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크>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실화

숨겨진 영화를 찾아서

<스모크>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실화 :::

곽은주 | 2001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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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cent When You Dream

한 해를 갈무리하는 세밑, 여느 날과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 날들이지만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이 되면 꼭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성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일년동안 미뤄 두었던 선행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양,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서로를 따뜻히 보듬으며 다사다난한 세속의 땟물을 정화하듯 착한 마음씨가 샘솟는 이즘, 몇 해전 서울 개봉에 참패한(개봉 1주일만에 막내렸다고 함)영화 <스모크>를 비디오로 본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을 새롭게 음미하며. 성탄, 그것은 사랑임을 각인한다. 천사도 사랑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리.
영화는 어둠속에서 소리로 시작된다.

암전상태에서 오프닝 타이틀만이 빛으로 새겨지며 그 빛속으로 놀이하는 아이들의 노래소리, 자동차 소리, 엠블란스 경적 소리등등 부산한 거리의 웅성거림이 어둠속에서 타악기의 빠른 리듬에 실려 온다. 화면이 밝아지면 긴 차창을 달고 뉴욕 맨하탄을 뒤로하고 브루클린을 향해여 기차가 달려온다. 그 기차가 도착한 곳은 브루크린 3번가 모퉁이 담배가게. 그곳에는 14년동안 담배를 팔고 있는 `오기 렌'(하비 케이틀)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같은 장소 브루클린 3번가 모퉁이 담배가게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을 4000일 동안 같은 시간 아침 8시에 사진 찍는 남자 오기.같아 보이지만 한장 한장 자세히 보면 오가는 사람들도 햇빛도 다 다른 사진들, 마치,똑 같아 보이는 일상이 어제, 오늘, 내일이 다 다른 사건들로 차곡차곡 채워지는 우리의 일생처럼 시간은 한걸음 한걸음 느린 템포로 시간의 역사탑을 세운다. 그 속에는 미움과 사랑과 분노와 용서와 기쁨으로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며 한무늬를 완성해 간다.

영화는 담배를 파는 오기와 단골 손님 소설가 `폴 벤자민'(윌리암 허트), 가출 흑인 소년`라시드'와 그의 생부 `사이러스'(포레스트 휘태커), 오기의 옛애인 `루비'(스토커드 채닝)을 주축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서로 상처주기,상처치유하기, 화해하기, 용서하기의 훈련을 톻해 결국 얼키고 맺친 멍우리들을 사랑으로 풀어낸다.

우리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영화속에 살아 있는 것처럼 영화는 좀처럼 영화다운 잔재미나 반전도 충격도 없다. 그 무게를 가름할 수 없는 담배연기처럼 영화는 심심하고 싱겁다.

하여, 영화의 줄기를 놓치면 `이 보다 더 지루한 영화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사에 집중하다 보면 `이 보다 더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대사의 영화는 없을 것 같은 영화들'중의 한 영화다.

역시 소설가가 쓴 시나리오 맛은 델리키트하고 오소독스하다.
이 영화는 1990년 크리스마스에 뉴욕 타임즈에 실린 폴 오스터의 단편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폴 오스터가 직접 각색하고 웨인 왕이 감독한(1995년) 영화로 1995년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영화다.

평단 일각에서는 `장 르누아르와 오즈 야스지로와 에릭 로메르의 장점을 합쳐 놓은 걸작으로 세계 영화사를 빛내는 100편의 영화에 이 영화 <스모크>를 포함시킨다.

무엇보다 영화의 백미는 `오기' 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지만 실화보다 더 생생하게 들려준다.`오기'의 능청에 소설가`폴'도 깜박 속지만. 오기의 이야기 솜씨에 찬사를 보내며 영화는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이때, 오기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영화속 영화로 태어나며 흐르는 노래가 톰 웨이츠가 부르는 `Innocent When You Dream'이다.

대사없는 무성영화의 흑백화면과 톰 웨이츠의 목소리가 하나로 아우르며 영화는 담배연기처럼 스크린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잎떨군 겨울 나목만이 텅 빈 스크린을 한동안 처연히 지키며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