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과연 아이들에게 보여줄 영화인가 part 2

Imitation of Life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과연 아이들에게 보여줄 영화인가 part 2 :::

양유창 | 2002년 12월 27일
조회 7628

작년 이맘때 나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아이들에게 위험한 영화라고 말한 적 있다. 계급의식과 순혈주의, 비평등의식에 근거한 설정이 아이들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자세한 내용은 이 컬럼 시리즈에서 찾아보시기 바란다.)

그런데 사실 영화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밀리언셀러가 된 책을 그대로 영화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라는 발상 자체, 그리고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현실 자체가 문제다.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유익한 면은 다음 두 가지가 전부다. 3시간 동안 아이들을 조용히 의자에 묶어둘 수 있느냐 없느냐로 인내심을 길러주는 것. 또, 각종 신기한 것과 이국적인 것을 보여준다는 점. 그뿐이다. 이것 뿐이라면 도대체 왜 다들 해리포터에 열광하는가?

위대한 마법사의 아들로 태어나 계부모 아래에서 자란 해리포터는 어쩌면 비운의 주인공일 수 있었을 지 모른다. 현실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자신도 어쩌면 멋진 능력을 가지고 있을 지 모른다는 희망을 심어줄 수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해리포터를 무작정 영웅으로 만들어줄 뿐이다.

1년이 지났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 어떻게 아무 변화도 주지 않고 기존의 폐단을 답습했는지를 보자.

첫째, 해리포터는 스스로 일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른다. 영화의 스케일이 더 커졌고, 특수효과로 눈이 즐겁다는 것은 인정한다. 도비 같은 귀여운 CG 캐릭터의 등장도 반갑다. 하지만, 영화의 큰 줄기마다 해리포터를 구하는 것이 누구인가를 보라. 거미떼의 소굴에서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 비밀의 방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새. 옛날 그리스 희극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비논리적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는 상황을 '데우스 마키나'라 불렀다. 보는 이를 맥빠지게 하는 이 연극의 장치는 시간이 흘러 리얼리즘을 평가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악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왜 해리포터에는 이런 장치가 많은가? 왜 해리포터와 그의 친구들은 스스로 일을 해결하지 못하는가?

둘째, 인종주의는 아직도 구태의연하다. 더이상 등장인물 중에 유색인종이 없다는 불평은 하지 않겠다. 이제 주인공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으니까. 다만 영화는 계속해서 순혈과 잡종 논리로 선과 악을 구별하고 있다. 헤르미온느는 순혈혈통인에게 여전히 죽여야 할 잡종이고, 해리포터는 순혈이 아니어서 고통받는다. 바야흐로 21세기다. 왜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보여주어야 하는가? 많은 서양인들에게는 여러가지 피가 섞여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리쉬 계열에 켈트족의 피가 석여 있고 아버지는 그리스, 엄마는 스웨덴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현재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부 극우파나 네오나찌주의자들에 불과하다.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아직도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의 우상 '해리포터'에 섞여 있어야 하는걸까?

셋째, 학교는 여전히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정말 농담이 아니다. 해리포터를 둘러싼 선악관계에 참여한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 도대체 학기가 시작하고나서 끝날 때까지 다른 아이들이 무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이 다쳐가니 수업을 할 수 없었을까? 그렇다면 그 많은 아이들은 해리포터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무엇을 했단 말인가? 덤블도어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에게 시험을 내지 않고 학기를 끝마치겠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해리포터가 학교를 구했다고 해서 시험을 면제받아야 하는가? 시험 안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면 착한 교장선생님이 되는 것인가?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은 굉장히 공들인 영화다. 장면 하나하나가 계산되어 있고 놀라운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설정에 있어 잘못된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 나의 의도이다.

이 영화에도 미덕은 있다. 바로 '도비'라는 캐릭터다. 주인이 옷을 주면 노예에서 해방되는 도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캐릭터라서 반갑다. 앞으로 계속되기로 예정되어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도비 같은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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