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대작은 100-200만원, 한국판 '유상기자'들 글: 김호일(부산일보 서울주재 문화부 차장) 1999년 10월 01일 고질화된 영화계 촌지비리 중국에 개방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을 때인 지난 97년 1월 ‘중국언론의 치부’를 짐작케 하는 홍콩명보(明報의 스트레이트 기사 하나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중국 공산당 전국 선전부장들은 최근 개최된 회의에서 촌지를 받고 기사를 쓰는 이른바 ‘유상신문’(有償新聞)에 대한 단속을 골자로 한 언론계 정화작업을 결의했다.” 외신을 타고 들어온 이 기사는 당시 중국언론의 현주소를 전해주고 있었는데 더욱 눈길을 끌었던 것은 유상신문에 기생하는 ‘유상기자’(有償記者)를 언급한 대목. “중국의 기업들은 취재차 방문한 기자들에게 300위안에서 심지어 일반 노동자의 한달 임금에 해당하는 500위안을 촌지인 홍바오(紅包)로 돌리고 있는 게 보편화돼 있다.” 기사의 행간까지 해석하면 세계의 중심을 뜻하는 중화(中華)의 대국, 중국언론도 자본주의 방식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촌지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속이 곪을대로 곪은 ‘3 류 언론’으로 전락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씁쓸했다. (영화관계자들에 따르면 대체로 '홍보비'의 10% 가량인 3,000-4,000만원은 '별도비용'으로 이중 상당부분은 촌지 성격을 띤 채 일부 기자들에게 들어간다고 한다. 굳이 2년 여 전의 일, 그것도 중국언론의 치부를 화두로 삼은 것은 우리 영화계에도 ‘한국 판 유상기자’가 엄존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독자들은 간파했을 것이다. 사실 기자는 ‘신문 과 방송’의 원고청탁을 받고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과연 나는 그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문자답을 수없이 했고 “자칫하다간 영화계에서 매장될 수 있다.”는 경고성 조언도 들려왔다. 그러나 기자 개인의 언론계 정화노력과 함께 젊은 영화인들이 “척박한 영화계 현실을 대 변해 달라.”며 전해준 용기있는 격려와 IMF 당시 부도를 맞고 재기를 몸부림치던 한 영화사 사장의 솔직한 고백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 동기가 됐음을 밝히고 싶다. 수급 불균형이 주된 원인 언론과 영화계간 비리구조는 ‘수급 불균형’이 주된 원인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지난해 국내개봉 영화는 한국영화 43편, 외화 244편 등 모두 287편이다. 대부분의 영화가 주말에 개봉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주당 평균 5.5편이 개봉되는 셈이다. 아무리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라 해도 주당 1편 이상의 영화를 보기 힘들다. 한마디로 개 봉되는 영화가 많다. 다시 말해 개봉영화가 적고 반대로 이를 다루는 언론이 많다면 비리가 기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다른 원인은 영화계의 과열경쟁이다. 영화계에선 ‘영화=도박’이란 표현을 서슴없이 쓴 다. 기대수익을 예상하지 않고 수십억원을 쏟아부어 영화를 만든다. 개중에 낭패를 본 제작 업자들은 “도박도 이런 도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는 밴처캐피털 등 모험자본이 영화제작에 참여, 위험을 분산하고 있지만 ‘대박’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게 아직도 영화산업이다. 한국영화의 경우 10억 원을 들인 영화는 10만 명, 20억 원짜리 영화는 20만 명의 관객이 들어야 투자비나 겨우 건 지는 ‘본전치기’를 한다. 따라서 영화계에선 개봉에 앞서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한다. ‘홍보’가 안되면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어도 흥행에 성공할 수 없기에 언론을 상대로 영 화업자들간 과열경쟁이 발생한다. 기자들에게 건네지는 돈이 10~20만원 정도의 ‘기름값’ 수준이 아니라 100만원 단위를 넘는 ‘고액배팅’으로 부풀려 진 것은 바로 ‘과열경쟁의 산물’이다. 또한 일부 언론사의 그릇된 인식은 영화계를 더욱 좀먹게 한다. 영화계의 촌지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한 일부 데스크는 일선기사에게, 일선기자는 영화업자에게 노골적으로 손을 벌린 다는 것. 한 언론사 기자는 “우리 회사의 특수한 환경”이라고 털어놨다. 내부적으로 ‘촌지 상납구조’가 엄존하고 있음을 은연중 시사하고 있다. 어쩌면 비리가 몸에 배어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돈 주고 지면 사는 것 같다" 영상산업의 핵심은 영화고 영화산업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제작과 수입업자다. 그 밑에 배급업자와 극장주가 있다. 약 보름간의 취재 결과 영화계를 떠받드는 두 기둥이 일부 기자들과 밀착, ‘한국판 유상기자’라는 비리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먼저 한국영화. 한편의 영화가 상영되기 위해선 시나리오 단계에서 개봉까지 적어도 1년은 족히 걸린다.제작비용은 편당 15억~20억원이 투자되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터급은 이를 상회한다. 제작비의 20% 가량인 3~4억 원은 ‘홍보비’다. 얼마전까지 신문잡지의 컬러광고가 주종을 이뤘지만 요즘은 TV광고에도 1억 원이상을 쏟아 붙는다. 영화를 만들어 놓고 이 정도의 ‘홍보비’가 없어 개봉을 못하는 영화도 부지기수다. 영화 관계자들은 대체로 ‘홍보비’의 10%가량인 3,000~4,000만원은 ‘별도비용’으로 관리한다 고 입을 모은다. 정확한 통계는 낼 수 없지만 이중 상당부문은 ‘촌지’성격을 띤 채 일부 기자들에게 들어간다는 것. 한 영화 기획자의 말. “한국영화는 기획, 시나리오 공모, 주연 캐스팅, 제작과정, 시사회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홍보가 필요하다.”