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아하고 감상적인 한국정치 :::
양유창 | 2001년 01월 21일
조회 7289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중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게 있다. 한때 난 이 소설을 너무 좋아해서 소설 주인공처럼 이 책은 정말 "2사 만루에 홈슬라이딩을 준비하고 있는 주자가 가슴 속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난 신문을 자주 읽는 편이다. 정독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본다. 주로 보는 신문은 한겨레, 조선, 동아, 전자신문이다. 그날 신문을 못봐서 밀리면 다음날, 또 밀리면 다음주에라도 몰아서 보는 편이니 한때 내 가방은 신문으로 가득찼던 적도 있었다.
신문 얘기를 꺼낸건 잠시 짬을 내서 요즘 얘기되고 있는 언론개혁, 그리고 한국정치와 아로요/부시 신임 대통령 취임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다. 영화 사이트인 이곳에 맞을 만한 얘기는 아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다 영화같은 이야기이니 어울리지 않을 이유 또한 없겠다 싶다.
 | | 필리핀 아로요 대통령 |
필리핀에 배우출신의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서민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는 보도를 접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사람이 뇌물수수로 물러나고 부통령이 새 대통령이 되었단다. 물론 스스로 물러난건 아니고 국민과 군대의 전폭적인 투쟁이 그를 대통령직으로부터 쫓겨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일면으로 보면 '와, 과연!' 하면서 정말 피플 파워의 승리군. 대중의 힘은 대단해 라고 감탄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뇌물을 받았고 이에 대해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받아 법적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적법하게 물러나지 못한 것을 볼 땐 역시 필리핀이란 나라도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나라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일이 국민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 혁명이라는 건 기쁜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이든 권력자든 누구든 힘을 가진 자가 힘으로 누군가를 누를 수 있다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치의 후진성 면에서 보면 한국 역시 필리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내 생각에 한국은 아직 과두정치 시기라고 본다. 흔히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우는, 정치발전의 4단계가 있는데, '왕정'-'과두정'-'귀족정'-'민주정'이 그것이다.
과거 로마시대의 정치발전이 위와 같은 식으로 이루어졌고, 유럽의 근대국가의 출현 역시 모두 저런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다. 귀족정과 민주정 사이에는 보통 시민혁명이 한 번 일어나게 마련인데, 프랑스대혁명이나 미국의 남북전쟁 등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한국사회에 있어 왕정은 과거로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전두환 정권까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권력자에 의해 모든 의사가 좌우되는 사회. 독재국가 시대를 일컫는다. 1987년 6월 항쟁으로부터 이제 막 독재국가를 빠져나온 우리는 과두정의 시기에 살고 있고, 민주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두 단계나 건너가야 한다.
현재 한국에는 4명의 정치지도자(?)가 있어 국가를 흔들어대고 있다. 과두정이란 권력의 소수분립현상으로 여기에서는 이 4명의 권력자를 말하는데, 무협지 식으로 소개하자면, '호남파의 기둥서방 김대중', '신영남파의 허수아비 이회창', '충청파의 보스 김종필', '구영남파의 성격파탄자 김영삼'이 그들이다. 이 4명에 의해 한국사회는 갈라져 움직이고 있으며, 다른 모든 정치인이나 경제인, 그밖에 힘 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마치 조직폭력배처럼 네 명의 하수인으로 서열에 따른 계보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과두정 다음으로 오게 되는 귀족정치는 다른 말로 '금권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한 마디로 '경제인에 의한 정치'를 말한다. 말하자면 내 생각에 언젠가 경제인이 대권을 잡는 날, 귀족정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우선, 수많은 귀족들이 권력을 나눠갖는다는 것이다. 즉, 지금처럼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세분화된 권력자들이 각각 분수에 맞게 권력을 나눠갖는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치 역시 경제처럼 어떤 시스템 하에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귀족정에서는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상대적으로 덜 가진 귀족들이 뭉쳐서 쿠데타를 꾀할 확률도 있다. 귀족정 말기에는 이런 현상이 극에 달하고 다시 아노미 현상이 올 것이다. 