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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불교, 그리움 :::


양유창 | 2001년 11월 12일
조회 6259


1. 불교

한국초기의 불교사상은 진리와 인식에 대한 근원적 이론으로부터 출발했다. "일체는 주관일 뿐 객관은 없다"는 것이 고구려 승랑(僧郞)의 삼론학(三論學)과 신라 원측(圓測)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기저였다.

이에 대해 한국불교계의 수퍼스타인 의상, 원효, 의천은 '화엄사상(華嚴思想)'을 제시하였다. "전체가 하나, 하나가 전체이고, 객관적 현상에 대한 차별적 견해나 주관적 대립을 해소하자"는 화엄사상은 무슨 삼총사 이야기 같지만 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다는 면에서 귀감이 될 만하다. 특히 원효는 엘리트 불교를 뛰어넘어 대중 속으로 나와 살면서 민중불교를 일으킨 사람으로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불교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달마야 놀자> 때문이다. 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솔직히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마도 나중에 TV에서 방영해주면 그때 볼 지도 모르겠다. 오늘 <싸이렌>을 TV에서 흘끗흘끗 본 것처럼.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다 알 것 같다. 신문, TV 등에서 주워 듣는 이야기로도 충분히 기승전결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스님 정진영박신양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자네가 물통을 연못에 빠뜨린 것처럼 내가 자네를 내 가슴 속에 빠뜨린 것이네"라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특유의 생뚱맞은 표현에 기가 막혀서 혀를 내둘렀다.(한겨레식 표현) 난 불교식 선문답을 아주 싫어하는데 그것은 그러한 선문답이 전혀 불교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사상은 화엄과 연기, 그리고 자비로 대별해볼 수 있는데, 그 어떤 사상에도 선문답에 대한 어설픈 지혜는 들어 있지 않다.

연기는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하고 관계한다"는 사상이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윤리사상으로 곧 자비로 이어진다. 자비는 단순한 사랑이 아닌 타인의 슬픔을 자기화하는 사랑이다. 자비와 연기를 바탕으로 곧 "너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성립된다. 고려말의 지눌은 객관적 세계를 인식하고 주관을 잃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참다운 자신을 발견하자는 '선' 사상을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전파했는데 이러한 본성을 밝혀내자는 정신을 '견성(見性)'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오히려 좀더 구체적이고 좀더 따뜻한 것이 불교의 정신이다. 비록 우리가 TV에서 보는 불교는 조직폭력배와 종권다툼의 지저분한 권력싸움에 불과하지만, 그 역사 속에는 한국인의 마음의 안식처가 된 자비의 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위에 써놓은 지식은 그저 조계사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불교 관련서적 몇 권 읽으면서 적어둔 것일 뿐이다. 예전에 훈련소에 있을 때 종교가 없던 나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를 모두 번갈아가면서 가보았는데 개인적으로 불교에 가장 애착이 갔다. 기독교 식의 강요하는 설교나 천주교식의 부담스러운 치장 없이 단지 향의 내음과 산사에서 나오는 목탁소리가 일요일 아침에 정신을 맑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2. 그리움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난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그립다고 이야기할 때 그것은 어떤 감정일까? 하지만 내가 잘 아는 감정이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말할 때 그 감정은 터질 듯한 마음의 분출이다.

어떤 선배가 해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조선시대, 한 남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둘은 벼슬을 하여 관직에 진출하여 각자 다른 방향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어느날, 이 남자는 자신의 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그래서 한밤중에 그 친구의 집까지 찾아갔다. 6시간이 걸리는 길을 한걸음에 걸어서 친구의 집까지 다다랐다. 친구의 집에서 하인이 그를 맞았다. 그는 숨을 몰아쉬고는 하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왔다 갔노라고 전해주게." 이런 말을 남기고는 다시 6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왜 친구를 만나지 않고 다시 돌아간 것일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리움,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 그 그리움이 혹시 친구를 대했을 때 깨질까봐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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