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되는 5편의 영화 '소통'의 가능성 모색 :::

여임동 | 1999년 10월 01일 조회 1606
1999년도 마지막에 새로운 한국영화들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 맞이하게 될 환희의 21세기(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2001년도 1월 1일부터지만) '축제'에 전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님 그 반대로 지나온 20세기의 아픔들을 치유하는 '진혼곡'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하지만 아마도 우릴 맞이하게 될 영화들은 후자를 뒤 따를 것 같다. 20세기는 적어도 이 나라 '한국'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변화와 발전 그리고 그만큼의 이름 없는 희생을 치른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내가(아니 나 뿐만이 아니라 이 영화들을 미리 접해보게 해준 키노와 씨네 21 그리고 여타 잡지 또한) 기대하는 영화5편이 있다. 물론 각 영화마다 소재와 장르는 분명 다르지만, 그 다섯편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와 키워드는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먼저 그 영화들을 차례로 소개하면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장윤현 감독의 [텔미섬씽],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규동, 김태용 감독의 [여고괴담2]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들의 공통된 주제는 바로 '소통'이다. 20세기 그리고 지금 현실의 반성을 소통의 부재에서 찾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박하사탕]은 70,80년대 그러니까 과거 우리와 다시 조우하려 시작하고 그리고 거기서 과거와 현재의 끊어진 소통지점을 찾아 이으려고 하며, [텔미섬씽]은 엽기적인 살인 사건과 연관된 한 여성의 잊어버린 기억을 열려고 하며,[세기말]은 각각 흩어지고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 세기말의 사람들에게 직접화법으로 대화를 시도하며,[해피엔드]는 부부간의 단절된 관계에 대한 고찰이며, [여고괴담2]는 다시 한번, 공포의 대상으로 전락한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기대되는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뽑힌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다.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에서 변두리에 위치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 이후 바로 과거를 내다보기 시작한다.그리고 물론 그 바라봄은 현재와 연결될 것이며 그 소통의 지점에서 현재를 직시하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관객이 그의 이 과거로의 여행에 동참하게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다.[초록물고기]와 달리스타시스템을 배제한 것은 이미 이 영화의 관객을 일정정도 제한한 것을 뜻하며,또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자 시도했던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에 실패의 결과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도 돈을 내고.
이미 [접속]에서 소통의 문제를 얘기했던 장윤현 감독은 그 자신의 두번째 영화 [텔미섬씽]에서도 장르의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은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한 유일한 단서를 가지고 있는 한 여자의 기억과 소통함으로써 기억상실증에 걸린 우리의 근본문제(아마도 영화 속 연쇄살인범일 듯한)를 찾아 낼 것이다.그러나 [접속]이 그 주제의식을 상실한 채, 멜로적인 현대 젊은이들의 어떤 기호에 접목하여 하나의 유행으로 끝났던 것처럼(사운드 트랙의 성공으로 대표되는) 다시 한번 반복된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이미 한석규와 심은하는 우리와 진실된 소 통하기에는 다소 범접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쌈마이들의 온갖 얘기들을 온통 모아와서 한번에 폭발(?)시킨[넘버 3]의 송능한 감독은 이번에는 세기말의 혼란에 빠진 세기말 사람들을 위해 모두 죽여버릴만한 큰폭탄을 제조하고 있는 것 같다.그는 우회하기 보다는 직접 우리의 현실을 보여줄 것이며, 이 현실과 소통 못하는,아니 어쩌면 알고도 모른체 하는 우리 자신의 위선을 까발리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는 바로 현실을 직시하려는 점에서 여타 영화보다 다분히 지름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큰 위험성을 동반하는 것 같다.우린 현실을 바로 보여준다는 소위 추적 60분 같은 르포 혹은 다큐멘터리들이 다시 한번 그 스스로 상업성의 함정에 빠져버린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번째와 다섯번째 영화는 수작 단편영화를 찍은 후, 처음으로 장편 데뷔를 하는 정지우 감독과 민규동, 김태용 감독의 작품이라는 면에서 약간의 설레임을 동반한다. 단편영화 [생강]에서 한 운동권 아내에 모르고 잊혀졌던 일상을 담담히 그러나 소중하게 끄집어 내어 바라 보왔던 정지우 감독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불리는 부부 사이에 소통의 부재를 끄집어낸다. 실직한 남편과 돈을 버는 아내. 무기력에 빠진 남편과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아내. 위치에 엇갈림에서 파생되는 서로의 욕망 사이에서 소통 부재의 원인을 찾아내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단편영화 [열일곱]에서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청소년들을 만난 민규동, 김태용 감독은 98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여고괴담] 그 후속편에 메가폰을 잡았다.전편이 '학교' 자체의 공포감과 '교사'에 대한 적대감에서 비롯된 얘기였다면, 아마[여고괴담2]는 여학생 자신들이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하는 그런 작품이 될 듯 하다. 그러니까 이젠 그동안 스스로 억압되었던 내면을 열어보임으로써, 진실된 대화를 '학교'와 '가족'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전에 전편의 [신화]를 깨 버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청소년의 입을 대변한다는 그 많고 많은 댄스가수, 연예인들 그리고 그들이 출연한 영화들이 다시 한번 청소년의 입을 막아버리는 '신화'가 된 것을 상기해보면 말이다.
이제 앞서 말했던 '진혼곡'과 이 모든 영화들을 하나로 묶는 주제를 연결 지어보며 얘기를 끝내도록 하자. 지금까지(단 20세기라는 100년의 시간 동안) 어디서나 '소통'을 가능케 하는 통신기기의 급격한 발전과 그 파급에도 불구하고,우린 언제나 대화를 갈구하며 진실한 '소통'을 목말라 했다.또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형성된 이웃과의 단절된 삶은 우릴 언제나 남에 희생을 짓밟고 서있는 '귀머거리 승리자'로 만들어냈으며, 역사와 사회를 우리 스스로 단절시켜 한사코 그 아픈 기억들을 잊으려고 했던 것이 사실일 것이다.그래서 아직도 '진실'은 덮여져 있는 것을 깨닫고, 그 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마도 우리가 21세기를 맞기 전에 꼭 해야될 의무를 지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과 사회와 역사와 '소통'해야 하며,그 소통이 그동안 우리가잊고 지냈던 자들을 위한 진혼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영화'가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도 않으며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미지를 통한 심미적 충격과 그외 몇몇 것들 뿐이기 때문이다.다만 '동시대'의 문제점을 바로 보고,그 것을 캐내는 작업만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 다음은 영화를 본 관객의 임무겠지만 적어도 20세기를 정리하는 시점에서싸구려 민족주의나 근거없는 환상에만 빠져 있다면 그것은 영화로서도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다섯 작품의 영화들이 그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진실로 삶과 '소통'되기를 희망해본다. 우리 또한 노력하기를 바래본다, 영화를 통해서건, 어느 것을 통해서건.
- 꿈이 이루어지려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 미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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