여기에서 한 번 국민이 들고 일어나주면 이제 좀더 민주적인 제도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정치가 오기 전까지 과두정 시대의 우리들은 제도를 잘 손질해서 그 바탕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어차피 우리는 후진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고 죽으나 사나 정치가 그 나라의 국민성을 반영한다는 영국 속담 말마따나 우리 국민 역시 후진 국민들이다. 이를 해결할 만한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보스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하나둘 분산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보스가 직접할 수 없는 방법이다. 아래에서 신선한 세력들이 뭉쳐서 그 권한을 빼앗아와야 한다. 그래서 1인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우리 국민은 툭하면 강력한 리더쉽을 이야기하는데 정치는 절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다수결에 의한 다수정치와 소수의견 존중, 이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행발전과 생산적 복지" 김대중 정부가 줄곧 하는 말이지만, 사실 누구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인 보스 정치의 산실인 김대중이 아무리 발로 뛰어봤자 민주정치를 할 수 없다. 다른 3인의 보스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힘이 너무 세서 정작 정치에서 중요한 3권 분립 역시 실현되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의 한국사회다. 즉, 입법부나 사법부에 비해 행정부의 힘이 너무 크기 때문에 국회나 법원은 늘 정부의 눈치만 본다. 검찰중립 검찰중립 하지만 검찰총장의 인사권자가 대통령인데 뭐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정치보다 힘이 약해서 그렇지 경제계나 언론계 역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가족기업, 족벌언론 등이 대한민국 10대 그룹과 판매량 3위 이내의 언론사를 독식하고 있다. 형태는 모두 주식회사지만 대주주와 그 가족들이 그룹 운영의 전권을 갖고 경영권도 행사하는 회사들 - 아, 사실 이런 얘기는 신물난다.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영화계는 그래도 민주적인 편이다. 여성인구의 취업비율도 높고 의사결정 방법도 상향식이다. 물론 일부 회사들은 카리스마를 가진 개인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지만 대개 영화사들은 선진국형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영화판 자체가 다른 분야에 비해 작다보니 상대적으로 민주적 문화를 흡수할 여력이 많았고 또한 현재 영화계의 인사들이 대개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다보니 이념적으로 통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너도나도 영화 일 하겠다는 시기에 좋은 인재를 뽑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렇게 보자면 한국사회에서 영화계 만큼 장래가 밝은 곳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아니, 취임 전날, 모든 신문들은 대서특필하기를 미국이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국무장관 내정자인 콜린 파웰의 연설문을 인용해서 보도한 것인데,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콜린 파웰이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며 국내의 모든 일간지들이 오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는 타이틀의 본문을 읽어보면 정작 내용은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업적을 존중하고 이를 계승할 것"이라는 내용이 전부다. 전면 재검토가 아니라 수용계승인 것이다. 물론 연설문에는 김정일이 재래식 무기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언급한 내용도 있지만 이건 으레적인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대체 국내 언론이 왜 저런 식으로 타이틀을 뽑는지 이해가 안된다.
부시 행정부는 강한 군사력을 원하기 때문에 대북정책도 바뀔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에 대비해야 한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정작 미국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국내에서 추측해서 마음대로 기사를 내보낼까? 그렇게 할 경우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속내를 다 드러낸 셈이고 이것은 명백히 국익에 손해가 될 거라는 점은 그놈의 언론사 편집국장들이 더 잘 알고 있을텐데.
오늘은 좀 우아하고 감상적으로 한국정치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한숨만 나오는 것 같다. 처음에 언급한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책 주인공은 사물의 이름을 아주 재미있게 부르는 습관이 있다. 가령 고양이를 나비나 메리 뭐 이런 식으로 재미 없게 부르는 게 아니라 '365일의 반찬백과' 혹은 '다자이 오사무 주간'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짓는다. 나도 내가 들고 다니는 MD 워크맨에 새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돌아온 스테인보이 전면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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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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