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더> 천사의 피부는 하얗다
글: 손정호
2001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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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우더는 백색증에 걸린 아이다. 온 몸에 털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완전히 하얗다. 하지만 파우더에게 놀란 표정을 하면 안 된다. 마음이 여려서 쉽게 상처받는다.
2. 파우더의 몸은 전해질로 되어있다. 파우더를 만날 때는 가급적 전기 제품의 플러그는 빼야한다.
3. 파우더는 햇빛에 무척 약한 눈을 가지고 있다. 파우더가 렌즈나 썬글라스를 집에 놓고 왔으면 옷을 벗어 눈을 가려주던지 안경이 있다면 안경을 벗어줘야 한다.
4. 파우더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파우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손가락 하나를 파우더의 뺨에 갖다대기만 해도 된다.
5. 파우더는 머리가 엄청 좋다. 인류 사상 최고의 천재다. 시험전날 공부를 하나도 못했으면 파우더 옆에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도 된다.
6. 그리고 파우더는 아름다운 영혼으로 우리를 전염시킨다. 우리의 영혼에 가능성이 있다면.
내가 파우더를 처음 만난 것은 어느 할 일 없는 주말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에 친구들이랑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고 늘어지는 하품과 함께 소파 위에서 TV 리모콘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때였다. KBS 채널 속에서 파우더는 어느 비오는 날 번개를 맞은 엄마와 사별을 하고 아버지에게 부정을 당하며 태어나고 있었다. 나는 괴기 공포 영화겠지 하는 마음에 긴장을 하고 브라운관을 응시했다. 하지만 잠시 후 파우더는 넓고 푸른 평원과 높고 맑은 하늘을 내게 주었다. 번개를 동반한 호우경보가 끝나고 나서 온갖 오물이 다 쓸려간 세상의 상쾌함. "파우더"는 그런 영화다. 하지만 번개를 동반한 호우 속을 헤쳐나가야 하듯이 파우더의 싱그러운 영혼의 샤워를 받기 위해서는 잠시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두운 면들을 씁쓸하게 지나치기도 해야한다.
"파우더"를 보면서 새삼 다시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왜 너와 다르면 안 되는가하는 것이다. 파우더는, 위의 유의사항에도 나와있듯이, 일반적인 모습과는 많은 면에서 다르고,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로 파우더는 오랜 세월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가고, 노부모까지 돌아가신 뒤, 세상으로 나온 후에는 세상으로부터 따돌림당하게 된다. 아이들은 파우더를 놀리고 때리고 심지어 옷을 벗겨 흙탕물에 던져 넣기도 한다. 어른들은 파우더를 더러운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자기 딸이 파우더랑 같이 있는 것도 참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파우더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겁을 먹고 파우더를 경계하고 경계심을 욕설이나 폭력으로 바꾸기도 하여 자신의 두려움을 숨기려한다. 결국 상처받는 것은 파우더이다.
파우더가 주는 또 하나의 좋은 생각은 자연은 우리가 숨쉬며 함께 살아가야 할 곳이며 생명체는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유희를 위해 죽이기도 하는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 고발하기도 한다. 내가 만약 우리 보다 뛰어난 외계인에 의해 유희로 사냥되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느낄까? (그렇다고 내가 채식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다만 유희로 생물을 죽이며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는-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소비적인 의미에서의 사냥-모피를 위해서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에 대해 반대할 뿐이다.) "파우더"는 그 끔찍한 뒤바뀐 상황의 체험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서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배웠을 법한, 하지만 세상에 익숙해져 갈수록 잊어 가는, 진부할 수도 있지만 가장 진실한 가르침 중에 하나에 대해서 말해준다.
우리 파우더와 친구가 되기 위한 다섯 번째 유의 사항. 이것이 "파우더"의 전편에 흐르는 파우더의 감성이고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손가락만 갖다대어도 서로의 마음을 읽고 맥박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물론 일반적인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고, 그것은 그런 것을 꿈꾸는 것에 대한 동경에 불과하다고 비웃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우더"에서 보여지는 영혼의 교감에 대한 희망은 나에게는 어떤 상정으로도 다가왔다. 우리의 현실이나 본성에 대해서 정확하고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되짚어 보는 것이 우리에게 선행되어야겠지만 현실 앞에 '인간은 다 그런 것이지 뭐'라고 주저앉아버리는 것은 왠지 인간적이어 보이지 않는다. 파우더는 인간에 대한 회의적이고 어두운 모습들을 냉정하게 보여주기도 하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게 흐르고 있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지는 한없이 환하고 밝은 미소는 나에게는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파우더"의 마지막 장면이 나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될 것 같다. 하지만 "파우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내 글을 읽고, 아니면 이 영화를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될지도 모르는 분들의 감동의 극대화를 위해서.
지금쯤 파우더는 어디에 있을까? 저 하늘 어디, 아님 저 우주 어디에서 행복한 유영을 했음 좋겠다. 똑같이 따뜻한 생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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