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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상상력을 감행하라 :::


양유창 | 2001년 10월 19일
조회 8735


1. Plein d'Imagination

존 레논의 'Imagine'에는 많은 혁명적인 사상이 담겨져 있다. 종교가 없는 세상, 소유가 없는 세상, 국경이 없는 세상을 염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주 우연한 기회 때마다 이 곡을 자세히 듣곤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가사와 곡이 주는 느낌이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그저 비틀즈가 좋고 멜로디가 좋았다면 이후 <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에 삽입되었을 때는 베트남전과 미국의 70년대가 겹쳐지면서 당시 젊은이들이 떠올랐었다. 그런가 하면 런던에 살던 시절, 비틀즈 스튜디오에 갔을 때는 존 레논의 사진과 그의 삶과 함께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 존 레논의 자유의지를 추억하는 최상의 방법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엊그제 68혁명에 관한 생각을 하면서 또 이 노래를 떠올렸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출발해서 대서양을 건너 뉴욕,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도쿄대학까지 다다랐던 그 기운이 대한해협을 넘지 못한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의식의 개혁이 없었기에 지금, 개성이 말살되고 획일화된 기운이, 그리고 그 자본주의적 음모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지적되지 않는 이 사회가 난 싫다. 바꾸고 싶다. 난 내가 애국자라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 없지만, 아주 사회적인 것은 분명하다.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고 말할 지도 모르지만, 단지 나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난 이 컬럼을 통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어떻게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 어떤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 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전하도록 하겠다.

2. La Famille Imaginatif

<아들의 방>의 난니 모레띠는 역시 물을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난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투명한 컵에 담긴 물을 마시는 그가 좋다. 그동안 난 정신과 의사야말로 아무 하는 일도 없이 환자들 고민 조금 들어주면서 시간 떼우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지에서 온 착각임을 일깨워줄 만큼 난니 모레띠의 의사생활은 피곤하다. 더구나 자신이 평온한 상태가 아닐 때 커다란 피곤은 극에 달한다.

이 영화는 자신의 직업과 가정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놓친 것들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감행하도록 하는 영화이다. 자신의 직업이 가져온 불안정감, 그 불안정감이 유발한 불의의 사고, 그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었기를 바라기 위해 인간의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상상들.

영화는 아무런 해답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아들에게 편지를 썼던 친구와의 여행이 앞으로의 갈등을 해소하리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끝나지만, 사실 그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택할 수 있던 수많은 해결책 중 하나였을 뿐이다. 상상력은 무한하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 환자의 전화를 받지 않고 아들과 함께 조깅을 했을 때 이어졌을 삶의 다른 스펙트럼들도 무한하다. 스펙트럼들은 모두 주관적 상상력 속에서 나온다. 그래서 난 이 영화에 대해 객관적일 수 없다.

3. Est-ce que 'Anthraction' a envie des Imaginations?

'탄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탄저균'이 사회 속으로 들어오면서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기한 일은 단지 '탄저균'이라는 알 수 없는 하얀 가루에 의해 일어났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검사를 받고 미국 의회는 문을 닫는다. 의회가 문을 닫고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정기검진을 받는 등으로 애쓴다면 분명 사회의 발전은 더뎌질 것이다. 그리고 발전의 속도가 느려진다면 그만큼 자원보호의 길은 넓어질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증식이라는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모순점들이 어쩌면 이번 기회에 서서히 해결될 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 MBC 입사시험에 '21세기 세계평화를 위한 미국의 역할'을 논술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한다. 친구에게 그 얘기를 들은 뒤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난 미국이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만이 세계평화에 공헌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불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 지역에서 누군가 패권을 차지한다는 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다. 권력을 잡으면 눈이 먼다고 하지 않았는가. 유럽에서 서서히 패권주의로 접어들고 있는 독일, 대륙명과 동일한 국호를 쓰는 국가들인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중국은 모두 너무 커서 문제가 되는 국가들이다. 혼자 힘이 너무 강하면 주변국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곧, 동아시아가 중국이 되고, 유럽이 독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어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에게도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체코나 폴란드, 헝가리를 돌아다니면서 독일어를 사용해보라. 그곳은 이미 도이치마르크가 자국 화폐 보다 더 환영받는 곳들이다. 단언하건데 독일의 통일은 유럽 전체에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심화만 가져왔고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가 말 그대로 전몰하는 사태를 가져왔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균형이 깨졌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같은 이유에서 나는 한국 통일에도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통일에 나는 반대한다. 지금보다 더 중국의 영향력이 세지는 한, 동북아시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반도 통일국가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통일이 단지 북한 주민들을 죽이는 결과 밖에는 초래하지 않을 것이기에 섣불리 찬성할 수가 없다. 옌벤의 조선족들에게 우리가 하는 짓을 보라. 그리고 탈북자들에게 우리가 대하는 태도를 보라. 아마 통일 후 지독한 자본주의자들인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3등 국민 취급할 것이 틀림 없다. 솔직히 나부터도 그러지 않겠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기에 난 북한과 남한의 경제력이 같아지지 않는 한 통일에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인 3대 언론사가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시각을 돌변하여 '통일'의 목소리를 드높일 것이라는 것을. 철저한 이익집단인 이들은 현재의 반통일 목소리로 얻는 이익보다 앞으로 통일이 됐을 때 얻을 이익이 더 클 것이라고 느끼는 순간, 즉, 손익분기점에 다다랐다고 느끼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통일론자들이 되어 난리를 칠 것이 분명하다. 이들의 논리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차분하게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통일 논의를 거부해야 한다. 보수론자들이 앞으로 10년 내에 부를 그 통일 행진곡은 어느날 갑자기 38선을 붕괴시켜 버릴 지도 모른다. 베를린 장벽이 진보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를 내세운 서독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어느 한 순간에 무너졌던 것처럼.

성장만이 전부라는 인식은 낡은 것이다. 그렇다고 멈춰 있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성숙'이 필요한 시기다. 우리는 '발전'하지 않더라도 잘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산업화와 정보화를 이루자고 목청껏 소리지르기 전에 한 번 생각해보자. 왜 우리가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소비를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나고 더 좋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그런 것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혹시 이 거대한 지구 자본주의 시스템을 위한 것은 아닌가? 쓸데없는 물건들을 자꾸 만들어내어 소비시키기 위해 환경파괴를 일삼는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과연 필요한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신념처럼 믿고 있는 이 체계를 과연 '민주적'으로 결정했다고 자부하는가? 당신이 믿고 말할 수 있는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당신은 직장인인가? 학생인가? 혹은 비자발적 경제소비인구 즉 실업자인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왜 실업자가 되었는가? 만 28세로 연령을 제한하고 남녀를 구분하는 우리의 취업제도는 과연 우리의 헌법에 보장된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있는가? 헌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사람을 차별하는 이러한 제도를 행사하는 기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자본주의를 증산하는 시스템의 일부인가? 이 시간에도 추위에 떨며 죽은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나의 친구, 그리고 낭비되는 식량을 지구의 반대편에 두고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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