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갱스 오브 뉴욕> 스콜세지의 공황시대 :::
양유창 | 2003년 03월 01일
조회 8715
마틴 스콜세지라는 이름은 어릴적 숭배의 대상이었다. <비열한 거리>를 인생 최고의 영화로 꼽는 친구가 있어 이 감독을 알게 되었는데, LD수집가였던 그 친구의 집에서 하나둘씩 맛본 영화들은 내게 처음으로 영화와 감독, 그리고 뉴욕의 뒷골목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의 영화는 계속되는 자기변주의 역사다. 이탈리아 이민자인 부모를 인터뷰하며 자신을 탐구한 <이탈리안어메리칸>. 신부의 꿈을 접은 뒤 뒷골목에서 카톨릭적 구원을 얻으려한 <비열한 거리>와 그 속편격인 <좋은 친구들>. 반어적인 영웅의 다른 모습을 그려낸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코미디의 왕>, <컬러 오브 머니>, <케이프 피어>, <카지노>. 영화광으로서 자신의 테마를 다양한 장르속에서 변주해낸 <라스트 왈츠>, <뉴욕 뉴욕>, <특근>, <순수의 시대>. 그리고 종교적인 물음표의 극단까지 들어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쿤둔>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결코 독립되어 있지 않다. 한 편 한 편 이전의 영화를 참조하고 자신의 개인사를 담아내고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이후 미국 역사에 남는 거장을 꿈꾸는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갱스 오브 뉴욕> 역시 이러한 배경 없이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영화는 항상 테크닉이 화려하고, 인물이 신념에 차 있으며, 어떤 종교적 구원을 얻으려 한다. 주위에서 따가운 시선으로 비판받을 지라도 그는 도전한다. 그리고 패배한다.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순수의 시대>의 다니엘 데이-루이스를 보라. 그는 마틴 스콜세지 영화 최초로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물이지만, 여전히 다른 인물과 마찬가지로 숙명에 직면하게 된다. 자기통제적 캐릭터의 극단까지 간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는 이 숙명을 완수해내지만 그가 얻은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와 자신을 아끼는 보스 사이에서 갈등하는 햄릿적인 인물은 사실 아주 고전적인 주제이지만, 그 복수가 끝난 뒤의 허무함을 전달하는 것은 마틴 스콜세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의 1967년 단편영화 'The Big Shave'를 연상시키는 리암 니슨의 면도장면으로 시작한다. 면도를 하면서 피를 줄줄 흘리는 한 남자의 이미지를 담아낸 그 단편은 마틴 스콜세지가 최초로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되었고,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후 그는 자신의 영화 역사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한 대작의 첫 장면으로 그 이미지를 택했다. 그래서 "피 묻은 칼을 닦지 마라" 라는 대사는 자신의 처음을 잊지 말라는 대사처럼 들린다. 끊임없이 고전 영화들과 자신의 주제를 탐구하고 변주해낸 감독으로서 후배 영화광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사실 이 영화는 70년대에 기획된 프로젝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역할은 원래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인 말콤 맥도웰이 맡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이 스튜디오를 문닫게 할 정도로 대실패하면서 스콜세지는 <갱스 오브 뉴욕>을 서랍 속에 다시 넣어야 했다.
이후 이 대형 프로젝트의 빛을 다시 보게 만든 것은 디카프리오 덕분이었지만, 사실 디카프리오는 복수를 꿈꾸는 목사의 아들 암스테르담역에 그리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분별해내기 힘들 정도로 눈부신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도살자 역을 맡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에 비하면 드문드문 비치는 디카프리오의 하얀 살갗은 아직 어린 아이 같아서 위대한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게 만들 정도다.
 운명의 뉴욕 대결투 후 동네의 폭군으로 군림하는 도살자는 변화하는 세상을 거부하고 철저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다. 옛날 군주제에서처럼 그의 부하들은 그에게 녹봉을 바침으로써 그의 보호를 받는다. 그는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동네깡패였던 자신의 방식을 파이브 포인트 마을 전체에 적용한다. 하지만, 전제군주는 항상 불안에 떠는 법.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며 의지했던 암스테르담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그는 혼란에 빠진다.
언제나처럼 스콜세지는 인간을 선과 악의 이분법에 묶어두지 않는다. 하지만, 캐릭터에게 별명을 부여하고 그를 그 범주 내에 묶어둔다. 그렇게 되면 그 인물은 허용된 범주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또 그 범위 안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비열한 거리>에서 시작된 이 방식은 이후 <트레인스포팅>이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등에서 재치있게 계승되었다.
자연스럽게 도살자가 구원받는 길은 자신이 경배해 마지 않는 신부의 아들에 의해 죽는 것 뿐이다. 공연 중에 우연히 암살당하는 것은 말 그대로 개죽음일 뿐이다. 최후의 일격을 받기 위해 그는 칼을 갈고 암스테르담을 기다린다. 한 사람을 철저히 파괴한 <케이프 피어>의 로버트 드 니로가 자신을 죽여줄 닉 놀테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스콜세지는, 잔인하긴 하지만, 철저히 종교주의자이다.
지금의 뉴욕 역시 마찬가지지만, 19세기의 뉴욕은 정말 살벌한 도시였다. 서부에서 총잡이들이 실눈 뜨면서 총 빨리 뽑기 내기를 하는 동안 동부의 뉴욕에서는 갱들이 도끼나 칼을 들고 패싸움을 했다. 하긴 수많은 원주민을 학살시키면서 정착한 미국인의 호전적인 피가 어디 가겠는가. 네덜란드령 뉴암스테르담에서 영국령 뉴욕으로 바뀌는 역사에서 많은 원주민 인디언들이 희생당했듯이 19세기 뉴욕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앵글로-색슨 원주민들을 몰아낼 차례다. 여기에 링컨 대통령이 주도하는 남북전쟁이 벌어짐으로써 미국은 둘로 분열되고 자본주의의 함정에서 일방적으로 피해자가 된 서민들은 폭동을 일으킨다.
이 영화는 복수극과 시대극의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수극에서는 스콜세지의 냄새가 느껴지고 시대극에서는 스콜세지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지금껏 뒷골목에 집착하느라 한 번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 적 없던 스콜세지는 이 영화를 통해 뒷골목의 역사를 계보학으로 만들고 싶은 것 같다. 뉴욕의 갱들은 이렇게 자라고 이어졌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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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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