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 페라라 - 폭력적인 우울함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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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페라라 - 폭력적인 우울함을 따라서 :::

이윤형 | 2000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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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토록 폭력성과 암울함에 천착(穿鑿)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삐딱한 시선의 헐리우드

그의 영화에서는 사람의 배를 찔러도 사무라이 영화처럼 한 번에 베어버리진 않는다.
그의 영화에서는 사람을 총으로 쏴 죽여도 주윤발처럼 멋있게 죽이진 않는다.

혹자는 아벨 페라라를 두고 '폭력 미학'이란 단어를 자주 쓰지만 필자는 절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물론 폭력이 난무한다는 것 자체가 미학에 투신한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폭력 미학'이라 함은 사람 죽이는 게 멋있고 주인공은 사람을 죽여도 절대 대가를 받지 않는다거나. . 그야말로 폭력을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미학 아니던가. . 페라라의 영화를 보자. . 절대 멋있게 죽이지도 절대 죽이고 좋아하거나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의 영화에서 칼은 찌르려는 것이지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며 섹스를 하면 쾌감을 맛보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을 뿐이지 포르노를 찍으려 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면서도 절대 멋있지 않은 것. 오히려 그는 폭력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누구보다도 반대하는 것이리라. .

필자는 페라라를 참으로 좋아하는 탓에 여러 잡지에 나온 페라라 감독론을 보면 상당히 아니꼽다.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필자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지야 기준이 없으니 뭐라고 할 말은 못 되고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누가 처음에 말했는지 <복수의 립스틱>이 그의 생애 최고의 작품이란 말은 제발 안 해줬으면 한다. 그의 생애에 최고의 작품이 무엇인지는 관객이 판단할 일이며 기자나 평론가도 관객일진데 왜 판단이 모두 같은 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어떤 것이 최고고 아니고는 사람마다 틀린 게 정상인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유일하게 견해가 같은 부분을 꼽자면 '너저분함'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그는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절대 사실적일 것'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사람을 죽일 때 절대 후의 일을 예상하거나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 특이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하진 않는다. 죽일 땐 죽이는 것에만 몰두한다. 그러기에 정말 너저분하다.
그것이 진짜 죽이는 것이기에 너저분한 것이다.

그의 영화 속 '갱'들은 절대 불의를 보면 못 참거나 의리가 있거나 하지 않는다. 보통 '갱'이고 '양아치'고 '건달'이고 참을성이 있어서인지 불의를 보면 잘 참는데 그의 영화 속 '갱'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 불의를 하도 많이 저질러서 다른 불의를 볼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만큼 사실적이기에 너저분한 것이다. 그 말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모습이 그만큼 너저분하다는 반증인 것이다.

서두를 잠깐 잇자면 페라라의 영화는 폭력적이고 암울한데 그것은 어떠한 것을 비판할 때도 써먹을 수 있는 단어들이다. 페라라가 그것만 하는 것을 비판할 순 없지만 분명 그것은 약점이다. 문제는 항상 폭력적이고 항상 암울한 것은 좋은데 항상 비슷하게 폭력적이고 비슷하게 암울하다는 것이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Nicholas St. John'은 페라라 영화의 거의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쓰는데 니콜라스 존은 암울함을, 페라라는 폭력을 만든다는 인상만을 남겨준다. 그것은 항상 역할 분담이 되어있어 그것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 권태기랄까. . 안정치만 항상 같다.

그 오랜 일관성을 산뜻하게 깨어버린 영화가 바로 어딕션이다.
그간 보여줬던 폭력 속에서의 철학이라면 고작해야 짜 맞춰 '폭력 철학'이랄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지만 이 영화에선 조금이나마 인간 본연의 철학에 손을 대고 있다. 정체성을 생각하며 관객에게는 영화 전체에 의문을 품게 한 <어딕션>은 페라라에게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의 즐거움을 준다.

이런 색다름은 스네이크 아이에서도 나타나는데 분명 80년대와 90년대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연출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고 할만큼 전과 이야기 구조가 크게 다르며 그로써는 얼마만큼의 실험이 가미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깔린 것을 찾자면 '범법(犯法)'이다.
사건의 시작이나 이야기를 끌어 나가며 암울함과 폭력을 만드는 시작은 모두 '범법'이다. 어떻게 보면 아벨 페라라를 '존경'한다면 그는 보편에 눈을 뜨지 못한 특수성의 옹호자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페라라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의 발단과 전개가 특정한, 어떠한 이야기를 한다는 데 있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그의 영화 비디오들. . <어딕션> 복수의 립스틱 라스트 펀치 <스네이크 아이> 캣 헌터 킹! 뉴욕. . 방금 확인해 본 결과. . 역시나 이야기의 발단은 죽음. . 혹은 그것과 결부되는 '범법'에 있다.

그는 말했다. "빌어먹을 돈이 내 무릎을 꺾는다' 라고. .
그가 자신과 '니콜라스 존'의 이야기 방식을 뛰어 넘을 때 . . 그런 말은 설득력이 있으며 다신 그런 말을 안 하게 될 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