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키와 쟈니> 마멉에 걸리지 않은 '귀여운 여인'

숨겨진 영화를 찾아서

<프랭키와 쟈니> 마멉에 걸리지 않은 '귀여운 여인' :::

윤현호 | 2003년 03월 24일
조회 4970

프랭키(미셸 파이퍼), 얼마 전에 작동법도 모르는 VCR을 산 여자 입니다. 독신들에게 개와 VCR만한 친구가 없죠. 데이트에서 은퇴한 그녀는 더 이상 남자들 때문에 상처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독신을 즐기는 건 아니에요. 혼자 살아가는 게 두렵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도 두렵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프랭키는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어합니다.

쟈니(알 파치노), 모든 일을 낙천적으로 여기는 남자입니다. 18개월의 형기를 마칠 때 '뉴욕은 거칠고 험한 곳이야. 조심해' 라는 형무소장의 말에 '그럼 이제 곧 바뀔 겁니다.'라고 응수하는 남자죠. 감옥에 있는동안 재혼한 아내와 아이들을 보러 간 날, 끝내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마당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아이들처럼 보였거든요. 이 남자, 언제나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지만 정작 자신은 외로움에 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웨이트레스 프랭키와 요리사 쟈니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전혀 운명적이지도, 환타지도 없는 사랑이.

1. 마법 따윈 없어

게리 마샬 감독은 <귀여운 여인(1990)>을 만든 다음 해에 <프랭키와 쟈니(1991)>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허왕된 로맨스로 관객들을 밀어 넣은 잘못을 반성하고 있죠. <귀여운 여인>은 존재하지 않는 환타지였고, <프랭키와 쟈니>가 진짜 우리들이 먹고 자고 연애하는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30.40대를 위해 영화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관객들의 냉대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남루한 현실의 재확인이 아니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것을 잊게 해줄 환타지였으니까요. 극장 흥행 실패 덕분에 <프랭키와 쟈니>는 비디오 매체의 속성에 딱 맞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프랭키가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VCR을 산 것 처럼 <프랭키와 쟈니>를 사랑하는 관객들은 결코 남과 나누어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프랭키와 쟈니>는 마법을 걸지 않은 <귀여운 여인>입니다. 공주가 될 날만을 기라리는 하녀도, 키스 한번으로 구원해 줄 왕자님도, 누더기 옷을 드레스로 바꿔 줄 마법 할머니도, 유리구두도 없어요. 대신 사랑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는 겁많은 웨이트레스와 감자를 장미 모양으로 깍아주는게 고작인 요리사가 전부입니다. 이렇게 외로움에 찌든 남녀는 VCR을 산다거나, 100달라에 여자를 사서 스푼 자세로 끌어안고 자는 게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죠.

2.어리석은 당신을 위한 찬가

단지, 로맨스에 빠진 당사자들밖에 보이지 않는 연애물과 달리 <프랭키와 쟈니>는 주인공 못지 않게 주변 인물들이 선명하게 들여다보입니다. 두 남자 사이에서 저울질하지만 정작 외로움에 갇힌 코라, 정이 넘치는 게이 커플, 헐리우드에 대본이 팔린 뒤 '제가 어려울 때 도와와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제가 성공하면 다 잊을 분들이죠. "라는 웨이터 피터,- 하지만 결코 잊지 않을 거예요. ^^- 이렇게 주변 인물들의 결을 세심하게 포착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것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주연보다 조연의 모습에 더 가까운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대사를 독차지하는 주인공보다는 한마디의 대사가 고작인 조연들의 처지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수있기 때문이죠. 그래요. <프랭키와 쟈니>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찬가입니다.

프랭키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루한 왕자님의 모습으로 나타난 쟈니에게 말하죠.
"상처를 잊게 해주진 못해요. 어느 누구도 "
전남편의 구타 때문에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된 그녀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못합니다. 많은 남자들이 어설픈 용맹심으로 덤볐지만 오히려 상처만 깊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쟈니는 달랐습니다. 그는 성급하게 프랭키에게 완치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저 자신이 입은 상처를 보여줄뿐이예요. 프랭키의 상처를 들여다본 후, 자기가 입었던 상처를 보여줍니다. 그래요. <프랭키와 쟈니>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의 라디오 DJ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어리석은지 몰라도 저는 아직 사랑을 믿고 있지요" 우리는 어느 새 사랑을 믿는 다는 게 어리석은 행동으로 여겨지는 세상을 살고있습니다. 하지만 <프랭키와 쟈니>를 보고 나니 스스로 바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고운 영화입니다.

TIP

●● 영화 초반, 식당 카운터에 앉아 있었던 귀여운 아가씨는 미셸 파이 퍼의 친동생 디디 파이퍼입니다. 디디는 <업 클로즈 앤 퍼스널>에 서도 미셸의 동생 역으로 나왔었죠.

●● 영화가 제작되고 십년도 넘었으니 쟈니가 프랭키에게 했던 근사한 프로포즈를 흉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특히 감자를 깎아서 장미로 만든 건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