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영화를 찾아서

<와이키키 브라더스> 변방에서 서성이다


글: 박우진
2001년 10월 27일

확신에 찬 듯 쭉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 질주하며 지나치는 휴게소. 난 언제부턴가 그 곳에 들를 때면 서글퍼졌다. 목적을 향해 치달아가는 삶의 정도(正道) 바깥을 서성이며 '출발'에도 '도착'에도 닿지 못한 어정쩡한 인생 군상의 표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게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미래도, 이렇게 길을 가다 가다 중심선에서 밀려나 변방에서 수런대고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기도 했다. 잠깐씩 찾아드는 이 애처로운 감정에 못내 마음이 녹아내려, 볼일만 끝나면 허둥지둥 휴게소를 떠나자고 졸라대곤 했다.

갈피를 잃은 채, 지독한 관성의 파도에 밀려 극장을 들락댄 지 오래. 나의 마음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다가 또 다시 뭉텅 녹아내렸다. 어딘지 묘하게 한이 서린 트로트 메들리, 끊임없이 몰려왔다 빠져나가는 행인들의 분주한 발걸음, 내 눈에 부연 연막을 치던 그 휴게소의 풍경과 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지나쳐 가는 삼류 밴드의 모습이 너무도 닮아있었기에. 그럼에도 사그라지는 어린 꿈의 끝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그들의 미련이 그야말로 순수하게 '미련'했으므로.

너, 행복하냐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는 사람은 너 뿐인데, 너는 행복하냐고. 술에 취해 황망한 눈빛으로 물어오는 한 사내의 능청스럽기까지 한 이 '우문(愚問)'이 어쩌면 그토록 벌겋게 달아올라 마음을 지질 수 있는 것일까. 서러운 불길이 눈가까지 치밀어 올라 울컥 뺨으로 굴러 내렸다. 그들의 바다같이 훨훨 드넓은 이상은 세월이 흘러 남루한 노래방 기기의 틀 속에 갇히고, 첫사랑 소녀의 도도한 목청은 청상과부의 천연덕스러운 넉살로 탈바꿈했는데, 행복하냐고...? 차라리 너만은 행복해야 한다고, 우리의 무구한 시간을 고스란히 짊어진 네가 행복해야 거기 기대어 나 또한 살아낼 것 같다고 다그치기라도 하지. 그렇게 솔직해 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향수가 덮쳐올까 아슬한 사내의 마음이 먼 발치에 앉은 나에게까지 쿵 내려앉았다.

목구멍에 풀칠할 알량한 돈푼 때문에 옷까지, 자존심까지 훌렁 벗어야 하는 고달픈 우리네 인생. 온 몸에 박혀드는 '한(限)'의 가시를 부둥킨 채 알몸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삭막한 삶. <세 친구> 이후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임순례 감독이 그 적요한 시간 속에서 찾아낸 깨달음의 사리는 그래도 '희망' 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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