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포인트> 무섭고도 씁쓸한 :::
양유창 | 2004년 08월 13일
조회 7803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알겁니다. 부대마다 하나씩 귀신 얘기가 있다는 것을요. 특히 훈련소나 자대배치 첫날 선임병들이 군기 잡는다고 귀신 얘기를 꺼내곤 합니다. 대부분 그 부대에서 자살한 병사가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는 얘기지요. 그만큼 군대에는 억울하게 죽은 병사의 원혼들이 많이 떠돌고 있다는 말일까요?
평화시의 군대에서도 이모양인데 전쟁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아마도 병사들은 옆에서 죽어가는 전우들의 시체를 볼 때마다 두려움에 벌벌 떨어서 없는 귀신이라도 만들어낼 겁니다. 특히 민간인과 군인을 분간하기 힘들고 또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미로같은 정글이 전쟁의 무대였던 베트남에서 군인들은 겁에 질리거나 혹은 아주 미쳐버려 전쟁 기계가 되었을 겁니다. <알포인트>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군인들의 두려움을 극한까지 표현한 영화입니다.
1972년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을 때 최태인 중위(감우성)는 6개월전 실종된 병사 18명의 생사를 알아내기 위해 8명의 대원을 이끌고 군사지역명 '로미오 포인트'로 들어가게 됩니다. 'R-Point'라고도 불리는 이 용어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따온 말로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몰래 접근한 것을 빗댄 군사용어라죠.
어쨌든 안개에 둘러싸여 있고 항상 습한 그곳. '손에 피묻힌 자 돌아갈 수 없다'라고 써 있는 비석을 넘어서 이들은 폐허가된 프랑스식 대저택을 발견하게 되는데, 에드가 앨런 포의 책 속에 등장하는 낡은 저택을 연상시키는 그곳은 음침하고 기분 나쁜 곳입니다. 9명의 수색대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저택 안에 여장을 풀고 수색을 시작합니다.
영화의 자막은 '알포인트 1일차' 이런 식으로 이들이 이곳에서 겪는 5일간의 여정을 추적합니다. 첫날밤 미군들이 나타나 "이곳에서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다"며 4일 후에 당신들이 이곳에 남아 있는지 내기를 걸겠다고 말하며 사라집니다. 그리곤 하나둘씩 대원들이 누군가에 의해 죽어가기 시작하는데, 범인을 알 수 없는 잇따른 죽음은 병사들의 공포를 극대화시키고 이제 이들의 관심은 더이상 임무수행이 아니라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애초에 <링>을 만들었던 김동빈 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중도하차하고 시나리오 작가인 공수창이 직접 감독까지 맡았습니다. 공수창은 안정효의 <하얀전쟁>을 각색하며 이미 베트남전을 연구한 경험이 있기에 아마도 빈 공석에 공수창 외에 다른 대안을 물색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비록 대타로 감독 데뷔하기는 했지만 데뷔작으로 아주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심리적인 공포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적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병사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결국 그 두려움이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폭발합니다. 병사들을 통제하던 이성적인 카리스마(감우성)와 무자비한 카리스마(손병호)의 대립에서 한 축이 무너지면서 이 둘을 따르던 병사들은 이제 누가 적이고 또 누구를 죽여야하는지 알 수 없는 착란에 빠집니다. 가장 이성적인 캐릭터였던 감우성의 마지막은 단연 압권이지요.
그동안 한국 공포영화의 반복된 소재였던 '여고'에서 탈피하여 베트남 전쟁을 공포영화의 무대로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장르를 공포로 한정한 탓에 큰 스펙터클 없이도 베트남이라는 공간 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상영시간 내내 등장하는 무전신호의 지지직거리는 음향효과는 탁월하고, 9명의 배우들 (혹은 10명?) 연기도 좋습니다. 등장인물이 비교적 많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는데 이것은 시나리오의 힘이겠죠.
<알포인트>는 잘 만들어진 영화이고 또 이라크 전쟁으로 시끄러운 요즘에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이기도 합니다. <지옥의 묵시록>을 필두로 베트남전을 비판하는 영화가 쏟아졌던 미국의 70,80년대에 비하면 지금 <알포인트>는 한편으로 너무 낡은 소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까지 한국이 베트남에 정식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끊임없이 만들어져야 하는 소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R-Point 지역과 그 지역의 폐허가 된 프랑스식 저택은 공포의 무대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슬픈 영혼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영화는 무서우면서 한편으로는 억울한 전쟁에 휩쓸린 한국 청년들과 베트남인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련해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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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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