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무게, <빌리지>와 <21그램> :::
양유창 | 2004년 09월 28일
조회 7397
인생에 대해 한 번쯤 뒤돌아보게 하는 두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영화를 보고난 뒤에 잔잔한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빌리지>는 인생을 마을에 비유하는 영화입니다.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알 수 없는 한 고립된 마을에서 인간과 괴물이 서로 정해진 규칙대로 공생하는 이야기. 인간 사이의 감정다툼으로 인해 평화가 깨지면서 마을은 서서히 베일을 벗습니다.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답게 스토리 전개가 영화를 보는데 아주 중요하므로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 마을을 인생에 비유한 까닭은 두려움을 헤쳐가는 용기와 평화로운 삶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무엇보다 미덕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지 확실하지 않은 순간을 인생에서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따라가야 하는지 혹은 이끌어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빌리지>는 그 선택의 순간에 이상향을 향해 자신을 이끌도록 나즈막히 조언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어쩌면 아주 단순하지만, 메시지는 울림이 아주 큽니다.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 우스꽝스러운 괴물의 모습이 계속 뇌리 속에 남는 것처럼 끝까지 마을을 지키려는 원로들의 모습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 마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늘 경계하면서 겁먹고 넘지 못한 어떤 벽 속에 갇혀서 수레바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빌리지>가 공간에 방점을 찍는 영화였다면 <21그램>은 시간을 조합하는 영화입니다. 피투성이 남자와 그 남자를 안고 오열하는 여자, 그리고 그 둘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남자. 세 사람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요? <21그램>은 세 명의 이야기를 시간을 무시한 채 퍼즐을 맞추듯 풀어냅니다. 그리고 그 퍼즐이 다 맞추어져 갈 때쯤 우리는 생사를 넘나드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 인생의 무게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초코바 한 개, 벌새 한 마리 혹은 동전 5개의 무게인 21그램. 바로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는 영혼의 무게입니다. 여자는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잃었고, 남자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자 덕분에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서 살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 남자는 교통사고를 저지르고 죄의식에 빠져 방황합니다.
그들은 모두 21그램 즉 영혼의 무게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여자의 고통은 가장 직접적인 것입니다. 그녀는 한순간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끝끝내 장기를 기증한 여자를 찾아냅니다. 한편 또다른 한 남자는 의도하지 않은 살인에 대해 신을 원망합니다.
뒤죽박죽 얽힌 시간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져가면 영혼의 무게 또한 점점 줄어듭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이들에게 조각난 시간은 21그램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힘입니다. <빌리지>의 공간이 인생의 무게를 담은 오래된 창고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것처럼 <21그램>의 엉킨 시간은 21그램의 분말을 녹일 소화기입니다. 아무리 없애버리려해도 가루가 되어 날아갈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잔혹한 상처가 되어 살갗에 닻습니다.
세 남녀의 시간의 조각이 맞추어지는 과정은 <아모레스 페로스>로 혜성같이 데뷔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멋진 솜씨로 다듬어져 있습니다. 좀더 성숙해진 연출자의 시선으로 그는 영화의 시간을 정복하고는 그 속에서 작은 무언가를 관객에게 건넵니다. 그것은 바로 21그램의 무게, 바로 인생의 무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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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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