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혼의 자유를 향한 갈망
글: 이민우
2002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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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늘 드라마를 맘 편히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드라마를 보고자하는 나의 욕구를 곧잘 꺾곤 하셨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전원 플러그를 빼가거나,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사내자식이 공부해야 할 시기에 지지배처럼 웬 드라마냐고 질책하시면서 말이다. 잔뜩 화가 난 필자는 방문을 잠그고 분과 안타까움을 삭혀야했다. 책장을 넘겨보지만 정신은 온통 TV 화면에 가있었기에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그 기분에서 그 누가 공부가 되겠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 때,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하고 싶다고 다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돌아다니는 등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는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자유를 온전히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됨을 실현하는 게 아닐까?
인간은 자유를 박탈당하면 고통스러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사회체계를 통해 실현하고 보장하려 한다. 그러나 사회로부터 자유를 강압적으로 박탈당하고 존재가 있다. 바로 미친 사람, 정신병자를 통칭하는 광인이다. 이들은 정신병원이란 사회적 기관에 감금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아간다. 대체 어떤 연유로 이들은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일까? '미쳤으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니까, 더 넓게 사회에 해가 되니까, 정상인으로 만들어야하니까' 라고 답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면 하나 더 묻고 싶다. 왜 사람들은 광인을 해롭고 모자란 존재로 인식하는 걸까?
'이성이 정신병원을 만든다. 광인은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주장한 바이다. 서구에 중세, 르네상스 시기까지 광기는 피안을 엿보는 특별한 능력으로 추앙 받는다. 그러나 합리주의를 부르짖는 이성이 판을 치는 고전시기가 도래하면서 광기는 비이성적인 것, 비인간적인 것으로 추락하고 만다. 철저하게 이성의 타자가 되어 배제되고 억압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광인은 정상인의 범주와 대칭에 선 부류로 분류되어 감금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단순한 감금과 격리의 차원에서 연구, 교정, 처벌의 차원으로 억압의 폭이 넓어진다. 광인을 정신병원이라는 시설에 격리시켜 정신병리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만들고, 정신병리학적 담론을 하나 둘 작성해가기 시작한다. 이런 담론으로 인해 광인은 정신병자, 정신 이상자라는 명칭으로 사회에 해로운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교정해야 한다는 의식이 힘을 얻어 의사와 환자들 간에 수직적 관계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의사에게 환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해도 된다는 정당성이 부여된다. 환자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항할 시 그에 상응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성의 무지함과 질투는 천재성으로 승화시켜도 무관한 광기를 저열하고 해로운 광기로 모함한다. 그리고 광인을 억압하고 이성에게 복종토록 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이성의 유행은 광기를 저 밑바닥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이렇듯 이성이 만들어낸 정신병원이라는 울타리에 신참 환자가 들어온다.
'이름 : 랜들 맥 머피, 나이 : 38세, 교도소에서 정신이상 행위로 문제 일으킴' 이 서류 한 장으로 '맥 머피'라는 한 개인이 규정된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이다. 학교에서 한 학생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은 생활기록부와 성적표이고, 기업의 신입사원을 뽑기위해 이력서가 중요한 참고가 된다. 과연 한 개인을 종이 쪼가리 몇 개로 판단하는 게 가능할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무색하게 현대의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는 흑백논리를 은근히 부추긴다. 어쨌든 맥 머피는 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평가돼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그의 제멋대로식 행동은 사회의 규율을 어기고 질서를 파괴하는 비이성적 행위로 규정된다.
얼마 전에 영화 '아이 엠 샘'을 본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이 떠오른다. 7살 지능의 아빠 샘은 분명 정상인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가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글의 요지였다. 다르다(different)와 틀리다(wrong)는 분명 다른 의미이다. 그런데 영화 속 샘을 둘러싼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은 샘이 틀리다고 생각한다.
7살 지능밖에 지니지 못했다는 다른 점 때문에 딸을 키울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딸을 향한 샘의 사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었다. 샘은 정상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받지만 정상인이 지니지 못한 그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열망이며 사랑이다. 정신병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신이상은 다름의 의미로 해석해야지 틀리다고 규정지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순수성과 인간을 향한 사랑은 자주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회체계와 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인식한다 할지라도 인정하지 않는다. 샘이 소극적이라면 머피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지적한다. 정신병자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가치 있고 자유의지를 행사할 권리가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억압과 감시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다. 안되더라도 시도는 해보라고 외친다. 그러나 빌리, 하빙, 마티니 등 병원환자들은 스스로 자유의지를 포기하고 병원에서의 격리된 삶에 자족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들은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서도 나갈 용기가 없다.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속이 이들을 정신병원에 머물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결승전 중계를 보고 싶어도 의지를 실천할 용기가 없다. 더 심하면 그런 의지조차 박탈당한 상태다.
