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영화의 경향 :::
유행은 가고 웰 메이드 로망이 도래하다
이민우 | 2004년 01월 07일
조회 4670
1. 전화위복
2002년은 조폭 코미디를 위시한 이벤트성 영화들이 한몫 잡아보려는 투기성 자본들의 유입으로 무수히 양산된 한해였다. 그러나 아류의 얄팍한 아류를 낳는 식의 특정장르 범람은 관객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고, 한국영화 점유율 상승이라는 외피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적자에 허덕이는 영화사들이 부지기수였다. 그 결과 벤처 열풍만큼이나 뜨거웠던 영화투자는 경색됐고, 2003년 전망은 밝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한 투자의 거품이 빠지면서 한국 영화계는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건실한 투자와 참신한 기획, 제작시스템의 체계화만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인식이 제자리를 잡았고, 양질의 투자와 제작은 양질의 영화 양산으로 이어져, 관객과 평단 모두의 찬사를 받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 영화계는 올 한해 한국영화 6편 300만 클럽 가입, 한국영화 점유율 50%대 육박이라는 성과를 일구어냈다. 이 경이로운 수치는 영화계와 관객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보다 우리가 기뻐하고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영화가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사실이다.
2. 절대지존 흥행 코드, 흥행 장르는 없다
2년 전 그해의 문화 키워드는 ‘조폭’이었다. 우스꽝스럽고, 인간적이고, 멋지고, 진정 사랑할 줄 알고, 의리에 죽고 사는, 폼생폼사의 대명사 ‘조폭’, ‘돈키호테’에 가까운 칭호를 받으며 대중의 카타르시스로 자리매김한 그를 탄생시킨 장본인은 영화였다. 스크린은 그를 다양하게 변주하여 조직폭력배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엎는 신선함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그는 영화 속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흥행코드가 됐다. 한동안 그의 위세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작년, 봇물 터지듯이 양산된 조폭 영화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올해 ‘조폭 마누라 2’의 실패는 조폭 천하의 종말을 선언한다.
올해도 여전히 코미디 장르의 범람은 계속됐다. 그러나 상향 평준화된 관객의 눈높이는 과거처럼 어설픈 코미디에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대신 7,000원 값어치를 하는 영화를 골라낼 줄 알게 되면서 장르와 유행에 치우치지 않는 합리적인 소비 행태를 보였다. 자연히 특정코드, 장르의 득세는 자취를 감추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골고루 사랑을 받았다.
3. 웰 메이드 시대의 도래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올해 관객의 높아진 눈높이에 부흥한 영화가 있었으니, 작품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웰 메이드 영화다. 상반기 <살인의 추억>, <장화홍련>, 후반기 <올드보이> 이 세편의 영화는 유행이나 바람에 편승하지 않고, 뚝심 있게 작가의 주관을 끌고 가면서도 세련된 완성도와 매끈함을 무기로 관객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한 케이스다. 단순한 재미 외에 미학적 재미까지 가미한 이들 영화는 넌 센스 영화에 식상한 관객에게 진정한 영화의 즐거움을 선사했고, 그와 함께 관객이 영화를 마주하는 지평은 더욱 넓고 깊어졌다. 장르불문하고 잘 만들어진 영화는 꼭 된다는 공식이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4. 스타 감독 탄생
 과거에는 ‘그 영화의 주연이 누구냐’ 인가에 따라 영화의 흥행이 좌지우지됐었다. 그러나 최근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허진호 같은 젊고 뛰어난 작가감독들의 영화가 관객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으면서 이들 감독이 만드는 영화라면 상업성과 작품성을 아우르는 성공이 보장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필연적으로 이들을 마케팅의 도구로 삼은 기획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쓰리>, <묻지 마 패밀리>, <여섯 개의 시선>, <이공>, 기획중인 <디지털 삼인삼색> 등의 영화가 여러 스타감독들의 단편을 옴니버스로 꾸밈으로써, 감독의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5. 좋은 작품에서 열연한 배우가 인정받는다
이젠 배우가 어떤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느냐가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훌륭한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연기력과 인기 모두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반면 아무리 인기가 많은 스타일지라도 형편없는 영화에 출연하면 배우로서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고 관객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게 된다. 이제 관객은 뛰어난 영화에 출연하여 출중한 연기력을 뽐내는 진짜 배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6.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 등장
드라마에서는 <다모>, 영화에서는 <조선남녀 상열지사> <황산벌> 등 퓨전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개척돼 성공을 거두었다. 음식에 퓨전이 유행하듯, 문화전반에도 퓨전 열풍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선택>, <여섯 개의 시선>과 같은 인권영화와 <오세암>, <동승> 등 교육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 극장개봉을 해 세인의 관심을 모았고, <장화홍련>, <거울 속으로>, <여우계단>, <아카시아>, <4인용 식탁> 등 공포영화가 제작과 흥행 면에서 성과를 거두어 전망을 밝게 했다. 특히 풍부한 상상력으로 똘똘 뭉친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비록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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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우
사람들은 내 첫인상을 차갑다고 한다. 실제로 털털함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내 자신은 감상적이고 따뜻하며 허점투성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나의 미숙한 모습에 실망하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어리숙한 면이 사람들을 대할 때 편안하고 솔직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지금의 나에게 만족한다. 앞으로도 인간적인 이민우는 반드시 지키고 싶은 나의 모습이 될 것이고, 내가 만드는 영화의 색깔도 지극히 솔직하고 인간적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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