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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더이상 부산영화제는 없다 :::


양유창 | 2001년 11월 17일
조회 7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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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없다 시리즈의 책이 잘팔린 적이 있었다. 일본은 있느니 한국은 없느니 하며 데카르트와 아무 관련도 없는 존재론이 Mystique & Aura를 반영하던 때였다. 필자는 이런 제목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이 있고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무엇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고 무엇이 없었는데 지금은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필자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바라보며 갑자기 달라졌다고 떠들어대는 언론의 부채질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언론보도만 찾아보노라면 부산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이며, 초청된 게스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게스트들은 환한 미소로 부산영화제 최고를 연발하고 돌아가고 있다. 한국영화는 부산을 찾는 영화관계자들 사이에 단연 인기이며, 우리도 이런 국제적인 행사를 갖게 되어 자랑스럽단다.

과연 그럴까? 부산영화제는 정말 현재진행형으로 잘나가고 있는 것일까? 잘나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글을 통해 나는 부산영화제가 과거에 가졌던 것과 지금 잃어버린 것, 그리고 지금 가진 것과 예전에 없었던 것을 따져봄으로써 지금 우리가 부산국제영화제에 막연히 가지고 있는 감격(?)과 뿌듯함에서 한 발 떨어져 차분하게 바라볼 것을 요구하려 한다.

1. 오프닝과 클로징

필자는 올해 부산영화제의 오프닝 필름으로 <흑수선>이 선정되고 클로징으로 <수리요타이>가 선정되었다고 들었을 때 기가막혔다. 한 마디로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깐느영화제가 <물랑루즈>를 개막작으로 선정함으로써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적당히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따라하기에 부산은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더군다나 태국의 <수리요타이>는 감독이 그 나라의 왕자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지원을 상당히 받는, 다분히 안팎으로 정치색이 강한 영화 아닌가.

은근히 괜찮은 영화이기를 바랬지만, 기자시사회 후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은 기대에 못미치는 영화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작은 러브스토리에서 실력발휘를 해온 배창호에게 <흑수선> 같은 스케일 큰 영화는 무리였다는 평가다. 소재가 한국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전쟁보다는 로맨스에 더 초점을 맞춤으로써 '한국적'인 특징마저도 살려내지 못했다.

오프닝과 클로징 필름은 그 영화제의 캐릭터를 말해주는 영화이다. <흑수선>과 <수리요타이>의 전략은 철저히 '블록버스터' 정신이다. 이런 정신은 오스카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아시아의 한국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애초에 아시아영화의 연대와 '아시아적인 캐릭터' 찾기에서 영화제 운영의 키워드를 찾았던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신을 떠올리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2. 그 많던 다큐멘터리들은 어디로 갔는가

과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비록 인기있는 섹션은 아니었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을 발하던 다큐멘터리 섹션이 있었다. 그곳에는 정치적인 필름들과 비디오들이 즐비하였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큐멘터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저 휴먼 스토리 뿐이고 디지털 시대답게 DV 작품들이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디지털 정신을 보여주는 DV는 없었다.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옥천주민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미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미군과 게릴라식으로 싸우는 이야기들이 출품되었지만, 모두 부산영상위원회에 의해 선정이 거부되었다. 어느 영화제나 출품작에 대한 선정기준이 나름대로 갖추어져 있겠지만, 이번에 선정거부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

3. 정치적인 이유

신상옥 감독의 <탈출기>가 공개상영되지 못한 이유는 국가보안법이었다. 이번 사건은 검열이나 심의가 아닌 다른 법으로도 영화의 공개상영이 방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약 두 달 전 <둘 하나 SEX>가 영진위의 심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표현의 자유가 좀더 보호받을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해 있었지만, 앞으로 심의가 아니더라도 다른 관련법으로 영화의 상영은 충분히 제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개인과 이익집단의 이기주의가 극도로 높은 사회에서는 더더욱 심할 것이다.

직접적인 정치적 스토리는 부산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개막식날 개막행사를 보러온 관객들은 식장 앞에서 분주히 오가는 정치인들과 배우들, 진행요원들 때문에 난장판이 된 행사에 혀를 차야 했고, 더욱이 정치인들은 자신의 행사 순서에까지 신경쓸 정도로 부산영화제에 공을 들였다. 정작 그 뒷편에서 영화제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개막 일주일 전까지도 자금이 없어서 동분서주 돈 꾸러 다녔지만, 이날 참석한 정치인들은 국가의 국제행사 예산을 부산영화제처럼 6회나 된 영화제가 아닌 새로운 행사를 만들어 사용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부산영화제는 내년이 문화관광부의 자금지원을 받는 마지막 해가 될 것이다.

