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전쟁> 우주도 없고 전쟁도 아닌 :::
양유창 | 2005년 07월 07일
조회 8211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 헐리우드를 주름잡는 두 스타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이어 다시한번 의기투합한 영화. 개봉 첫 주에 이미 엄청난 흥행 스코어를 예약한 영화. 드디어 뚜껑이 열렸습니다. 과연 그 모습은 어떨까요?
이 영화의 모태가 1938년 오손 웰즈의 유명한 RKO 라디오 시리즈였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라디오가 귀했던 시절, 오손 웰즈가 "외계인이 침략했다. 다들 대피하라!"라고 소리쳤더니 이것을 실제 상황인줄 알고 100만명이 정말로 대피했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로 더욱 유명한 라디오극이죠.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도 오손 웰즈의 목소리 비슷한 분위기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지구의 정복자인줄 알고 있지만 아주 멀리서 현미경처럼 인간들을 지켜보며 탐구하던 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이제 지구를 정복하려 한다."
하지만, <우주전쟁>은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우주'도 없고 '전쟁'도 아닙니다. <투모로우>처럼 일종의 재난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다만 그 공포의 대상이 이상기온이 아니라 지구 깊숙한 곳에서 떠오른 독특한 생명체라는 것이 다를 뿐이죠. 혹시나 톰 크루즈가 멋진 비행사가 되어 외계인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차라리 집에서 DVD로 <탑 건>을 다시 보는 편이 나을 겁니다.
영화는 평범한 소시민 톰 크루즈의 일상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이혼한 뒤 아들과 딸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자식들에게 너무 소홀한 가장입니다. 어느날 '그들'이 지구를 침공하고 이들의 무참한 살육을 목격한 톰 크루즈는 아들 딸을 데리고 마을을 탈출합니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에 '그들'의 침략이 시작되고 있었기에 이들은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한편의 거대한 재난영화로서 <우주전쟁>은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 볼거리가 풍성하기 때문이죠.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는 광경이나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행렬은 블록버스터로서 스펙터클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살육기계인 트라이포드의 무자비함이나 피로 물든 들판은 스필버그 영화치고는 굉장히 어두워진 부분이지만, 그 자체로 놓고 보면 마치 하늘에서 '혈의 누'가 내린 것처럼 인상적입니다.
영화는 크게 대탈출이 시작되는 전반부와 지하에 숨어 반격을 모색하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가 힘이 넘치고 스피디하다면 후반부에서는 좁은 공간에서의 서스펜스가 극한에 이릅니다. 이것은 스필버그 영화가 지금까지 늘 해왔던 포맷과 비슷한데요. <쥬라기 공원>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을 떠올려보세요. 전반부에 온갖 볼거리를 다 보여주고, 중반에는 공룡이나 첩보용 생명체 등이 주인공을 잡으려고 좁은 공간에서 숨바꼭질을 벌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가족간의 갈등이 해소되며 끝을 맺죠.
80년대 스필버그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처럼 경쾌한 어드벤처와 [E.T] 같은 휴머니즘으로 인기를 끌었다면 90년대 <쉰들러 리스트> 이후 스필버그 영화는 확실히 서스펜스나 어두운 드라마에 더 기대고 있습니다. 그중 <우주전쟁>은 아마 지금까지 스필버그 영화 중 가장 어두운 영화로 기억될 것 같군요.
[시카고 선 타임즈]의 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말한 것처럼 <우주전쟁>은 상당히 클래시컬한 영화입니다. 그것도 좋은 의미의 클래식 보다는 상당히 진부하다는 뜻의 클래식이 더 어울립니다. 스펙터클은 충분하지만 상상력은 결핍되어 있어 1938년에 오손 웰즈가 목소리로 실감나게 묘사한 '오징어스러운' 괴물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는 그냥 삼각대처럼 뻣뻣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또 앞서 언급했다시피 피난가는 장면은 기존 재난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고 또 지하에서 팀 로빈스를 만난 이후부터의 전개는 차라리 그냥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눈 망막 사진 찍는 괴물 장면을 틀어놓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과연 용납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서 판가름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언급도 없던 괴물의 약점이 어이없게 드러나고 반전의 발판을 마련하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원작을 읽거나 들었던 관객 조차도 어이없어할 설정입니다. 군대를 가겠다고 발버둥친 아들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뜬금없이 나타나 아버지를 부둥켜안으며 끝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죠. 혹시 뭔가 삭제된 장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두 거물이 의기투합한 대작이 이렇게 허술할 수 있을까요?
P.S) 스틸사진을 찾아보니 전부 저렇게 놀라고 쫓기고 도망가는 장면 밖에 없네요. 어디에도 트라이포드 괴물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 개봉 전까지 전세계 언론에 리뷰를 쓰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는 제작사 드림웍스의 호기심 마케팅 결정판을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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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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