며 “각 단계마다 기자들에게 ‘초를 쳐야’기사화 되고 영화를 띄울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단계마다 대작은 100~200만원, 그렇지 못한 경우 50~100만원을 건넨 다.”며 “어떤 때는 돈을 주고 지면을 사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영화마다 반드시 촌지 가 건네지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액수가 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외화. 현재 외화수입은 5개 직배사와 개별 수입업자로 양분돼 있다. 직배사의 경우 배급구조가 탄탄하고 외국본사의 회계감사를 받기 때문에 ‘촌지’가 나올 가능성은 적다. 다만 직배사도 외부에 노출이 잘 안되는 것일 뿐 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직배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홍보 담당자가 기자들은 상대했는데 최근에는 사장 등 임원급 이상이 직접 나선다.”며 “(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줄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또한 직배사가 기자들에게 ‘은전’을 베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소위 ‘정킷’이라고 불 리는 해외취재다. 이 역시 특정언론사에 국한돼 있다. 다른 출입처와 달리 영화기자단이 없 는 까닭에 정킷은 직배사 ‘입맛’에 따라 기자들이 ‘엄선’된다. 물론 기자들에게 일비 성격의 ‘거마비’도 건네진다. 이 경우 대개 영화가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화려한 기사로 포장돼 나온다. 그럼에도 기자는 우리 언론계의 열악한 현실과 기자들의 해외취재 경험부족 등을 고려해 볼 때 직배사의 ‘정킷’이 이같은 비리구조에서는 비켜서 있다는 개인적 견해를 갖고 있다. 직배사 이외에 외화수입업자인 경우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할리우드의 B급영화나 유럽 등지로 눈을 돌려 ‘싸구려 영화’를 헐값에 들여온다. 대부분 ‘홍보비’로 큰 돈을 쓰는 모험은 자제한다. 따라서 기자들에게 돌리는 홍보비 성격의 ‘촌지’는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동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역시 ‘장사꾼’이기에 ‘대박’을 노리고 홍보효과가 높은 특정언론사에 ‘촌지’를 건넨다는 게 정설. 취재과정에 만난 한 영화 수입업자의 고백. “지난해 부도를 맞아 도망을 다니다가 최근 유럽에서 영화 한편을 수입, 재기를 노렸다.”면서 “한 영화기자를 만나 10 여 년 옛정을 살려 기사를 부탁했더니 그는 냉정하게 거절했다.”고 말했다.‘촌지’없이는 기사화가 어렵다는 얘기라는 것. 그는 이어 “영화가 잘되면 후사하겠다.”며 “끝내 ‘외상기사’로 밀어 붙여 겨우 기사 가 나가게 됐지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며 혀끝을 찼다. 여기에 웃지 못할 것은 영화계에만 존재하는 이른바 ‘대박사례’. 정치판의 ‘당선사례’ 처럼 영화계에는 관객이 많이 들어 잘 풀린 영화의 경우 이따금 기자들에게 ‘사례’를 하 는데 이 역시 편당 수천만원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영화기사 먹히는 언론사에 ‘특화’ 언론과 영화계의 비리는 은밀하고 고질적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각사 신문 자료철, 시사 주간·월간지, PC통신 등을 샅샅이 뒤져도 이같은 비리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영화계 인사들의 ‘양심있는’ 고백으로 일부가 드러난 ‘한국판 유상기자’의 실 태는 전체 언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줄 뿐만 아니라 언론계 발전을 가로막고 있 다. 따라서 영화계의 비리구조를 발본색원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언론계의 인식전환과 영화계의 정화의지가 중요하다. 현재 영화담당 기자는 일간지 23개사(종합지, 스포츠지, 경제지, 지방지) 34명, 방송 5사 5 명, 주간지 20개사 28명, 월간지 4개사 32명 등이며 방송사 연예오락 프로의 PD나 리포터, 기업체 사보담당 기자까지 포함하면 100명을 조금 넘는다. 한국영화 제작자나 직배사, 수입업자가 영화담당 기자 모두에게 ‘초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촌지’가 건네지는 신문과 방송은 영화기사가 제대로 먹히는 언론사 일부로 ‘특화’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부분의 언론과 기자들은 ‘한국판 유상기자’와 무관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언론사가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언론계 일각에서 기생하는 비리는 얼마든지 척결될 수 있다. 물론 영화계의 자정의지도 필요하다. 영화계 인사들이 영화를 문화상품으로 인식하고 영상 산업에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돼야 한다. 이를 외면한 채 영화계가 영화를 ‘도박’으로 치부하고 오로지 ‘한탕주의’에 빠져있는 한 비리구조의 척결은 요원하다. 다시 말해 ‘한국판 유상기자’가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은 일부 몰지각한 영화업자들이 제공 하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 말미에 만난 한 영화홍보사 관계자는 “얼마전 모 기자가 영화홍보 자료를 서둘러 갖 다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기사가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덕분에 ‘촌지’도 없이 홍보실적 한 건을 올리게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그가 누군지 알고 싶다.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