정신병원에서 머피와 적대적 위치에 있는 렛취드 간호사. 그녀는 이성에 기초한 억압적 사회권력의 화신이다. 그녀 앞에서는 얘기하기 싫어도 해야하고,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할 수 있다. 식물처럼 가만있지 못하면 미친 것으로 간주한다. 그녀의 지독한 감시와 교정의 결과 환자들끼리 서로 해괴하고 괴팍한 머저리라며 헐뜯는다.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정상인의 모습이 되고 싶어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합당한 인간형이 취급받는다는 교정의 과정을 철저히 밟았기 때문이다. 렛취드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음악을 틀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약을 먹인다. 환자들이 괴로워하는 토론을 치료의 목적이라는 명분으로 강요한다. 모든 게 정해진 일과표에 따라 정확히 시행된다. 렛취드 사전에 일과표의 변경은 있을 수 없다. 월드 시리즈 결승전이 아무리 보고 싶어도 대화를 하기 위해 음악볼륨을 줄이고 싶어도 그녀의 차디찬 눈빛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이성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잘했어요' 라는 말 한마디를 차갑게 내뱉는 그녀의 두 손엔 정신 공화국 질서 유지를 위한 당근과 채찍이 있을 뿐이다. 메이저리그 중계를 시청하기 위해 일과표를 일부 변경하자는 머피의 제안에 그녀는 오랫동안 익숙해진 일과표이어서 환자들이 불편해 할거라고 반대한다. 이 말에서 환자들이 렛취드의 규율 안에서 얼마나 안도하며 지내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예상된 결론대로 다수결 투표에서 환자들은 자유의지를 포기하고 손을 들지 않는다. 렛취드의 채찍이 두려웠던 것이고, 더 크게 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주눅든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야릇한 미소를 머금는 렛취드. 억압정책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자유를 누리고 편하게 살기 위해 잔꾀를 부려 정신 병원으로 후송된 머피는 오히려 감옥보다 더 끔찍한 곳이란 걸 깨닫게 된다. 정상인으로 판명돼 교도소로 돌아가면 68일 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지만, 렛취드는 머피가 자유의 품에 돌아가게 놔두질 않는다. 정신이상이라는 족쇄를 채움으로써 감옥보다 더 섬뜩한 자신의 왕국에서 썩어가게 만들 계략을 실행한다. 자유를 향해 몸부림치던 머피는 참다못해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한바탕 파티를 벌이고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픈 빌리의 소원을 들어준다. 그러다가 그만 잠이 들어 도망의 기회를 놓친다. 빌리는 자신의 고통을 파고든 렛취드의 잔인한 술책에 자살을 하고 이에 분노가 극에 달한 머피는 폭발한다. 꺾인 자유의지를 다시 세우기 위한 기약 없는 몸부림이다. 결국 머피는 반항의 대가로 혼을 빼앗기고 양순한 인간이 된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것이다.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머피를 거두는 건 추장이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에 그를 행복한 곳으로 보내준 것이다. 비극적이게도 머피의 죽음으로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 무릎을 꿇는 듯 하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를 향한 열망과 의지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결코 단절되지 않았다. 비록 자유의 상징이었던 머피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병원 환자들의 가슴에 들끓는 울림으로 남아있다. 스스로 입과 귀를 막아 스스로 자유의지를 포기했던 추장! 자유를 되찾기 위한 머피의 끝없는 저항을 보고 비로소 자신을 찾는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를 깨닫고 이성의 울타리를 과감히 넘는다. 진정 뿌듯하고 감동스런 장면이다. 안전한 뻐꾸기 둥지를 벗어나 고단하고 역경이 있겠지만, 자유의 소중한 가치가 있기에 고단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머피의 죽음과 추장의 탈출은 병원환자들의 가슴에 자유의지를 심어주었다. 영화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물방울이 떨어지고 떨어져 결국엔 바위를 뚫듯이, 자유를 향한 열망이 모이고 모여 인간을 억압하는 부조리한 사회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야기를 좀더 확장하겠다. 영화 속 정신병원처럼 인간의 자유를 규제하는 기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교도소, 학교, 가족, 군대 등 인간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인간의 자유를 규제하게 마련이다. 이유는 사회교과서의 내용처럼 하고싶은 대로 하게 놔두면 무법천지가 되기 때문이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남의 것을 뺏고 싶으면 뺏는다면 인간의 생명은 존중받지 못할 게 뻔하다. 그래서 인간의 생명을 보장하고 집단의 질서유지를 위해 법, 규칙, 관습 등 여러 규제가 생겨났다. 분명 이런 규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나, 이성의 양자로 공공과 다수를 위한 선택이다. 다수를 위해서라면 불가피하게 개개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고통을 주기 마련이다. 몇 세기에 걸쳐 이성은 인간의 절대신봉을 바탕으로 마침내 인간 위에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할 이성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철저히 유린하는 것이다. 이성의 눈길은 사회 곳곳에 퍼져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이성에 도전하는 비이성적 행위를 처벌한다. 그러므로 자유박탈의 문제가 정신병원이나 교도소 등 특정집단에만 해당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유박탈의 위협은 인간이 사는 사회전반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에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첨단현대사회의 고도화된 사회질서 규제체제 속에서의 비인간화를 경고한다. 컴퓨터 시스템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상에서 아무 고통도 걱정도 없이 마냥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 겉으론 평화로워 보이지만, 계획된 시공간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하다. 자유의지와 영혼의 말살은 진실로의 접근까지 막는다. 영화 '트루먼 쇼'는 미디어 시스템에 의해 조작되고 계획된 삶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 고통의 현실로 용기 있게 들어간다. 그렇다! 자유는 인간의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가치인 것이다. 웃고만 있는 밀랍인형이기보다 진정 살아 움직이길 원한다면 말이다.
