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itation of Life | | | | |
 정성일 이야기 :::
양유창 | 2001년 05월 12일
조회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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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아이디가 '정성일'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만나기 전까지는 엄청난 예찬론자거나 혹은 비판론자거나 둘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디를 그렇게 지은 연유를 물어보니 당황스러워했다. 대답은 하나였다. "그냥."
그냥 아이디를 '정성일'로 지을 수 있는 녀석이라면 능히 그냥 친구도 될 수 있었기에 우린 그냥 친구를 하기로 했다. 녀석을 점점 알아갈수록 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정성일'에는 별 관심도 없는 줄 알았던 녀석이 대화방이나 게시판 등에서 '정성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아주 재미있기도 했다. '정성일'의 글을 인용하거나 베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정성일'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었다. 글의 끝에는 꼭 이렇게 썼다.
"- 정성일"
어떤 사람들은 정말 '정성일'이 저 글을 썼구나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녀석은 능청을 부렸다. 난 정말 궁금했다. 왜 그러는걸까. 왜 그렇게 '정성일' 행세를 하는걸까. 그래서 또 물어봤다. 하지만 녀석의 답은 여전히 비슷했다. 마치 화성 사막에 앉아서 켄타우르스의 모래바람을 기다리는 목소리로, "재미있잖아!" 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녀석과 더이상 친구를 할 수는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 녀석은 제멋대로이면서도 제멋대로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너무 자기 세계에 빠져사는 녀석이었다. 한마디로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 힘든 타입의 녀석이었다고 할까.
오늘 '한겨레'에서 진짜 '정성일'이 쓴 컬럼을 읽으면서 옛날의 그 가짜 '정성일'이 떠올랐다. 그 '정성일' 녀석은 아직도 '정성일'처럼 말하고 영화를 이야기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끝에 '정성일'이라는 사인을 남겨대고 있을까.
사실 필자에게 '정성일'은 영화를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어준 최초의 평론가였다. 영화평론가가 직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최초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그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필자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정은임의 영화음악'이라는 MBC 라디오에 고정출연해서 영화소개를 해주었는데,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라도 너무나 보고싶어지는 것이었다. 새벽 1시에 방송하던 그 프로그램을 녹음까지해서 다음날 수업시간에 듣고 있던 필자는 덕분에 영화 좋아하던 몇몇 친구들에게 아는 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 따위 흥미있게 들어주는 녀석은 당시 아무도 없었고, 화제는 다시 시시한 이야기들로 돌아가곤 했지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목소리로 만나고, [KINO]에서 글로 만나고, 첫번째 전주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만났다. 쓰는 글을 보면 한 5개국어쯤은 하는 것 같고, 프랑스 현대철학을 원서로 다 읽은 것 같으며, 영화이론서적을 적어도 영문본, 프랑스어본, 독일어본, 일본어본, 그리고 한국어본으로 각각 5번은 읽은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더구나 집에는 클래식 CD가 즐비하고, 같은 바흐의 '마태수난곡'이라도 좋아하는 연주와 좋아하지 않는 연주를 구분해서 정리해두고 있을 것 같으며, 12시간짜리 흑백 다큐멘터리 독일 영화를 흰색 프랑스어 자막으로 보면서 감동하고 눈물 흘리면서 최고걸작이라고 치켜세울 때는 중간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꼼짝달싹 하지 않을 것만 같다. 독일문화원에서 영화를 볼 때에는 영화를 보면서 많이 잤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가 방송에서 한 이야기중 이 부분이 제일 믿기 힘들었다. 와, 정성일도 영화 보면서 자는구나.
정성일이 떠난 지 몇 달이 지난 [KINO]는 더이상 발간되지 않고 있지만, 발간될 때에도 정성일이 떠난 [KINO]는 훨씬 읽기 쉬운 잡지였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그는 정말 특이한 사람이다. 한국사람 중에 정말 특이하다. 만약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었다면,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정성일은 정말 독특하다.
그는 최근 '한겨레'에 격주간으로 중국영화감독에 대한 글을 쓴다. 주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쓰는데 역시 글을 읽다보면 굳이 그의 이름이 없어도 그가 쓴 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을 가지고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글에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아주 추상적인 애정이 감성적으로 넘쳐난다. 그의 글을 다 읽고 나면 세상에는 마치 영화만 있어도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그런 종류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의 중국영화감독 컬럼에는 후 샤오시엔과 왕가위가 고정적으로 등장한다. 정성일은 그 둘을 마치 무슨 역사적인 혁명가나 되는 것처럼 떠받들면서 그들이 한 말들을 어록처럼 조심스럽게 활자로 옮긴다. 그리고는 그것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설득하려 한다. 처음에는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해?" 하다가도 정성일의 순수한 설득력을 끝까지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위대한 왕가위를 상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훌륭한 설득자로서, 영화에 대한 무한한 어린아이면서, 말 한 마디에 감동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몽상가인 정성일은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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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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