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출> 홍상수 이후 최대 모텔시네마 :::
양유창 | 2005년 09월 07일
조회 11825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배용준에 대한 관심을 빼면 이 영화는 지루하게 1시간 45분을 참아내야하는 영화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와 같은 허진호 영화의 아련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관객들의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영화는 구태의연한 감정의 편린들만을 스크린에 흩뿌릴 뿐이다.
홍상수 이후 최대 모텔시네마
모텔에서 시작해서 모텔로 끝난다. 이 영화의 배경은 강원도 삼척이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라는 단어에 혹여 설렘을 갖고 있는 관객들은 영화의 1/3 정도가 지나면 아마도 기대를 접어야 할 것이다. 설악의 절경이나 암자의 풍경소리는 없고 화면을 채우는 것은 인공적인 느낌의 시멘트 뿐이다. <봄날은 간다>의 한적한 기차역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의 푸근한 사진관은 무미건조한 모텔과 칙칙한 병원으로 변해 있다.
영화는 대부분을 모텔에 할애한다. 인수(배용준분)와 서영(손예진분)의 배우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 바로 맞은편에 있는 모텔에서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그 모텔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이 "우리 뭐할까요?"라고 물으면서 찾는 곳은 바닷가 근처의 다른 호텔이다. 아마도 홍상수 영화 이후 가장 많은 모텔이 등장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배용준에서 손예진으로
 배용준이 아마도 영화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미디어의 관심이 배용준에 쏠려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아니면 허진호의 내공이 다 소진된 탓인지, <외출>은 <겨울연가>의 준상을 변주한 배용준의 매력을 제외하면 그다지 마음을 끄는 장면이 없다.
배용준의 표정, 배용준의 언어, 배용준의 근육, 그리고 배용준의 침묵이 영화를 지배한다. 하지만 영화 초반 배용준에 쏠려있던 관심이 조금씩 누그러들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손예진에 눈길이 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커리어에서 이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녀의 앳된 외모는 사실 유부녀 역할에 잘 어울리지 않지만, 그녀의 차분함은 몸에 눈뜨는 정숙한 주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울먹이고 슬픈 표정이 이 영화에서 그녀가 연기하는 대부분이지만 어떤 때에 그 연기는 배용준보다도 더 빛난다.
손예진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상반신이 거의 드러나는 노출 연기를 했다. 솔직히 그 노출이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녀는 카메라를 피하지 않았고 이것은 어쩌면 지금껏 그녀가 쌓아온 신비롭고 청순한 소녀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것이기에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들이 결국 <외출>에서 손예진을 배용준보다 돋보이게 하고 있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영이 카페에 앉아 창문 사이로 인수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배용준에서 손예진으로의 시점 이동과 비중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허진호 영화의 심은하나 이영애가 그랬듯이 손예진이 상대 남자배우보다 더 적극적이며, 한석규나 유지태가 그랬듯이 배용준은 속으로 감정을 삭히는 타입이다. 하지만 한석규나 유지태와 달리 배용준의 외모나 연기력은 허진호표 소심한 남자 이미지를 표현하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동안 배용준의 이미지는 뭔가 비밀을 간직한듯한 신비로운 남자였지 우유부단하게 갈등하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4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온다?
 겨울을 좋아하는 남자와 봄을 좋아하는 여자. 그래서 4월에 눈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 구태의연 시네마의 결정적인 장면은 크리스마스 장면을 넣지 않고도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을 상징적으로 붙여놓은 감독의 신선함의 빛을 바래는 설정이다. 그만큼 <외출>은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단순한 대사들로 가득 차 있다.
그저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사건이 너무 적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하고 밋밋하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니 그들의 사랑이 전달될 리 만무하다. 결정적으로 공허함 속의 울림이 없다. 너무 기대치를 높게 잡았던 탓일까.
게다가 <외출>은 오리지널리티도 부족하다. 몇몇 장면은 허진호 감독의 전작에서 그대로 따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유사하다. 한강변에서 서영과 인수가 달리기를 하는 장면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와 한석규가 운동장을 도는 장면과 흡사하고, 병원 의자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은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와 유지태가 라면 먹는 장면을 따왔다. 또, 서영이 카페에 앉아 인수를 창문 사이로 바라보는 장면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사진관 창문 사이로 심은하를 바라보던 한석규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까지가 허진호 감독의 한계인걸까? 아시아의 스타 배용준에게 이 영화는 득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이 될 것인가? 이 영화가 거둔 수확은 나이보다 성숙해보이는 손예진이라는 연기자 뿐이다.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왜 배용준이 시종일관 우울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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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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