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츄럴 시티> 2080년의 슬픈 생명체 :::
만족스러우나 감정의 과잉은 아쉽다
양유창 | 2003년 09월 21일
조회 7842
<내츄럴 시티>의 줄거리는 간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쉽게 요약되지 않는다. 안드로이드의 애칭인 '인형'이라는 단어의 유래나 뇌세포 DNA를 통해 이루어지는 '영혼더빙', 강남과 강북이 분리된 메가라인 시티 등 깊게 들어가려고 마음 먹으면 끝 없이 이어져야 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인간과 인형 사이의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만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 역시 그 쪽으로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근사한 포장지에 둘러싸인 시한부 러브 스토리.
민병천 감독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데뷔작 <유령>을 통해 한국영화에 없던 장르를 추가시킨데 이어 이번에도 새로운 비주얼을 선보였다. 9월 첫째주에 기자시사회를 가지면서 120분 분량의 영화를 처음 공개했지만 이후 10여분을 들어내며 영화를 다시 편집하고 있다. 영화가 개봉하는 9월 19일까지 계속 작업할 것이라고 하니 필자가 지금 본 영화와 개봉 후 공개될 영화가 조금 다를 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한국 SF 영화들은 그 결과가 암담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예스터데이>,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원더풀 데이즈> 등의 막대한 제작비는 고스란히 회계 손실로 기록되었다. 비주얼은 그럴 듯했지만 이야기가 서투르다는 것이 실패 원인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직 뚜껑도 열기 전이지만 <내츄럴 시티>가 무척 걱정된다. 수 년 동안 공들여 만든 이 영화마저 실패한다면 더이상 한국에서 대형 영화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단순한 애국심 만으로 상업영화를 봐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일단 다른 한국 SF 영화에 비해 <내츄럴 시티>의 전략은 괜찮은 편이다. 무엇보다 러브 스토리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사회의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여주다가도 어느새 다시 러브 스토리로 회귀하는 줄거리는 관객이 영화의 전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구심점을 제공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나 <예스터데이>가 미래 사회에 너무 많은 메타포를 주입함으로써 지독히 철학적인 영화가 되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내츄럴 시티>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포기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내츄럴 시티>가 철학적으로 빈곤한 영화는 아니다.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에서 보았던 익숙한 소재와 주제가 단순한 모방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훌륭하게 변주되고 있다. 즉,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안드로이드'라는 <블레이드 러너>의 테마는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안드로이드'로 변형되었으며, '광대한 네트에서 서로를 복제하는 인형'이라는 <공각기동대>의 테마는 '인형으로 스스로를 복제한 인간 과학자'로 바뀌었는데, 이 새로운 설정을 씨줄과 날줄로 얽은 재능 만으로도 충분히 오리지널리티가 느껴진다.
이처럼 전반적인 설정이 깔끔한 영화 <내츄럴 시티>는 그러나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인 러브 스토리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게 보인다는 것이다. 경찰인 R(유지태)과 노마(윤찬(A)의 우정은 고전적인 스타일로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반해 R과 클럽 댄서 리아(서린(A))의 사랑은 감정 과잉과 지나친 비약으로 인해 가슴까지 잘 와닿지 않는다. R이 왜 리아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리아는 탄생 후 어떤 과정을 거치며 살아왔는지 등을 알 수 없기에 그들이 내뱉는 감성적인 대사들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단순히 형사영화로만 보자면 <내츄럴 시티>는 뻔한 영화다. 경찰에서 파면당한 R이 티격태격하던 옛 친구와 한 편이 되어 공동의 적을 물리친다는 내용은 거의 모든 경찰 버디 영화에서 교과서처럼 쓰인다고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이곳은 미래사회이기에 미래형 범죄와 미래형 악당이 이들의 상대라는 것. 전투용 안드로이드인 싸이퍼(정두홍)에 영혼을 더빙한 과학자(정은표)가 바로 그 상대인데, 화려한 무술은 공들여 작업한 CG와 어울려 괜찮은 액션 시퀀스를 만들어낸다. 물론 요즘 만들어지는 많은 무술 장면이 아직까지 <매트릭스>가 가했던 문화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그리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70억을 들인 비주얼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훌륭하지만 서울의 미래 모습을 기대했던 이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서기 2080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메가라인'이라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는데 이는 서울이 평안도와 경기도 일부와 합쳐져 새롭게 태어난 도시이다. 이곳이 서울이었음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상징인 이순신 동상은 강북이 폐허가 되고 강남만이 신세계가 되었음을 직설화법으로 보여주지만 단지 그뿐이다. 영화는 대부분 강북의 폐허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에 두 세계의 비교를 통해 나올 수 있었을 새로운 이야기는 단지 관객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어렴풋이 보이는 미래도시의 조망도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영화는 전개된다. '무요가'라 불리는 우주선은 기억과 추억을 삭제하고 생명체를 머나먼 곳으로 실어 나르는데, 영화는 처음과 끝을 이 무요가 정류장에서 시작하고 마감한다. 민병천 감독의 '내츄럴 시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확장시킨 공간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자연'스럽다. 새로운 생명체가 만들어지지만 또다시 종차별이 자행되는 곳, 지역간의 불균형이 사회를 분리하는 곳, 자신을 스스로 안전하게 보호해야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판치는 곳이라는 점에서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은 21세기말. 아마도 그곳 생명체들 역시 지금 이땅에서 생을 포기하려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쁜 기억과 추억을 거대한 우주선에 맡기고 떠나버리고 싶을 것이다. 이재진의 감상적인 음악은 R과 리아의 사랑보다도 오히려 2080년의 슬픈 생명체에게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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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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