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외모나 분위기가 첫인상을
좌우하듯, 영화의 이미지를 제일 먼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얼굴인 '제목(타이틀)'이다. 비디오 숍을 서성이고
있는 당신의 눈길을 제일 먼저 사로잡는 '영화 제목'에 대한 몇 가지
시선.
<메탈
자켓>이 국내에 개봉되고 비디오로
출시되자 그 동안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작품의 한국 입성을
손꼽아 기다리던 팬들은 잠시 의아함을 가졌었다. 이 '메탈
자켓'이 큐브릭 감독 꺼 맞나요? 왜 '풀 메탈 자켓'이 아니라
이 '메탈 자켓'이죠? 등등... 원제인 FULL METAL JACKET은
'완전 피갑탄'이란 뜻으로 영화 속에서는 고되고 혹독한
군사끝에 자살하는 한 병사가 죽기 전수 없이 되뇌던 말이다.
즉, 언제라도 사람을 쏠 준비가 되어 있는 살인 무기로서의
군인을 뜻하는 것. 그런데 고대하던 영화는 'FULL'이라는
형용사가 빠진, 왠지 싱거운 제목으로 우리 곁에 당도했다.
<메탈 자켓>의 국내 개봉 당시 영어 단어 3자리 이상은
제목을 써서는 안된다는, 어이없는 규정 때문이었다.
작품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상징이자, 내용에 대한
암시를 해주기도 하는 '제목'은 분명 그 영화의 흥행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심지어 영화 내용이
별 볼일 없더라도, 제목이 좋아 예상외의 호응을 얻은 사례는
너무나도 많았다. "영화 제목은" 보통 개봉에
앞서 감독, 제작자 등의 스탭 회의를 걸쳐 정하는데, 국내에서
만들어진 우리 영화야 문제될게 없지만, 외화의 경우 스탠리
큐브릭의 <메탈 자켓>처럼 국내 출시용 "이름붙이기"
과정에서 아쉬움을 남기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초창기 우리 나라의 영화 제목 붙이기는 보편화되지
않은 영어, 그리고 일본 문화의 영향 때문에 대부분 한문식
풀이의 이름을 달았었다. 이후 점차 원제를 번역한 형태의
제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부쩍 원제를
그대로 살리는 추세다.
그렇다면 외화의 국내 타이틀은
누가 붙이는 걸까. 보통 영화 배급담당자들이 정하는게
관례지만 홍보사나 관객 대상 공모전의 여는 경우도 많다.
<사랑하고 싶은 그녀 THE OTHER SISTER>도 배급사
내 공모전을 통해 낙찰된 제목이라는 소식. 그런가 하면,
요즘엔 최종 결정권자는 배급사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제목이 그대로 국내용 타이틀로 굳어지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이나 방송, 영화 전문 잡지 등을 통해 크랭크 인부터
영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접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이
과정에선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라이언
일병구하기 SAVING PRIVATE RYAN>는 '라이언 쫄병 구하기'
<제 5 원소 THE FIFTH ELEMENT>는 '제 5요소' 혹은
'피프쓰 엘리먼트'등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는 것. 보통
국제 영화제 참가작이나 전세계적으로 일찌감치 관심을
끄는 블록 버스터의 경우, 국내의 프리뷰 되는 과정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사례다. 그러니까 영화 평론가들이나,영화
전문 잡지들이 개봉 전 미리 소개하기 위해 나름대로 이름을
붙이다 보니 다소 엉뚱하고 재미있는 제목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화 잡지 속'커밍순' 코너에서 소개되는 영화와
개봉 후 제목들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사례들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한편,외화 제목이 우리 나라 식으로 바뀌는
데도 몇가지 법칙이 있는 듯 하다.
외화
제목 짓기의 여섯 가지 유형
1.원제
발음을 그대로 따서 쓰는 경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스크림 SCREAM>등. 대체로 원제가 짧을
때 그대로 쓰게 되고, 발음표기만 정확히 해주면 문제될
부분이 거의 없지만,발음 표기가 잘못 되는 경우 어설픈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영어 공부를 처음 시작하던
때, 영어 원문 바로 아래에 연필로 끄적여놓던 어설픈 발음처럼
말이다.
2.원제를
직역하는 경우
거의 영화
내용과 원제를 손상시키는 일 없이 빠른 시간 내에 타이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 <48시간 48HRS> <당신이
잠든 사이에 WHILE YOU WERE SLEEPING>등이 있는데,
한국어로 직역하기에 어려운 말이나,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단어가 들어있는 경우에는 오역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저수지의 개들 RESERVOIR DOGS>이 대표적인 예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창고의 개들"정도인데
'RESERVOIR' 라는 단어가 '저장소, 창고'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것을 놓쳐 영화 속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저수지'로 해석하게 되었다. 영화를 미처 보지 못한 상태에서
매니아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던 이름이 잘못 번역된 채로
국내 개봉된 경우.
3.원제를
의역하는 경우
직역하는
경우와 틀려서 담당자의 감각적인 센스가 필요한 방법이다.
