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숨겨진 영화를 찾아서

<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

강병융 | 2002년 04월 22일
조회 3682

영화 <고>를 보았습니다. 일본 배우들이 잔뜩 나오는 영화지요. 다케시 영화가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괜한 선입견이 있어서.

기대를 하지 않을 탓일까요? 전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답니다. 이 영화는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스키하라는 자신의 연애담이라고 호언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연애담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요. 이것은 스키하라, 더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문제아 스키하라는 자신의 국적이라는 굴레에 대해 고뇌합니다. 고뇌하지 않는 척하지만 스키하라는 정말 고민하고 있답니다. 결국 그는 아주 큰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고심 끝에 진정한 자신을 찾은 것이지요. 그리고 당당하게 연애담을 마무리짓습니다.

결국 <고>는 전형적인 성장 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주인공 스키하라는 처음에 천박지축 문제아지만,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진학 문제, 부모님과 가정의 문제, 친구의 죽음 그리고 여자 친구와의 이별 등의 전형적인 패턴을 통해 진짜 자신들을 찾아갑니다. 일상의 청소년들이 성장기에 겪을 수 있는 일들의 조합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스키하라에게 닥치는 일들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키하라가 가지고 있는 매력 내지는 개성 때문이지요. 스키하라는 일단 재일 조선인과 재일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 사이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이것은 보편성 속에 특수성을 불어넣은 셈입니다. 이점이 사건들을 더 재미있게 다르게 말하면 특수하게 만드는 것이죠. 더군다나 스키하라는 싸움도 무지 잘합니다. 이 역시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고>라는 영화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사이에서 균형있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거림과 동시에 박수를 칠 수 있게 됩니다. 동감과 재미를 동시에 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등장하는 한국인 배우들 역시 작은 재미 요소로 일익합니다.

<고>는 어떤 면에서 양아치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질은 절대 양아치 수준이 아닙니다. 누구나 어릴 시절 겪었을 일들은 아주 잘 짜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향수와 반성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좋은 결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여기서 반성은 '자기 찾기'라는 관점에서 볼 수 도 있고, '재일 한국인' 문제에 대한 재고라고 볼 수 도 있습니다. 좋은 예술이 주는 다양한 결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죠.

참, 제가 이 영화에서 얻은 교훈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사랑에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지피지기……

강병융
오넷콜맨, 살바도르 달리,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하, 장 비고, 키애누 리브스, 정성일, 쿠엔틴 타란티노, 무라카미 류, 이무영, 존 드 벨로, 김영하, 로이드 카우프만, 장정일, 디지 길레스피
- 상기 거명된 자들을 한꺼번에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마시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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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Comments

	성장 소설? (ㅇ,ㅇ) - 2003/05/23

	고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한일 합작 영화라서 일본인만 떼거지로 나오는 영화도 아닙니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늘 그렇듯... 원작이 주는 느낌을 100% 관객에게 전달해주질 못합니다. 왜 그런걸까요? 전 이 영화가 소설에선 모두 표현되었던 것을 너무 쉽게 보여주려한 것에서 실패했다고 봅니다. 오히려 영화에서보다는 뒤에 읽은 소설에서 스기하라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더 심도있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가네시로 가즈키 역시, 재일 한국인이고 일본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지식인이고. 상류 계층에 속하지만, 그가 아직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둘 수 밖에 없는 뿌리의 문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는 아직도 많은 재일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는 어쩌면 그가 자신의 문제를 소설화 함으로써, 스스로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 결과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절대 그저 그런 양아치의 이야기가 아니며, 쉽게 읽히는 소설은 더더욱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리고 이 영화가 한일 합작 영화라는 점에서도, 재일 한국인의 문제는 일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기하라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은, 일본과 한국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그냥 자기 자신, '나'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음도 간과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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