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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최후의 수호자> 40년 전의 설국열차 :::


양유창 | 2014년 05월 03일
조회 2868


1966년. 멜서스의 [인구론]이 출간된 것이 1798년이니 200년 가까이 지났을 때죠. SF 작가 해리 해리슨은 2022년 뉴욕을 배경으로 [좁다! 좁아!](원제는 Make Room! Make Room!)라는 책을 씁니다. 그 책을 1973년 리차드 플레이셔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이 바로 <최후의 수호자>(원제는 Soylent Green)입니다.



인구 4천만 명이 사는 2022년 뉴욕은 자원고갈로 인해 소일렌트사 공장에서 나오는 음식만으로 연명해야 하는 곳입니다. 밤에는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은 건물로 들어가 계단이든 복도든 아무데서나 잠을 잡니다. 폭동이 나면 공권력이 진압하는데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까 사람들을 포크레인으로 퍼서 쓰레기차에 집어 넣습니다.

주인공은 형사 로버트 쏜(찰턴 헤스턴)입니다. 그는 나이 많은 동료 솔로몬 로스(에드워드 G. 로빈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그 역시 몸을 씻는 것은 수건에 물을 묻혀 간신히 해야 하고, 소일렌트사 제품 외의 먹을 것은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남자입니다. TV에서는 소일렌트 옐로우, 소일렌트 레드에 이어 신제품 소일렌트 그린이 출시됐다는 광고가 나오고 있고요.

어느날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피해자는 상류층 남자 윌리암 시몬슨(조셉 코튼)입니다. 쏜은 그의 집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온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시몬슨의 집에는 과일잼, 초콜릿, 위스키를 비롯해 처음 보는 먹을 것들이 넘쳐나고 말로만 듣던 소고기까지 있습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시설이 갖춰진 그의 집에는 항상 여자들이 상주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주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 셜(리 테일러 영)과 하룻밤을 보낸 쏜은 시몬슨의 죽음이 그를 보좌해오던 집사 탭 필딩(척 코너스)과 연계되어 있다고 직감합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오래된 영화이니 가볍게 쓰자면, 필딩이 시몬슨을 죽인 배경에는 소일렌트사가 있었습니다. 그 비밀을 밝혀낸 로스는 소일렌트사의 거대한 음모에 차마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합니다. 자살센터로 가서 인간의 문명이 황폐화되기 전 아름다운 자연의 영상을 담은 이미지들을 보면서 죽어갑니다. 그리고 쏜에게 꼭 진실을 밝히라는 유언을 남기죠.

쏜은 필딩 일당에게 쫓기던 중에 소일렌트사의 공장으로 잠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시위 과정에서 숨진 시체들이 원료가 되어 소일렌트 그린 제품으로 변하는 공정을 목격하게 됩니다. 죽은 자들의 몸으로 만든 식량을 자신이 지금까지 먹어왔다는 진실에 놀란 쏜은 교회로 달려가지만 무더위 속에 넘쳐나는 사람들을 돌보느라 지친 수녀와 신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닥에서 잠들어 있는 교회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쏜은 경찰에 잡혀가면서 외칩니다.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소일렌트 그린은 인간의 몸이다!"



'소일렌트 그린'은 <설국열차>에 등장한 바퀴벌레 양갱의 40년 전 버전입니다. <최후의 수호자>에선 너무 많은 인구 때문에 식량이 고갈됐다면 <설국열차>에선 세상이 얼어붙어서 먹을 것이 없게 됐습니다. 이처럼 두 영화가 미래를 상상한 과정은 정반대입니다만 통찰력은 일맥상통합니다. 세상에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가 있고, 소수의 지배자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면서 피지배계급을 위해 인육으로 만든 식량을 배급합니다. 그러나 <설국열차>가 반란을 꿈꾸는 자들에 의해 전복됐다면, <최후의 수호자>에서 진실을 알게 된 쏜은 홀로 무거운 짐을 감당하기에 벅차 보입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것은 디스토피아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본의 폐혜와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우리는 이미 디스토피아에 와 있는지 모릅니다.

<최후의 수호자>는 찰턴 헤스턴, 에드워드 G. 로빈슨, 조셉 코튼 등 한때 쟁쟁했던 배우들의 나이 든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당시 79세였던 에드워드 G. 로빈슨은 이 영화를 찍는 도중에 암으로 사망해 개봉을 보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자살센터로 가는 모습이 의미심장해 보이더군요. 감독은 <해저 2만리> <강박충동> <도라! 도라! 도라!>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던 리차드 플레이셔입니다. 그는 <베티 붑> <뽀빠이> <슈퍼맨> <걸리버 여행기> 등 1920~40년대 수백 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든 맥스 플레이셔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최후의 수호자>는 리차드 플레이셔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1973년에 상상한 2022년은 지금 보기에는 무척 촌스럽게 보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때나 미래나 별반 달라진 게 없지만, 부자들조차 팩맨 같은 게임(1971년 출시된 '컴퓨터 스페이스')을 대단한 기술인 양 보여주고 있는데 재밌습니다. 인구가 급증한 상황이라 항상 화면이 사람들로 꽉 차 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함을 느끼긴 했습니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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