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스크린쿼터의 필요성에 대하여 글: 원호성 2004년 04월 04일 관객 1000만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스크린쿼터제의 폐지는 언제라도 도마위에 올라갈 위기에 처해있다. 2003년 한국영화는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와 같은 웰메이드 영화가 시장의 최상위권을 이끌면서, 중간 규모의 영화가 뒤를 받쳐주는 형태로 시장 점유율 50% 라는 꿈의 수치에 근접했다. 한국영화의 이러한 발전은 물론 기쁜 현실이지만, 한국영화가 헐리웃 영화를 밀어내는 현실이 발생하면서, '스크린쿼터 제도를 이용하여, 시장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느냐?' 라는 목소리가 그동안 쿼터 폐지를 반대한 국내의 관객들 입에서도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는 주목해야 한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서울 300만, 전국 1000만을 한 달 터울로 넘어섰다. 그것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1997년 <타이타닉> 이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상대로 말이다. 두 영화의 거대한 성공은 당분간 한국영화의 제작에 큰 힘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시장점유율 50% 를 넘어, 헐리웃의 최고 흥행 카드마저 이기는 한국영화의 힘을 관객들은 과신하기 시작하고, 반대로 직배사를 비롯한 미국측은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스크린쿼터 제도를 지키는 데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다. 관객들이 '쿼터가 없어도 한국영화의 제작에는 차질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여러 복잡한 의견이 뒷받침 된다. 먼저, 스크린쿼터의 보호아래, 조폭 코미디류의 영화처럼, 돈벌이에만 급급한 저질 상업주의 영화들이 제작되는 것은 오히려 한국영화의 후퇴를 가져온다는 작품적인 면과, 스크린쿼터의 보호가 없이도 한국영화가 헐리웃 영화와 당당히 겨룰 수 있다는 산업적인 면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영화인들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특정계층에만 유리한 제도라는 소리와 스타들의 이중적 행동에 대한 처단이라는 측면에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직배사의 압력과 같은 부분은 굳이 설명을 안 해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스크린쿼터 제도의 진의가 그만큼 왜곡되어서 전달된다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스크린쿼터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한국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종다양성이다. 헐리웃 영화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방지책이지, 결코 한국영화를 살리는 보호장벽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호무역은 극단적인 경우, 무역보복을 당할 여지가 있지만, 독과점의 방지는 국제법적으로도 인정이 되는 것이다. 비록 현재는 한국영화의 급격한 상승과 한국내에서 시네마서비스, CJ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한국형 거대 배급사가 생겨나면서 다시 독과점과 같은 양상이 재현되고 있지만, 이런 문제가 단지 스크린쿼터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쿼터연대의 주장처럼, 예술영화 쿼터제와 같은 영화의 종다양성을 위한 제도를 보충하여, 제도를 강화시키는 것이 옳은 해결방법이다. 현재 한국영화가 발전한 것은, 단순히 영화가 경쟁력있어서는 아니다. 정확히는 시네마서비스와 같은 대형 영화 배급세력이 영화의 안정적인 유통을 보장하고, 영화학과를 졸업한 우수한 신진인력이 시장으로 쏟아지며 다양한 작품적 시도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헐리웃 영화가 최근 한국에서 외면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2003년에 헐리웃에서 선보인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대다수는 안이한 기획의 속편에 불과한 것이 태반이었고, 미국내에서조차 와이드 릴리스의 힘이 아니라면 흥행에 성공하기 힘든 작품들이었다. 아이디어와 소재의 고갈에 허덕이는 헐리웃 영화 대신, 관객은 한국영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순간적인 호조를 가지고, 시장을 전면개방하는 것은 영화산업의 고사화를 부추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