4. 영화에 대한 피상적인 사랑

1990년부터 감지되기 시작한 한국 영화팬들의 등장은 1995년을 기점으로 폭발하였다. 여러 잡지들이 창간되고 다양한 영화들이 수입되었으며, 그런 기운을 바탕으로 마침내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하였다. 그 이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이야기한다. 개중에는 정말 영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대부분은 거품들이다. 일종의 유행처럼 한국인들의 냄비근성이 영화라는 패션 상품으로 대거 몰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 역시 중요한 오락이고 그러한 오락적 기능이 사회에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면 득보다는 실이 된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이야기하다보니 정작 정말로 영화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소외받는다. 그렇게 소외받아 잘 들리지 않는다. 또, 영화가 군계일학처럼 뻗어갈수록 인접장르의 문화들이 죽어간다. 연극계는 요즘 공연을 준비할 수가 없다. 연극배우 10명 중 9명은 영화계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영화팬들의 가치 역시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부산을 찾는 그들이 과연 어떤 궤적을 그리며 영화제를 돌아보는지, 그리고 그들이 감독과의 대화에서 주고받은 문답들이 과연 얼마나 진솔한 것들인지 곰곰히 따져보자. 너무 피상적이어서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본 것일 뿐인데도 갑자기 존경하게 된 천재들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밖에 자원봉사자들의 마찰, 잦은 영사사고, 전용관이 없는 행사시설, 외국어 자막, 숙박시설 미흡, 관광지 부재, 안전사고의 문제 등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 외부적인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제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블록버스터를 내세워 '아시아영화 만세'를 외칠 시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적합한 스타일을 찾고 발전시켜야 하고, 그 역할을 부산이 했어야 했다.

PPP에 대한 평가는 지금은 보류하기로 한다. 이 제도는 유럽과 아시아의 기업의 자금을 영화인들과 연결시켜준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시장적인 기능과 실질적인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일치하는지 일치하지 않는지는 아직 검증된 바 없기 때문이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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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Comments

동감입니다. limetree(성재원) - 2001/11/17
이번 영화제는 단 2일 밖에 참가하지 못했고 영화전반에 대한 안목이 부족하기에 개인적으로 정리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산 영화제에 조금씩 상업주의가 스며들고 있으며 아울러서 사회적 소수, 제도권 밖에 있는 영화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발견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유창님의 글을 보면서 정말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건필하시구요.. ^^
맞는 말이져... golmokgil(최재필) - 2001/11/18
하긴...다른 데에서는 부산영화제의 성공만 보고 있지만 역시 씨네라인....
앞으로 부산영화제가 더욱더 발전하려면 이러한 병페는 지적해야져..
흠..신상옥감독의 탈출기가 이번에 공개못한게 쫌 아쉽네여..
동의 합니다 산타산그레(박진일) - 2001/11/19


부산 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의 창이 되어야지
상업적, 정치적인 상징물이 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본래의 의도가 점차 퇴색되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허나 이런 지적도 대안 있는 개서안을 뚜렷히
제시 됬으면 합니다
부산영화제의 이번 실책은 어쩔수없이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요...?
향기로운 꽃에는 벌레들은 끼고 또 그 벌레들은
해충도 익충도 모여드니까요
그래서 올바른 방향제시를 요구해야 할 것 갑습니다
그래야지만 부산영화제는 제대로운 발걸음으로
나갈수 있게 말입니다
하지만.. leben98(박용하) - 2001/11/22
부산 영화제에 대한 지적 정말 공감하고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드는 생각이 구체적인 대안제시라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최근에 흥행되고 있는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관객들이 부산 영화제가 아시아의 창이 된다는 식의 당위를 따지기 보다는 엔터테이먼트측면에서의 영화만을 바라보는, 소비적인 시선으로 편향되어가는게 아닐까라는 우려가 듭니다. 물론 '고양이를 부탁해'나 '와이키키 부라더스'에 관련된 일련의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기는 하지만... 엥.. 그냥 그런 생각이 듭니다요~
기사 잘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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