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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책도둑> 죽음이 너무 바빴던 시대의 휴머니즘 :::


양유창 | 2014년 04월 06일
조회 2702


2005년에 출간된 이후 230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던 호주 출신 작가 마쿠스 주삭의 동명 소설을 2013년에 브라이언 퍼시벌 감독이 영화화한 <책도둑>. 영화는 책의 내용을 담담하게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나쁜 시대를 살았던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죽음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인생의 스포일러는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 뿐인 죽음을 망치게 될 테니까요." 죽음의 나레이션을 맡은 로저 알람은 인자한 목소리로 자신이 가장 바빴던 시대를 회고합니다. 바로 나찌가 점령했던 독일입니다. 그곳에 '히멜 슈트라세(Himmel Strasse)'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국의 길'로 번역되는 이곳에 리젤 메밍게르(소피 넬리스)라는 10살 난 소녀가 도착해 새로운 양부모를 만납니다. 새아빠 한스 슈타이너(제프리 러시)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고, 억척스러워 보이는 새엄마 로사(에밀리 왓슨)는 첫인상은 무섭지만 지낼수록 속깊은 정이 있습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예쁜 신부 역할을 했던 에밀리 왓슨이 이렇게 늙었다니요!)

리젤은 자신을 버린 친엄마를 떠올리지만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인 엄마가 자신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그녀의 생사를 알 길은 없습니다. 리젤의 이웃에는 루디라는 소년이 살고 있습니다. 육상선수가 꿈인 루디는 리젤을 따라다니면서 단짝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이웃이 있죠. 바로 유대인 막스 반덴부르크(벤 슈네처)입니다. 한스와의 인연으로 지하실에 숨어 살게 된 그는 리젤과 영혼의 대화를 나눕니다.

이렇게 리젤이 이주해 살게 된 마을에는 모두들 착한 사람들만 있습니다. 가끔 루디의 육상 경쟁자인 프란츠가 리젤과 루디를 괴롭히긴 하지만 그렇게 잘난 척 하는 아이는 어느 학교에나 있죠. 그런데 착한 사람들만으로도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정답은 '그렇다' 입니다.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악한 시대가 악역입니다.



글을 읽을 줄 몰라 학교에서 놀림받던 리젤은 새아빠 한스의 도움으로 글자를 익힙니다. 두 사람이 처음 읽은 책은 리젤이 죽은 동생으로부터 받은 책 [묘지관리인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의미심장하다고요? 네, 책 제목이 복선입니다. 영화의 나레이터가 이미 '죽음' 그 자체였다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며칠 후 마을에서 열린 나찌 주최의 책 화형식에서 리젤은 책 한 권을 훔쳐오는데 그 책의 제목은 H.G.웰스의 [투명인간]입니다. 모두가 투명인간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징적인 책 선정입니다.

집 안에 숨어 있느라 몸이 쇠약해진 막스가 사경을 헤맬 때 리젤은 옆에서 책을 읽어줍니다. 그 책들은 자신을 아껴준 시장 부인의 서재에서 잠시 훔쳐온 것들입니다. 그래서 루디는 리젤을 '책도둑'이라고 부릅니다. 막스는 답례로 리젤에게 일기장을 선물하며 그곳에 자신만의 글을 적어보라고 말합니다. 리젤은 막스의 눈과 귀와 코가 되어 보고 듣고 냄새 맡은 것들을 적어나갑니다. 영상이 글자가 되고, 그 글자가 다시 영상이 되는 순간입니다만 아쉽게도 영화에서 이 장면의 영상미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책도둑>은 소재나 배경 면에서 2008년 작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와 비교해 볼 만합니다. 둘 다 나찌 시대 책을 통한 남녀의 교감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책이 계층과 섹스를 뜻했다면 <책도둑>에서 책은 삶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영화는 엔딩에 이르러 나레이터가 오프닝에서 했던 멘트를 상기시킵니다. 이제 그들에게 때가 찾아왔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예외 없이 누구나 죽는다는 것 말입니다. 영화가 여자아이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을 감안하면 죽음이 화자로 등장하는 것은 생소할 뿐만 아니라 참 이질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인생은 아름다워>가 아이의 시점으로 인간의 잔혹함을 묘사했던 것을 떠올리면 그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서 막스가 지적하는 것처럼 휴머니즘이 사라졌던 시대였으니까요. 아이의 순수한 눈동자마저 없었다면 너무 끔찍한 세상이었겠지요.

리젤을 연기한 소피 넬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놀랍습니다. 금발의 커다란 눈을 가졌으면서도 용감하고 당찬 모습입니다. 캐나다에서 2000년에 태어나 올해 15살인 그녀는 2011년에 <라자르 선생님>으로 데뷔해 <책도둑>이 세 번째 영화입니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에 성장하는 모습까지 보이는데 미래가 더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독일 합작인 이 영화는 독일이 배경임에도 영어대사로 진행되는데 <책 읽어주는 남자> 때도 그랬지만 상당히 어색하게 들리긴 합니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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