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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영화를 찾아서


<나비> 나를 잊지 마세요 :::
2002년 1월 비디오 출시

박경미 | 2003년 09월 07일
조회 4852


너무너무 힘들기에 잊어 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 기억만 없다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나비>의 사람들은 잊고 싶은 기억만을 잊게 해준다는 '망각바이러스'를 찾기 위해, 산성비가 내리고 납중독자가 우글거리는 도시로 몰려든다. 기억을 잊고 싶어하는 '안나'와 기억을 잊은 사람들의 여권을 모으고 때로는 기억을 보관하기도 하는 망각바이러스 가이드 '유키', 그리고 잃어버린 어린 시절 기억을 찾고 싶어하는 남자 'K'. <나비>는 이 세 명이 겪는 기억과 망각에 관한 영화이자, 상처의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주문이다.

영화 내내 안나가 간절히 찾고 있는 망각 바이러스는, 오히려 그녀에게 망각하고 싶은 기억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비록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녀의 기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만. <동사서독>에서 '취생몽사'가 그러했듯이 자신의 영혼을 옭아매는 끔찍한 기억은 잊으려고 할수록 더욱 생생하게 떠올려진다.

이렇듯 인간의 기억은 이미 지나간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내 안에 남아 여전히 나를 뒤흔든다. 기억과 망각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인간은 기억함과 동시에 망각한다. 이는 기억은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기억하는 것이 있으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반드시 있기 마련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느 것을 기억하고 또 어느 것을 망각하느냐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기억이 나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기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나는 그 기억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미 지나간 상처와 기억으로 인해 여전히 슬픔과 절망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더라도, 그 상처와 기억은 이미 저버릴 수 없는 '나'이다. 인간은 과거를 전부 버리고 지금만을 가지고 살 수 없기에, 기억이라는 녀석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그 남겨진 흔적들은 내 삶에 불쑥불쑥 침투하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단순 선형적인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에서, 과거라는 틀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망각 바이러스가 나비처럼 여기저기 반짝이는 흔적들을 남기며 나타났다 곧 사라지는 것처럼, 기억은 여기 저기 내 안을 옮겨 다니며 끊임없이 '의식'하게 한다. 흔들리는 물결처럼 부유하는 기억은 나의 삶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내 안에 존재한다.

기 억 이 란 그 런 것 이 다.

기억의 상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해 씻겨 지지 않으며, 망각이라는 신비한 주문으로도 치유되지 않는다. 만일 망각바이러스를 찾아 기억을 지운다 하더라도, 그것은 가시적이고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몸의 상처가 아물어도 그 흔적은 남는 것처럼, 그 잃어버린 기억과 언제 다시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나비>에서 '효정'이었던 '안나'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망각된 기억으로 인한 심한 불안감은, 기억이 나를 존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잊어버린 건 나의 존재를 망각한 것과도 같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비극이자 망각바이러스를 간절하게 원하는 이들의 비극은, 잊고 싶은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결코 체념이나 절망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유키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엿보이는 희망은 망각 바이러스가 아니라, 유키가 안나에게 말했듯이 절대로 "잊지 않는 것"이며, 끝났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함을 보여주는 유키의 '기적'이다.






박경미
진정한 씨네필로 남고싶은 '열혈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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