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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양유창 | 2004년 03월 20일
조회 9208



사람을 숭배한다는 것은 참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그 숭배가 자그마치 2000년을 이어왔다는 것은 황당하다못해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온다.

하늘에 하나님이라는 자가 살아있고
자신이 그 아들이라고 열심히 우기는 나자렛 예수라는 사람이 있다.

아, 물론 이것은 모두 허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허구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신약성경은 전설처럼 대물림되며 읽혀오고 있고
그의 영웅담은 신성(?)한 것으로 포장되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단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일 것이다.
심한 분노감을 느끼거나 혹은 호기심을 보이거나.

나는 무신론자이며, 심지어 기독교,개신교,카톨릭..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나자렛 예수 팬클럽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싱가폴에서 배용준을 보려고 교통이 마비되는 것과
일요일날 굳이 교회 가서 목사나 신부라는 사람의 헌금 내라는 설교 듣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릇 종교라는 것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종교에서는 감히 찾아볼 수도 없는 것이다.
획일화된 우상숭배와 자기 배만 불리려는 교회의 폐단이 춤을 춘다.

각설하고,
멜 깁슨이 만든 이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꽤나 보수적이다.
"주께서 나를 대신해 고통을 받으시니"
이 한 구절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처럼 보인다.

한 사람을 엄청나게 때리고 찌르고 밟고 죽이는 과정이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그렇다면 일종의 사도-마조히즘 영화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더욱 가관인 것은 마지막에 무슨 터미네이터나 된 것처럼 부활하는 장면이다.
혹시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터미네이터가 예수의 부활한 모습을 체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상상도 해보며 극장 문을 나서지만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다.

마르크스는 종교야말로 필요없는 것이며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마르크스가 좀 심했으며, 종교의 자유는 인간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인정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처럼 그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한 사람을 신성시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인류의 역사에서 선한 일을 한 많은 분들이 있다.
가깝게는 테레사 수녀에서부터 슈바이처 박사, 나이팅게일 등등 그들은 예수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그런가 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악행을 저지른 사람도 많다.
아돌프 히틀러는 예수를 고발했다는 명목으로 유태인 학살을 저질렀고
조지 부시 2세는 맹목적인 감리교 신앙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개별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종교 자체를 신성시화한다고 해서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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