고통의 위협과 안락함의 유혹이 자유의지를 꺾곤 한다. 기존의 사회체계에 반기를 들고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일부 학생운동가들이 반대하던 기존기득권 세력에 편입되는 세태가 좋은 예이다.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배신하고 일본의 앞잡이가 된 친일파도 마찬가지다. 살기 힘들다. 에라 모르겠다. 그저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편하게 살자. 그들은 이렇게 사회체계에 순응하며 살았다. 배 따스하고 든든한 여생을 선택한 것이다. 분명 물질적 풍요와 안락이 행복의 조건에서 빠져선 안될 요소이나 동시에 독소일 수도 있다. 풍요와 안락은 항해도중 만난 안개처럼 자유의 방향을 잃게 하고 그 의지를 무너트린다. 안락이 행복 그 자체가 될 순 없다.
미셸 푸코는 그의 저작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은 억압하고 금지할 뿐 아니라 개인을 목적에 맞게 길들인다. 경제적으로 노동력을 지니고 정치적으로 잘 복종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사회적 생산성과 정치적 안정을 증대하고 고양시킨다는 명목으로 개인을 효율적인 기계로 재구성하고 산출한다. 이렇게 해서 개인은 권력의 기술에 의해 그 대상이자 도구로 되고, 권력의 질서 안에 편입된다"고 했다.
절대왕정시대! 우리나라로 치면 근대화되기 전의 조선시대까지 권력이 왕에게 집중돼 왕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인 시대가 있었다. 쉽게 말해 위법행위가 왕의 레이다에 안 걸리면 아무 탈 없이 살아갈 수 있지만, 재수 없게 딱 걸리면 모두 보는 앞에서 끔찍한 신체형을 받았다. 반면 현대사회의 권력은 이성에게 있다. 이성이 지식을 이용해 만든 기술. 체계화된 사법제도와 형법제도 하에 신체형 대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감옥제도를 채택했다. 따라서 수형자의 육체적 고통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얼핏 생각하기에 과거의 제도보다 현재의 제도가 좀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유동적인 유기체로 규율과 관습, 학습의 형태로 다양하게 변하며 학교, 군대, 가정, 교도소 등 주변 곳곳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체계적이고도 치밀하게 질서에 순응하도록 길들인다. 이렇듯 이성의 교만함은 어디에서든 개인에게 작용하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개인의 정신까지 지배하려 한다.
