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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테러가 부른 테러는 또다시 테러를 낳는다 :::


양유창 | 2001년 09월 16일
조회 7459


뉴욕타임즈 뉴스해설기사는 "세계 1차대전이 민주주의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1차대전 당시 우드로우 윌슨의 말을 인용하며 부시와 그의 미국이 벌일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1차대전 당시 미국의 중립주의를 내세웠던 우드로우 윌슨은 독일의 거듭되는 잠수함 공격과 멕시코가 아리조나와 텍사스를 재정복할 것이라는 위협적인 소문 앞에서 결국 연합군에 가담하여 전쟁에 참전했었다. 당시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군대를 설득했고, 결국 연합군이 전쟁에 승리하면서 미국을 전세계의 패권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사실 그 당시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그다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미국인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 정도다.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영토를 확장하려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 민주주의를 부르짖어야 할 만큼 전세계의 '민주주의'에 일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즈는 부시를 우드로우 윌슨에 비교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의 조사 발표에 따르면 이번 테러의 배후는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우사마 빈 라덴(Usama bin Laden)'이고, 만약 그가 실제 테러범이라면 추측해볼 수 있는 그의 테러동기는 미국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심이 전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인과응보의 사상은 동서양 모두 가지고 있는 경구이다. 그만큼 과거의 군주들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강력한 보복의 방법론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폭력을 폭력으로 방어하는 것은 스스로 편향적이 되고 불안해져 자멸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 명, 청나라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타민족을 흡수한 정책으로 비롯된 것임에 반해 타민족을 끊임없이 배척한 국가들은 과거 독일처럼 고립되거나 신뢰를 잃어버렸다.

God Bless America ⓒNYTimes
뉴욕과 워싱턴, 그리고 펜실배니아의 남측 지방에서 잃어난 이번 참사로 인해 희생된 인명과 재산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미국 군사력의 상징인 펜타곤, 그리고 이에 충돌한 여객기에 탑승하여 사망한 5천여명의 민간인들은 동정과 위로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촛불을 들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그들을 추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번 일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곰곰히 따져보아야 한다. 자살테러에 대해 격분하기 전에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이번 일을 추진한 배경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9월 11일의 참사 이후 세계 각국은 조의와 위로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 미국이 해온 일이 이번 사태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미군이 아랍에서 죽인 아랍인을 쌓아놓으면 이번에 무너진 쌍동이 빌딩의 높이를 넘을 것이라는 비판과, 세계 유일 패권을 무기로 미국이 중동에서 행한 편가르기와 전쟁 부추기기 등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만약 이번 사건의 배후에 아랍이 있고, 그들이 테러를 통해 세계의 주의환기를 원했다면, 그들의 목적은 이미 명백하게 달성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지도상 위치조차 갸우뚱해하던 사람들에게 이번 사태를 다루는 언론보도는 2차대전 이후 중동의 역사에 대해 확실한 각인을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폭력을 추방하고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 것은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미국이나 빈 라덴 조직이 절대악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이들이 모두 평화를 해치는 주범이라는 점이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빈 라덴은 이전에도 유럽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생화학무기를 살포함으로써 전세계 정치계 인사들을 살상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강도로 미국은 이미 이스라엘인들의 수많은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방조하고 세르비아인들이 알바니아인들을 공격하도록 방치한 바가 있다. 더불어 동티모르에서는 직접 동티모르인들을 살해했었고, 이라크로부터는 쿠웨이트를 뺏기 위해 전세계 여론조작까지 감행하며 걸프전을 일으키기도 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미국이 걸프전을 일으키기 전까지 우사마 빈 라덴과 미국은 동지관계였다. 30여개국에 걸친 빈 라덴의 조직은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돕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연합하였으며, 이를 뒤에서 지원한 것은 1980년대 냉전시대의 미국이었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런 밀월관계는 아프가니스탄이 소련의 집중공격을 물리치고 승전국이 되도록 돕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어떤 밀월이든 서로의 이익에 의해 만들어진 관계는 다시 서로의 이익을 위해 갈라지게 마련이다. 빈 라덴이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품게 된 것은 미국이 걸프전을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를 매수하면서부터이다. '알라신의 성스러운 국가'인 사우디에 기지를 두고 있던 빈 라덴은 이를 극구 반대하였으며, 더우기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행위는 그것이 단지 원래 이라크의 땅이었던 쿠웨이트를 빼앗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슬람, 즉 알라의 비호 아래 있는 빈 라덴의 추종자들은 미국의 이러한 행위를 참지 못했고,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과 맞물려 이러한 감정은 미국을 '악마'로 규정하는 극단주의로까지 빠져들게 된 것이다.

종교는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한 번 함몰하게 되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는 물론 기독교, 천주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극단적으로 함몰되는 사람들은 사회의 경제적, 정신적 상황에 의해 정해진다. 서구 유럽의 교회들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데 반해 미국과 한국의 교회가 기승을 부리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현세에서 원하는 삶을 누리지 못해 내세에서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인정된 어떤 종교의 율법에도 폭력에 대한 칭송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이슬람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으로 극단적으로 알려진 이슬람교의 전파원리는 사실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복지에서 식민지인들을 포용하는 정책으로 인해 많은 불교인들과 힌두교도들을 개종할 수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이슬람 세계를 만든 기원이 된 것이다.

이번 사태를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의 충돌로 보는 견해는 그 이면에 서구 우월주의를 감추고 있다. 이번 사태가 기독교 문명 내에서 일부 이슬람인들에 의해 행해진 '문명 내의 충돌'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문명 대 문명'으로 확대해석함으로써 이슬람은 폭력적이고 그로 인해 서구 기독교 문명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식의 논리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문화 제국주의는 사실 언론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화요일의 대참사 이후 미국 내의 유명 언론은 국민에게 질타받는 부시 대통령을 변호하고 그의 의견을 그대로 내보내며 심지어는 그에게 전쟁을 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피의 악순환'이라며 보복공격에 대해 신중할 것을 경고하였지만, 이미 'Star Spangled Banner'를 눈물로 부르며 주먹을 불끈 쥐는 미국인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카메라는 "미국인의 피로서 응징하겠다"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메시지를 정당화시키며 이를 무시하고 있다.

단언하건데 피는 피를 부르며 보복은 보복을 낳는다. 침체되고 있는 세계 경제는 이번 전쟁으로 다시 한 번 추락할 것이며,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그 파탄이 어디까지 튈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미국은 또다른 세계공황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은 최면에 걸린 극단주의자들과 몇몇 군수업체들의 로비에 휘말려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아닌가?

미국이 '또다른 전쟁'이라고 규정한 테러리스트들과 싸우는 방법은 그들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애꿏은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들이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증오심을 희석시키기 위해 처방전을 투입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이 미국에 대해 증오심을 갖고 죽어서도 영웅이 되는 되물림이 계속된다면, 평화의 길은 절대 오지 않는다. 또다른 증오심으로 귀착될 전쟁의 길, 미국은 정말 이것을 원하고 있는가? 미국민의 의지를 결속시키고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기이 위해 이런 사건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속셈이 혹시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1945년 세계 2차대전 종전 이후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무자비하게 자행한 테러에 대해 반성하고 이를 평화중재를 통해 해결하는데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미국이 정녕 또다른 뉴욕참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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