뜻을 살리면서 적절한 낱말로 대치시켰을 때 원제보다 더
좋은 제목이 나올 수 있지만, 자칫 직역의 경우와 같이
엉뚱한 제목으로 둔갑하기도 한다.<베로니카의 이중생활
THE DOUBLE LIFE OF VERONIQUE>은 '두가지 삶의 베로니카'라는
뜻을 의역하다 졸지에 에로 영화 분위기로 전락시켜 버린
사례.이역시 흥행을 고려 했기 때문일까.
4.원제
중 핵심이 되는 단어만을 따서 쓰는 경우
<인디아나 존스 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DOOM> <길버트 그레이프 WHAT'S EATING GILBERT
GRAPE>처럼 보통 원제가 길 경우, 주인공 이름만 따는
경우가 많고 이외에는 영화 내용을 나타내주는 명사를 발음대로
쓴다. 하지만 단어를 잘못 뽑아내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어게인스트 FROM ADVENTURE OF AGAINST ALL ODDS>의
경우 전치사 '어게인스트'만 따서 쓰다보니 전치사만으로
이루어진 모호한 의미의 영화가 되어 버렸다.
5.전치사난
부사, 관사, 소유격이나 복수를 나타내는 S 등만 살짝 빼
쓰는 경우
가장 콩글리쉬적인
방법이랄 수 있다. <고스트 버스터 GHOST BUSTERS>
<킬링 필드 KILLING FIELDS>등 이루 헤알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례. 여기서는 담당자가 새로운 어법 학자로
둔갑해 버린다. 전치사나 부사, 복수 어미 정도 빠진다고
우리식 해석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없어서
더 매끄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도 실수는
피하기 어렵다. <벅'스 라이프> <유'브 갓 메일>의
경우, 특이하고 세련된 모습이긴 하지만, 영어도 한글도
아닌 세종대왕님께서 졸도 하실 무국적 단어가 되어 버린
것. 그나마 애교 있게 여겨지는 것은 원제에 충실(?)한
<암살자(들) ASSASSIN(S)>정도?
6.원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제목을 창조하는
경우
이도 저도 안되고
영 마땅한 제목이 지어지지 않는 경우, 최후의(?)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 <람보 FIRST BLOOD> <솔드 아웃
JUNGLE ALL THE WAY>처럼 원제를 깡그리 무시하고 새로운
제목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식은 제법 센스 있고
한국 관객의 입맛에 맞는 제목을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담당자들이 오랫 동안 고심해야 한다는 애로사항이
있다. 대신 영화내용의 결정적인 단서나 상징을 뜻하는
원제인 경우는 오히려 그대로 살리는 편이 낫기도 하다.
이런
제목이 흥행에 성공한다?
제목(타이틀)이 중요한
만큼, 영화계에는 영화 제목과 관련된 여러 가지 금기와
권장 사항들이 떠돌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제목 글자 수는
홀수가 좋다거나, 추상적인 제목이나 긴 제목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등, 쉽게 외울 수 있는 제목이나 원제 발음을
살리는 것이 좋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물론 언제나
예외도 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의 경우는 제목이
길면서도 흥행에 성공한 예. 또한<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WHEN A MAN LOVES A WOMAN><귀여운 연인PRETTY
WOMAN>처럼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노래들을 영화제목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이는 영화 애호가와 동시에 음악 애호가들을
모두 끌어 모을 수 있어서 좋고, 아울러 소재의 빈곤에
시달리는 양 분야가 교류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도 여겨진다.
그런가 하면 <델마와 루이스><터너와 후치>처럼
'누구'&'누구' 유형으로 붙여진 제목은 기본적으로
재미있다,는 인식도 있으며 배우나 감독의 유명세에 힘입으려는
제목들도 많다. <뤽베송의 택시><이연걸의 히트맨>등이
그 예
외화가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 새 이름을 부여받기.
이는 영화제목이 곧 흥행과 직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한국형 한국식으로 외국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무조건 원제를 따르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결국 바뀌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식으로,
우리 관객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이미지를
해칠 만큼 전혀 엉뚱한 제목을 달게 되는 일은 피하자는
것이다. 영화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 이름들은 끊임없이
불려지고, 사람들 머리 속에 남아있게 될테니 말이다. 특히
한국 영화의 경우에는 흥행성만을 염두에 두는 태도 때문에
시나리오나 원작 자체와는 거리가 먼, 기상천외한 제목들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이런 것들이 유행처럼 되어 버려서는
안되겠다. 그리고 이제는 영화를 볼 때 제목을, 원제를
한번 더 들여다보고, 음미해보는 습관을 가져보자. 한층
더 그 감동이 깊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테니까.
한국
영화제목들의 비포 앤 애프터(BEFORE AND AFTER)
'돌아서서 떠나라''우리들의
성생활''제주도'란 제목으로 개봉된 한국 영화들이 있다면,
과연 흥행에 성공했을까? 이 세 제목은 순서대로<약속>
<처녀들의 저녁식사> <연풍연가> 대신 극장에
걸릴 뻔(!)한 제목들이었다. 이 얼마나 컨츄리 꼬꼬 같으며
무표정한 이름들인가! 이는 곧 우리 영화에 있어서도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사례다. 물론 결국에는 영화
속 내용이 승패를 좌우하게 되겠지만, 영화로 끌어들이는
첫 과정, 영화에 대한 첫인상은 이처럼 흥미롭고 입맛을
자극하는 맛깔스런 제목들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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