그런데 권력이 개인에게 작용하기 위해 만든 규칙과 제도는 결국 지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정신병원의 규칙과 일과표는 사회가 합리적이고 옳다고 인정하는 지식의 소산이다. 지식이 없이는 그 어떠한 기준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런데 그 지식이란 게 과연 진실일까? 모두의 행복을 위한 절대적 요소일까? 그렇지 않다. 현대사회의 지식은 점차 권력화를 내면화시켜 사람들을 억제하고 강제하는 도구로 사용되며 그 자체가 권력의 기호이자 상징이다. 즉 지식의 담론화와 권력화를 의미한다. 주변을 돌아보자. '..해야 한다.', '..하는 게 옳다' '.. 하는 게 바람직하다' 등의 술어가 책속에, 교사의 말속에, 부모의 말속에, 친구의 말속에, TV속에, 영화 속에, 음악 속에서 발견된다. 이런 지식의 권력화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세밀하고 치밀하다. 예를 들어 남녀의 연애를 생각해보자. 무척이나 자유롭고 감성적일 것 같은 연애에도 경험자들이 쌓아온 방식과 규칙이 있다. '여자가 먼저 프로포즈하면 남자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용감한 남자가 미인을 얻는다!' 사춘기가 지나고 성인이 되어갈 무렵 필자는 잡지에서 인터넷에서 주위 친구들에게서 TV와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접했다. 그런데 절대 다수가 이의를 제기하기보단 그 이야기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다양한 나라와 인종만큼 다양한 사랑과 방정식이 있을진대,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믿는다. 그만큼 인간이 지식의 권력화에 익숙해져 아무 거리낌없이 그 지식을 신봉하고 스스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드라마광인 필자도 드라마와 영화가 제시한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경향이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그 때 접한 지식들은 정답이 없어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모호하기만 했다. 정답이 존재하는 객관식과 주관식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척 힘들어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권력화된 지식에 길들여져 일어난 현상이다. 절대 진실은 없다. 그러므로 지식간에 권력관계 형성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앞에서 언급했듯, 미셸 푸코는 이성이 정신병원을 만들고 광기는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화를 본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성이 광기를 불러오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에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이성은 광기를 비이성으로 규정하고 상종도 안 하는데 어떻게 광기를 불러온단 말이요?' 하고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이성은 지식이요 곧 권력이다. 이성은 올바르고 합리적이며 감정에 치우치지 않길 강제한다.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성적으로 대처해!', '제발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라는 이야기다. 소위 미쳤다고 불리는 사람들이 왜 미치는 걸까?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 어머니는 알면 안 되는 이성의 강제, 부인이 바람 피는 거 같아 직접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싶은데, 물으면 안 되는 이성의 강제. 이렇듯 자신의 의지가 꺾이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정신이상을 불러온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결론은 욕구불만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발생을 주장하는 프로이드의 연구를 참고한 것이다. 고통을 받건 행복을 얻건 그건 개인의 몫이다. 이래라 저래라 이성이 간섭할 게재가 아니다. 이성은 과욕을 부려 힘을 남용하고 있다. 침범하지 말아야 할 영역까지 침범해 인간을 위해 태어난 본분을 잊고 인간을 조종하여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았다. 필자의 생각대로라면 이성에 의해 광기가 생기고 이 광기를 제거하기 위해 다시 작용한 이성이 광기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쉼 없이 숨가쁘게 살아왔다. 자신의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행복인지도 모른 채 사회가 제시한 이상을 향해 무작정 달려오기만 했다. 무모하고 무의미 한 인생이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우리 개개인이 진정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혼은 어디에 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사회가 왜 생겼는가? 이성이 왜 생겨난 것인가? 그건 인간의 행복추구를 향한 갈망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이성은 그 행복의 방향까지 정해주려는 우를 범했다. 인간 스스로 행복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어떤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의지로 때론 서고 때론 되짚어보고 때론 나아가 보는 건 어떨까? 정처 없이 떠밀려가는 건, 누구 눈치보는 건, 스스로 만든 감시자의 허상에 주눅 드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 있다. 직접 그에게 가 똑 부러지게 한 마디 해주길 바란다. 상상에만 그치지 말고 마음속에만 담아주지 말고 현실로 실현해보길 원한다. 보이지 않는 감시를 과감히 조롱하고 싶다. 불행히도 필자는 군대시절 커다란 상처를 안겨준 선임병을 잊지 못한다. 그는 가방 끈 길다는 이유로 필자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폭력을 일삼았다. 선임병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하극상은 있을 수 없다는 규율 의 내면화가 분노의 폭발을 억누르고 그저 당하기만 했다. 억울하고 분통하여 가끔 꿈에 나오고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이게 얼마나 필자를 불행하게 하는 지 모른다. 그때 말이라도 나의 감정을 확인시켰다면 지금 이렇게 분노로 들끓어 속으로 끙끙앓지는 않았을 거라는 후회가 든다. 우린 너무 겁먹었다. 주눅 들었다. 인간을 위해 생겨난 이성이 주객이 전도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그렇다고 감정에 치우친 행위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단지 이성이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나타난 비인간화. 인간은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듯 획일화되어가고 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이 부분을 극명하게 지적한다. 컨베어 벨트를 따라 돌아가는 제품들의 볼트를 기계적으로 조여주는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은 마치 그들이 대량생산되는 제품의 부품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정해진 일과와 계획된 틀 안에서 살아야 하는 뻐꾸기 둥지 속의 사람들.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비주류들의 운명. "적어도 시도는 해봤잖아!" 라고 외치는 머피! 부서지고 깨져도 당당히 일어서는 그의 모습이 갸륵하고 당당하다. 우리 주변에는 뻐꾸기 둥지가 많다. 내가 살고 있는 땅도 다니던 학교도, 소속된 단체도 모든 것이 뻐꾸기 둥지다. 자! 뻐꾸기 둥지를 벗어나 창공을 향해 날아가 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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