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모스트 페이머스> 살아숨쉬는 대사와 연기

숨겨진 영화를 찾아서

<올모스트 페이머스> 살아숨쉬는 대사와 연기 :::

Almost famous, almost unknown but almost wonderful!

유재영 | 2003년 03월 03일
조회 4766

이 코너를 통해 국내 개봉관에서는 흥행하지 못했던 숨은 걸작을 찾아내 소개하기로 했던가? 그렇다면, 아무 설명 없이 <올모스트 페이머스>를 빠뜨리는 것은 또다른 직무유기다. 국내 흥행과 작품성이 상극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흥행? 국내 개봉관에는 간판조차 걸리지 못했다. 작품성? 다수의 수상 여부가 작품성을 증명한다고 가정해 보자.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보스턴 비평가협회 4개 부문과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고, 미영화협회 AFI에서 2000년 10대 영화로 선정된 바 있다. 어쩜 우리는 이제라도 이 영화를 비디오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비디오 배급업자들에게 감사해야겠다. 반가운 것은 얼마 전, 꼼꼼한 감독 노트가 서플멘트로 들어있는 DVD도 출시됐다는 것.

이처럼 특별한 이력을 지닌 덕에 이 영화를 이미 여러 잡지에서 숨어있는 걸작으로 언급한 바 있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이 영화와 락 음악의 상관관계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다. 영화는 1970년대 초반의 락 음악과 락커들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라 할 수 있으므로. 하지만, 뛰어난 음악영화도 좋은 영화일 뿐. 락 음악이 영화를 완성한 것은 아니었다.

"안돼!" 투성이인 홀엄마 엘라인은 철학교수이다. 그런 엄마에게 반항하는 누나 아니타는 락음악을 좋아하고 엄마와 누나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는 윌리엄은 자기 나이도 모른 채, 엄마의 교육열로 2년을 월반하고 11살에 조기 졸업한다. 18살이 된 아니타는 엄마의 구속을 벗어나 고향을 떠나면서 윌리엄에게 엄마 몰래 모아뒀던 락 음반들을 선물한다. 4년 후, 누나가 준 음반에 심취해 음악 잡지에 원고를 기고하던 윌리엄은 음악전문지 '크림'의 편집장이자 동향인 레스터를 만나 친구가 된다. 그의 부탁으로 블랙 사바스의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를 갔던 윌리엄은 당시 꽤 알려진 2류 락 밴드 스틸 워터와 친구가 되고 멤버 러셀을 사랑하는 그루피 페니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롤링 스톤'지의 기사를 쓰기 위해 스틸워터의 콘서트 투어에 동행한다.

락이 주재료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다분히 영화적 요소에 있다. 머리와 가슴에 파고드는 대사는 음악만큼 빼어나며 개성강한 캐릭터, 그리고 캐릭터를 살리는 연기가 락을 모르는 이들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짚어본다.

하나, 숨쉬는 대사
에피소드의 적시적소에서 쏟아지는 대사들은 오감과 직감에 호소하는 공감각적 내러티브다. 생생하고 입체적이며 그야말로 주옥같다.

성인이 되어 집을 나가는 아니타는 똑똑하고 순종적인 윌리엄에겐 매력적인 제안을, 동생을 최연소 변호사로 만들려는 엄마에겐 차디찬 비난을 던진다.
"언젠가 넌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침대 밑을 보렴. 자유가 보일테니...."
"촛불을 켜고 '토미'를 들어봐. 네 미래를 볼 수 있을거야."
"엄마는 윌리엄의 사춘기를 강탈한 거예요."

락 칼럼니스트 레스터는 어린 락 기자에게 광고의 카피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멋진 조언을 수시로 난사한다.
"넌 지금 락큰롤의 죽음의 몸부림을 보고 지켜보고 있어. 마지막 헐떡거림과 마지막 더듬기."
"네가 올바른 명성을 쌓으려면 정직함과 잔인함이 필요해."
"거봐. 우정은 그들이 네게 주는 술이야. 네가 취하면 너도 그들과 한패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해 줄 테니까. 널 멋진 사람으로 느끼게 해줄 테니까."
"우리 같은 남자들한테 여자들은 늘 문제지만, 대부분의 예술은 바로 그 문제를 다루고 있지. 잘생긴 사람들은 알맹이가 없고 그들의 예술은 오래 못 가. 왜냐면 위대한 예술이란 죄책감과 갈망, 섹스로 가장한 사랑, 사랑으로 가장한 섹스니까."
"이 부도 맞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용되는 통화는 네가 안 멋질 때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그거야."

철학교수인 홀엄마 엘라인의 촌철도 만만치 않다.
"사춘기는 마케팅 도구일 뿐야."
"그 앤 당신들의 때묻은 가치와 썩은 뇌세포가 판치는 세계엔 아직 무리예요."(러셀과의 전화 통화 중)

둘, 개성강한 캐릭터와 맛깔스런 연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선이 강하고 뚜렷하며 여기에 호흡을 불어넣는 연기자들의 연기는 자연스럽다. 음악에 대한 사랑과 현실의 쾌락을 오가며 열정적인 아티스트와 괴팍한 일반인의 모습을 보여주던 러셀은 <웨이킹 더 데드>, <샬롯트 그레이>, <톰 크루즈의 위다웃 리밋>에 출연했던 빌리 크루덥이 열연했다.

"락큰롤이 내 아들을 납치해서 집중을 할 수 없다"며 학생들 앞에서 책을 덮고 강의를 중단하는 주장 강한 엄마 역엔 <파고>의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맡아 특유의 뚝심있는 연기를 펼쳤으며 순수하고 진지한 눈빛을 뿜으며 상황마다 침착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는 청년 기자 윌리엄은 패트릭 휴지트가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인물은 페니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하는 페니는 진지한 사랑의 무모함을 알면서도 음악과 러셀에 대해 순수한 사랑을 키우고 결국 그 씁쓸한 결말에 상처받으면서 또다시 꿈을 키운다. 신비스럽고 몽환적이며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왕년의 섹시스타 골디 혼의 친딸인 케이트 허드슨이 맡아 맛깔스럽게 연기해 냈다. 개인적으로 어린 윌리엄의 지적이고도 귀여운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셋, 리얼리즘에 충실한 자서전적 영화
감독은 <제리 맥과이어>, <바닐라 스카이>의 카메론 크로우이다. 그는 과거 락 전문 기자였다고 한다. 따라서,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감독의 성장기를 그린 자서전적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의 군더더기 없이 락큰롤 세계의 허와 실을 사실대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경력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과잉보호, 마약과 술과 섹스에 찌들고 돈과 인기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못하는 락커의 세계, 힘있는 한 사람의 목소리에 좌지우지되는 언론의 매서움을 거치고 윌리엄은 과연 어떻게 성장해 있을까?

넷, 락 음악 영화다운 영화 음악
레드 제플린, 사이먼 앤 가펑클, 닐 영 등 거성들의 음악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고 영화 속 그룹 스틸워터의 곡들도 힘있다.

TIP1.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루피'란 용어를 알아두자. 그루피(Groupie)는 Group에서 파생한 말로 록 밴드를 추종하여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적극적으로 만날 기회를 모색하고 실현시키는 열성 팬 특히 젊은 여성 팬을 지칭하는 말이다.

TIP2. 국내에 출시된 비디오의 제목은 <올모스트 훼이모스>이다. 유명 락커가 되려는 스틸 워터와 성인이 되려는 윌리엄의 경계가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