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여성영화 축제 막을 내리다

Festivals : 서울여성영화제

제4회 여성영화 축제 막을 내리다 :::

곽은주 | 2002년 04월 16일
조회 3160

제4회 서울여성영화제가 지난 12일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영화배우 오지혜와 권해효의 사회로 진행된 폐막식은 이혜경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의 폐막선언과 함께 내년 5회를 기약했다. 이날 폐막식에서 [아시아 단편경선] 수상작과 여성저널 IF상, 여성신문상, 올해 신설된 옥랑상에 대한 시상이 있었다.

[아시아 단편경선] 부문의 최우수상은 조윤경 감독의 <가족 프로젝트ㅡ 아버지의 집>이 수상. <가족 프로젝트>는 전통적 대가족과 현대적 가족체계가 혼재된 한국 가족의 실상을 아버지의 시각에 초점을 맞춰 가족간의 관계를 세심하게 추적한 다큐멘터리. 사적인 가족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낸 감독의 용감성에 심사위원과 관객의 큰 박수를 받았다. 우수상은 삶의 아이러니를 탐색한 최진영 감독의 <투 해피 투 다이/Too Happy to Die>와 약육강식의 세계를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한 김경희 감독의 애니메이션 <미끼>가 각각 수상됐다. 삶의 진정성에 대한 진지한 고뇌를 담은 김경화 감독의 <그해 아폴로 11호는 달에 갔을까?>는 관객상과 스페셜 멘션상 2개를 거머쥐는 쾌거를 이뤄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영화제에 출품된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미래 지향적이고 여성의 역할에 대한 비젼을 보여주는 작품에 수여되는 IF상은 임순례 감독의 <아름다운 생존 : 여성 영화인을 말한다>가 받았다. '여성공동체' 부문에 출품된 작품중 영상매체를 통해 여성운동을 하는 단체나 개인을 대상으로 수여되는 여성신문상은 박옥순 감독의 <겨울에서 겨울로>가 수상됐다. 다큐멘터리 사전 제작지원 제도인 옥랑상에는 이정화 감독의 <왠지 작은 찻잔과 밥그릇>과 정수연, 이지상 감독의 <두 할머니>가 선정되어 제작비 지원을 받게됐다.

4월 4일부터 12일까지 9일간의 영화제 기간 동안 21개국에서 참여한 80편의 작품이 동숭홀과 하이퍼텍 나다 2개 상영관에서 심야상영을 포함하여 총 80회가 상영됐다. 그중 동숭홀 16회, 하이퍼텍 나다 23회가 매진을 기록, 영화제 기간동안 3만 2천여명이 영화를 보았고 좌석점유율은 평균 90%를 상회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개막작 <제비꽃 향기 : 아무도 믿지 않는다>를 필두로 <두 여인> <샬로트 그레이> <부비 걸> <버스, 정류장> <달 밝은 밤에 생긴 일> <숨겨진 반쪽> <아시아 단편경선 1> <아시아 단편경선2> <아시아 단편경선3> <춥고 배고픈> <걸리쇼> <불을 켜> <욕망을 영화화하기: 여성 감독들이 말하는 섹슈얼리티> <아름다운 생존: 여성영화인이 말하는 영화> <사랑에 대한 진실> <러브 인 텍사스> <심야상영 2> <너는 내가 지난 세월에 한 일을 모르고 있다> 등이 매진된 작품. 영화제 마지막 날인 12일에는 관객들의 뜨거운 요청에 따라 <인도식 팝콘>이 앙콜 상영됐다.

이번 영화제는 예년에 비해 관객층이 다양하고 폭넓어졌다. 주부 관객과 남성 관객이 눈에 띄게 많았고, 퇴근후 영화제를 즐기는 직장인 영화제 팬들도 많아져 종전에 열혈 여성영화 마니아 만이 참여하는 영화제라는 선입견을 씻어냈다. 일반 관객의 참여율이 높아져 올해를 기점으로 명실공히 주류영화제로서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듯싶다.

관객을 위한 서비스도 한 차원 높아진 영화제였다. 미취학 아동을 둔 주부를 위한 놀이방 운영을 비롯하여 영화상영 후 엔드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객석을 소등상태로 유지해 영화가 완전히 끝난 후 관객이 퇴장하도록 한 조치는 품격 있는 관람문화를 유도한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또한 심야상영 중간의 휴식시간에 식수와 빵을 제공하고, 매진된 영화의 입석을 판매하지 않는 등 관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던 영화제로 기록된다.

영화제에는 타흐미네 밀라니(이란 여성감독), 이규정(<사랑에 대한 진실> 감독), 도로시 베너(단편경선 심사위원, 베를린 영화제 뉴 시네마 국제포럼 선정위원) 등 해외에서 모두 15명의 여성영화인들이 초청됐다. 이들 여성영화인들은 국제포럼과 영화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시간 등을 통해 한국 관객과의 유대를 쌓았다.

영화상영외 행사로 아시아에서 여성영화인의 역할과 현실을 짚어보는 국제포럼이 개최됐다. 한국영화 회고전, 딥 포커스 섹션 등의 작품들에 대한 포럼도 열어 영화를 본 관객의 자연스런 참여를 유도했다. 가수 이상은의 공연과 영화상영이 어우러진 '씨네콘서트 - 이상은, 여성영화를 만나다'도 관객들의 환호를 받은 스페셜 이벤트. 씨네콘서트에는 영화<달 밝은 밤에 생긴 일>이 상영됐는데, 이 영화는 이상은이 자신의 공연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추천한 작품.

이혜경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아시아에서의 여성주의 영화/비디오 액티비즘과 이미지의 권력'을 주제로 열린 국제포럼에서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영화들에 대한 배급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앞으로의 계획도 피력했다. 머지 않아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일련의 작품들을 일반 상영관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올 것도 같다.

폐막선언후 식후행사로 페미니스트 가수 안혜경의 특별무대와 <아시아 단편경선> 수상작들이 상영됐다. 안혜경은 여성영화제에 딱 어울리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와 '사랑하는 언니들에게'를 불러 폐막식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비바람이 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폐막식에 참석한 관객들의 눈은 반짝였다. 마음 갈피에 빛나는 영화 꽃 한송이씩 간직한듯,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자국은 꽃 향기로 충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