93년 '언젠가는'이라는 노래로 스러져간 가수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영원히 살기 위해 잠깐의 죽음을 선택"한 것일 뿐, 그녀는 대중가수라는 직함을 포기한 대신 어느 샌가 철학적 음유시인으로 우리의 심연 속에 들어와 있었다.
'89년에 발표된 데뷔 앨범 과 2집 <사랑할꺼야>로는 지금의 이상은을 그려내기는 매우 어렵다. 그 앨범은 그야말로 기획사의 잘 포장된 상품이었고, 그녀는 얼떨결에 가요계에 들어와 그 메카니즘에 순응한 '말 잘듣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공부와 병행하면서 내놓은 '91년 3집 <더딘 하루-SLOW DAY>와 '92년 , 그리고 '93년 셀프 타이틀 등에서는 그녀의 내면의 소리들 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발매한 일련의 앨범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95년에 발표한 6집 <공무도하가>에 이르러서 그녀는 '신기가 있는 구도자적 색채의 음악'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그녀가 오랜 세월의 방황 끝에 찾은 음악적 결정체였다. 이 앨범에 담긴 동양적 정서는 이후 앨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것은 타케다 하지무라고 하는 음악 파트너의 도움이 컸다. 때문에 전작과 함께 이상은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97년에 발표한 로우-파이 계열의 <외롭고 웃긴 가게>는 그의 1인 세션에 의해 한층 독특한 색깔을 지닐 수 있었다. '97년 말에 일본에서 발표된 8집 는 신구곡을 절반씩 섞어놓은 해외시장 진출 타진용 앨범이었다면, 지난해에 발표된 리 채 명의의 두 번째 앨범이자 통산 9집 는 본격적인 세계 시장 진출을 염두한 듯 그녀의 곡들 중에서 엣센스만 고른 베스트 앨범적 성격을 띠었다.
이렇듯 이상은은 대중들의 외면 속에서 자신만은 음악을 지키고 발전시켜왔다. 사실 이러한 음악 여정 중에서도 그녀의 영화음악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꽃을 든 남자>라는 영화에 '당신 생각에'라는 곡을 삽입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영화인 <화이팅 에츠코(GIVE IT ALL)>의 사운드 트랙을 맡기도 했는데,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이 작품은 <쉘 위 댄스?>의 스오 마사유키가 제작을 맡고 이소무라 가즈미치가 감독한 영화로 그녀가 '아시안 플라워스'라고 하는 여성 뮤지션들 공연에 참가해 노래 부르는 모습을 감독이 보고 연락을 해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사운드 트랙은 음악적으로 상당한 인정을 받았고, 이상은은 뮤지션으로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때문에 사운드 트랙으로서는 두 번째 작업인 이번 <봉자>는 그녀만의 온전한 색깔과 노하우가 어울어져 신비로운 오리엔탈 스피릿의 세계로 인도한다.
킥 오프 트랙인 Tude-the theme of Jadu는 동양적인 리듬 라인 위에 두 개의 코드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 리듬과 단선율로 진행되는 피아노 멜로디 위에 이상은의 허무적인 목소리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소녀 자두의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곡의 인스트루멘탈 버전은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반주에 이상은의 스캣으로 처리되어 있어 영화 화면 속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들기 적당하다. Brife & clear는 동양적인 악기를 사용해 신비감을 극대화시킨 곡으로 이상은의 독백과도 같은 보컬이 인상적이다. Couldn't say는 그루비한 느낌을 주지는 않지만 트립 합에서 즐겨쓰는 리듬 위에 스트링, 피아노, 탬버린 등의 최소한 편성으로 연주된 서정적인 연주곡이다. She wanted는 모던 포크적 색깔로 채색된 경쾌함이 내재된 아름다운 곡인데, 이상은의 보컬 버전이나 어쿠스틱 기타로 멜로디를 연주한 인스트루멘탈 버전 모두 감상자의 서정성을 이끌어 내는데 모자람이 없다. The world is a dream of god는 그녀의 종교관을 토대로 쓰여진 곡으로 동서양의 악기가 한 집안 식구처럼 어색함이 없이 어울리고 있다. Maya는 이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으로 이 앨범에서 드물게 베이스 연주가 삽입되어 있으며, 다른 곡처럼 북이나 리듬 샘플링이 아닌 드럼 연주와 일렉트릭 기타 연주 등으로 곡이 진행되고 있다. 보컬에 있어서도 그녀는 이전과는 다른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러주고 있다. Mass man은 역시 Maya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유니크한 곡으로 영어 가사로 된 모던 록 넘버인데 그루비한 리듬 샘플링 위에 덧 씌워진 이상은의 보컬은 앙증맞은(?) 피오나 애플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앨범은 <공무도하가>가 이후로 줄곧 추구하고 있는 이상은 스타일의 오리엔탈리즘의 연장선 상에 서 있다. 수록곡들 대개가 미니멀리즘에 입각해 최소한의 악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베이스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전형성에서의 탈피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남들과 다른 그녀만의 음악 스타일은 그녀가 존재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그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쿠스틱 악기를 써서 자신이 추구하는 자연스러움(acoustic is always better!)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 사운드 트랙은 영화 흥행의 여부를 떠나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앨범이다. 이것은 영화 사운드 트랙인 동시에 그녀의 솔로 앨범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봉자>의 공개는 그녀에게 있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간 메인스트림의 외면으로 언더 그라운드와 이웃나라를 맴돌던 가장 이상은적인 음악이 스크린이란 매개체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동안 그녀의 제대로 된 음악은 대중 앞에서 단 한번도 정당하게 평가를 받거나 심판을 받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영화 <봉자>가 이상은의 이번 앨범판 익스텐디드 버전 개념의 뮤직 비디오일지도 모른다는 발칙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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